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나는 불꽃이다. 불꽃이란 타는 불에서 일어나는 기운. 매년 가을 시민을 위한 불꽃축제를 기획하는 한 회사는 이렇게 썼다. 불꽃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즐거움을 주며 작은 소망을 키워가는 것,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심을 전하는 것,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뜨거운 열정을 이어가는 것, 이 모든 것을 가슴에 품고 자신을 불태우는 것이라고.
2018년, 그 회사의 공장에서 큰 불꽃이 일었다. 불꽃축제를 주최하는 회사의 주 사업은 항공·방위·우주 산업같이 짧은 시간에 큰 힘을 필요로 하는 일들. 강한 추진력을 가진 로켓 추진 용기에 연료를 충전하던 노동자들은 폭발의 순간을 피하지 못했다. 다섯이 숨지고 네 명이 다친 그해에도 불꽃축제가 열렸다. 지름 400m짜리 대형 불꽃이 터지던 순간, 100만 명이 모여 불꽃을 바라보며 웃고, 손뼉을 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잊지 못할 즐거움을 나눴다. 그리고 반년이 채 되지 않아, 공장에서는 또 한 번 불꽃이 터졌다. 사람 세 명이 또 죽고 난 후 발견된 위법 사항은 총 568건이었다.
불꽃은 진실하다. 회사의 창업주는 말했다. 불꽃을 다루는 우리는 정직해야 한다. 또 정확해야 한다. 약속된 시간과 약속된 장소에서 반드시 폭발하는 불꽃처럼. 하지만 2026년, 불꽃은 또 한 번 약속되지 않은 시간, 약속되지 않은 장소에서 터졌다. 희생자 다섯 명 중에는 입사 100일이 되지 않은 20대 직원 두 명이 포함돼 있었다.
나는 불꽃이 두렵다. 폭발 사고 이후 사업장의 책임자가 밝힌 ‘실패’의 원인을 읽는 것이 두렵다. 회사의 주가가 폭락하자 누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족들을 향해 남긴 날 선 말을 읽는 것이 두렵다. 사고의 원인 규명보다 ‘생산 중단’ ‘수출 차질’이라는 헤드라인을 단 기사가 더 많은 것이, 그 기사의 댓글이 더 많은 것이 두렵다. 이 사회가 어느 쪽으로 더 빨리 나아가지 못해 안달인지, 그 추진력에 방해되는 것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또 한 번 보게 되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나를 무엇보다 두렵게 하는 것은 불꽃의 또 다른 사전적 정의다. 불꽃이란 타는 불에서 일어나는 기운인 동시에, 방전할 때 일어나는 불빛. 반짝하며 타오르던 이슈는 또 다른 이슈로 금세 잠잠해지고, 피해 보상과 책임 촉구를 향한 목소리는 서서히 줄어들며, 고요함 속에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할 남은 사람들의 방전될 마음이 두렵다. 올가을 또다시 열릴 불꽃축제와 그 아래 기뻐할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어느 해보다 두렵다.
합동 분향소 앞에서 일렁이는 촛불을 보며 쓴다. 하늘을 수놓은 불꽃을 보며 타는 가슴을 붙잡을 사람들이 또 늘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심을 전하는 것,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마음을 이어가는 것, 이 모든 것을 가슴에 품는 정도가 내가 가진 조그마한 불꽃이다. 올해의 불꽃축제를 보게 될 누군가가 잠시나마 이 분향의 마음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김영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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