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최근 청와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가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 곁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나란히 섰다. 정부가 내놓은 그림은 거대했다. 서남권에 800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산기지를 세우고, 2029년까지 전국 5개 권역에 8.4기가와트 규모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며, 피지컬 AI 분야의 글로벌 1강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정부는 전력과 용수와 부지를 아낌없이 대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이 발표한 것은 AI 시대를 떠받칠 물리적 인프라였다. 나는 그 발표를 들으며 언급되지 않은 인프라를 떠올렸다. 계단 대신 승강기, 경사로와 낮은 턱, 영상의 자막,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웹 접근성 기술까지. 얼핏 무관해 보이는 이 접근성 인프라야말로 AI 산업의 성공과 직결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웹사이트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각 요소의 이름과 역할을 적어둔 정보가 숨어 있다. 버튼에는 기능을, 편집창에는 입력할 내용을 알려주는 일종의 ‘라벨’이다. 모두 시각장애인을 위한 텍스트 정보다. 그런데 오픈에이아이(OpenAI)는 자사 AI가 이 정보를 읽는다고 밝힌 바 있다. 시각장애인이 웹을 탐색하도록 만든 구조가 AI에도 지도가 되는 것이다.
이미지도 같은 패턴이다. 시각장애인은 화면낭독기로 이미지에 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짧은 설명을 읽어 그림을 파악한다. 이를 ‘대체 텍스트’라고 한다. 구글 연구진은 2018년 연구 블로그에서 대체 텍스트 약 330만 쌍을 이미지 학습 자료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붙인 정보가 AI를 가르치는 교재로도 쓰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따르면, 1976년 공개된 커즈와일 낭독기는 인쇄된 글을 음성으로 바꿔 시각장애인이 책을 읽게 했다. 인쇄물을 글자로 바꾸는 ‘광학문자인식’, 곧 OCR이 핵심 기술이었다. 그런데 이 OCR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생성형 AI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쓰인다.
물리적 공간에서도 연관성은 이어진다. 휠체어가 다니려면 매끄러운 바닥, 낮은 턱, 승강기가 필요하다. 바퀴로 움직이는 배달 로봇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로봇산업 단체 매스로보틱스는 2026년 보고서에서 로봇도 휠체어 이용자처럼 이어진 보행로와 낮은 턱이 있어야 안전하게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무장애 거리가 피지컬 AI에도 필요한 것이다.
AI는 황무지에서 홀로 솟아나지 않았다. 그 자체가 인류의 지식이 집대성된 결과물이지만, 웹 라벨과 휠체어 길처럼 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하려고 만든 기술이 없었다면 학습부터 상용화까지 큰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첨단기술도 알고 보면 오랜 장애운동에 큰 빚을 진 셈이다.
혹자는 AI 시대가 오면 장애인 접근성 문제가 절로 해결되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정보가 또렷이 구조화되고 물리적 장벽이 낮아야만 AI도 제 역량을 발휘한다. 장애인이 쓰기 편한 환경이 곧 기계에도 가장 효율적이며, 그런 곳일수록 AI도 번성한다.
아울러 포용 범위도 넓어진다. 다른 몸과 감각을 배려한 공간은 장애인은 물론 AI와 로봇까지 품는다. ‘장애인을 위한 설계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구호가 AI 시대에 더욱 크게 울려 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가 가꿔온 장애인 인프라는 수백조원을 들인 반도체 기지나 거대 데이터센터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AI가 마법처럼 인간의 삶을 바꾼다면, 그건 마법이 아니라 우리가 묵묵히 쌓아 올린 ‘포용의 가치’ 덕분이다. 그러니 AI 시대에도 장애인의 권리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장애인을 위해 길을 넓히고 턱을 낮추는 것은 결국 AI와 인류가 나란히 나아갈 미래의 길을 닦는 일이다.
김헌용 신명중 교사·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
*필자는 2026년 제11회 한겨레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에서 교육 분야 접근성 및 포용성에 기여한 공로로 대상을 받았습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배재고, 오늘 ‘6개월 출전정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한다 [단독] 배재고, 오늘 ‘6개월 출전정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한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710/53_17836611981973_20260710501505.jpg)
[단독] 배재고, 오늘 ‘6개월 출전정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한다
![[단독] 임오경 의원, 손흥민·황희찬 청문회 참고인 신청 철회 [단독] 임오경 의원, 손흥민·황희찬 청문회 참고인 신청 철회](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710/53_17836591253503_20260710501361.jpg)
[단독] 임오경 의원, 손흥민·황희찬 청문회 참고인 신청 철회

“재명아” 장동혁 파문…“국민이 뽑은 대통령에 최소한 예의도 없어”
![‘정당 호감도’ 민주 44%, 지선 뒤 6%p 하락…국힘은 22% [갤럽] ‘정당 호감도’ 민주 44%, 지선 뒤 6%p 하락…국힘은 22% [갤럽]](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710/53_17836605107097_20260710501450.jpg)
‘정당 호감도’ 민주 44%, 지선 뒤 6%p 하락…국힘은 22% [갤럽]

특검, ‘통일교 정교유착’ 한학자 총재 징역 13년 구형

이준석 “한동훈, 본인 의혹은 어찌 처신했나”…‘정이한 자작극’ 감정싸움

‘짱구 엄마’ 강희선씨 보낸 아들 “어머니 아들이라 행복했어요, 사랑해요”

예상 높이 10m ‘메가 파도’ 경보…태풍 바비 접근에 대만 초비상

조희대, 신임 법원행정처장에 노경필 대법관 임명

‘계엄 저항 훈장’ 조성현 대령, 피의자로 특검 출석…“사실대로 말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