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가 수사의 한계와 결함의 희생자이며 무고하게 자유를 구속당한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제가 범인으로 실형을 받게 됐는지 기가 막히고 어안이 벙벙합니다. 저는 강간치사죄로 15년, 15년형을 받았습니다.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일이 있단 말입니까? 때로 정말 이 일이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만, 현실의 교도소 담장을 벗어나기에는 그것이 높고 높습니다.”
2005년 9월2일 고수영(당시 32살)씨는 “재심 청구를 도와달라”며 김형태 변호사에 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얼토당토않은 일’은 2003년 12월12일에 발생한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도우려고 수영씨가 고향에 내려와 있을 때다.
그날 밤 9시40분께 수영씨가 집에 돌아와 씻으려는데 옆집에 사는 작은어머니(당시 47살)가 문을 두드렸다. “대문은 잠겨 있는데 방 안에는 불이 켜져 있구나. 찬수(아들) 차도 없는데….” 수영씨는 작은어머니 집 담장을 뛰어넘어 대문을 열었다. 사촌동생 고찬수(당시 23살)씨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옷가지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대문이 안에서 잠겼으니까 사람이 있을 텐데….” 수영씨가 말했다. 작은어머니는 마당에 있는 화장실에서 찬수씨의 슬리퍼를 찾았다. 화장실 불은 꺼져 있고 문이 잠긴 상태였다. “찬수야, 찬수야. 누구 없소?” 몇 번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도둑일지도 모르겠다.’ 수영씨는 생각했다. “유리문을 깰까요?” “아니, 옆에 열쇠가 달려 있네.” 작은어머니가 답했다. 문고리를 돌려 화장실 문을 조금씩 열었다.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font size="3">국과수 “극미량이라 개인 식별 불가능”</font>
한 여자가 옷을 벗은 채로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얼굴과 어깨, 팔, 다리 등에 붉은 상처가 보였고 샤워기에서는 물이 흘러나왔다. 찬수씨의 여자친구 김미선(당시 21살)씨였다. 수영씨는 몰랐지만 작은어머니는 알아봤다. 방에 흐트러져 있던 피해자의 속옷 등을 챙겨 입혔다. 119에도 신고했다. 찬수씨에게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15분 뒤 구급차가 도착했다. 수영씨가 구급대원을 도와 인공호흡을 하며 병원으로 갔다. 작은어머니는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또 화장실과 방에 널브러져 있던 아들의 옷을 빨고 쓰레기통을 비워버렸다. 경찰이 현장을 조사하기 전이었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작은어머니는 “아들이 잘못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감추고 싶었다”고 말했다.
밤 10시44분 건양대병원 응급실로 피해자가 옮겨졌다. 혈압과 맥박, 호흡은 없거나 측정이 불가했다. 심전도에는 심장근육의 움직임이 기록됐다. 하지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기엔 늦었다. 의사는 밤 11시20분 사망을 선언했다. 목격자인 수영씨와 작은어머니는 대전 둔산경찰서에서 밤새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아들이 어디 갔는지 경찰이 묻자 작은어머니는 “모르겠다”고 했다. 피해자가 왜 사망한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어지러워 빈혈이 있나, 쓰러져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영씨는 “외상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구타당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대답했다. 경찰도 타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부검하기로 했다.
피해자의 남자친구인 찬수씨는 다음날인 12월13일 오전 10시에 귀가한다. 대기업에 취업한 찬수씨는 대학 과후배로 3학년인 피해자와 1년6개월 전부터 교제해왔다. “12월11일 밤에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와 잤다. 다음날 아침 7시30분께 성관계를 맺고 출근했다. 내 휴대전화는 액정이 깨져 여자친구에게 고쳐달라고 그날 맡겼었다. 직장 동료와 선약이 있어 어울리다가 하루 외박했다.” 찬수씨의 알리바이는 직장 동료가 증언했다.
피해자를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망 원인을 질식이나 쇼크로 추정했다. 어깨·팔·다리에서 발견된 찰과상은 성관계의 흔적으로 봤다. 무릎을 꿇고 팔을 짚어 엎드린 자세에서 남자와 성관계를 맺으면(후배위 체위) 여자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처가 심해 약물에 취하거나 성폭행을 당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찬수씨의 집을 조사한 경찰은 몇 가지 혈흔을 발견한다. 찬수씨의 방에 있는 이불과 베개에서 찬수씨와 피해자의 혈흔이 함께 나왔다. 찬수씨는 피해자가 몇 달 전 무릎을 다쳤고 후배위 체위로 성관계를 할 때 생긴 흔적 같다고 해명했다. 화장실 벽에선 수영씨의 혈흔이 나왔다. 수영씨는 “한 달 전에 작은아버지가 화장실의 수도관을 고쳐달라고 해서 갔는데 그때 상처가 났다”고 밝혔다. 수영씨의 오른손에 손톱으로 긁힌 듯한 상처가 보였다. 하지만 작은아버지는 “다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찬수씨도 이렇게 진술했다. “한 달 전 여자친구에게 들은 말이다. 내가 출근하고 혼자 집에 있었는데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방문을 열고 내다봤다고 한다. 수영 형이 자기 집 창문에서 우리 집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여자친구와 눈이 마주쳤단다.”(12월23일 경찰 진술조서)
피해자의 질액에 대한 DNA를 분석한 결과 고씨 집안의 성염색체가 검출됐다. 10개 유전자좌를 검사했는데 3개는 판독이 불가능했다. 일부 유전자좌에서는 찬수씨에게는 없고 수영씨에게 있는 유전자 조합이 나왔다. 그러나 시료가 극미량이라 과학적인 개인 식별은 어렵다고 국과수는 밝혔다.
화장실 벽의 혈흔과 DNA 분석을 근거로 12월27일 경찰은 수영씨를 긴급체포한다. 그는 혐의를 부인하며 알리바이를 댔다. 오전에는 아버지와 안경점에 가고 오후에는 집을 짓는 현장에서 인부들을 도왔다고 했다. 점심에는 닭장의 닭에게 모이를 줬다. 경찰은 피해자의 사망 시각을 낮 11시30분~12시30분으로 추정했다. 닭 모이를 준 것은 아무도 알리바이를 증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낮 12시께 사망한 피해자가 밤 10시께 신음 소리를 냈다는 얘기다. 또 성폭력 사건을 저지른 범인이 목격자를 자청해 피해자를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1심 법원은 2004년 6월 국과수의 DNA 분석이 불완전다고 인정하면서도 징역 15년을 선고한다. “일부 증인들의 진술이나 실험 과정상의 몇 가지 미비한 점이 있지만 유죄 증명력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버지 고낙정(당시 62살)씨는 “죄를 짓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무죄로 풀려나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2004년 10월 2심 법원이, 2005년 1월 대법원이 유죄판결을 확정했다.
수영씨는 무죄 증거를 찾아나섰다. 첫째, 건양대병원에 사실 조회를 해보니 밤 10시45분께 불규칙한 심장 움직임이 심전도 기록에 남아 있었다. 수영씨의 알리바이가 증명되는 오후 시간대에 범죄가 발생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둘째, 피해자 질액 DNA 검사도 신뢰할 수 없다고 한길로 서울법의학연구소장(전문의)이 밝혔다. “오류가 발생한 유전자 검사 결과를 재검하지 않은 상태라서 객관적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 정확한 증거가 필수적인 형사재판에서 증거에 오류가 있는 경우 재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무죄 증거를 제출하며 2012년 10월 재심을 청구한다. 하지만 2013년 2월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병원 기록이나 의사 감정서 등이 기존 판결에서 사실 인정 자료로 채택한 증거보다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수영씨의 재심을 맡은 양지훈 변호사는 “새로운 무죄 증거만 독립적·고립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기존 유죄 증거와의 어긋남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대법원 판례가 밝힌 무죄로 인정할 명백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며 즉시 항고했다. 수영씨는 이렇게 호소한다. “재심은 저의 일생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에 의한 부당한 인권침해에 맞서는 일이 될 것입니다.”
<font size="3"><font color="#C21A8D">#이야기 둘</font> 1분10초 만에 살인한 15살 소년</font>
‘이렇게 비가 오는 밤이면 지친 그리움으로 널 만나고,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난 너를 따라 떠나갈 거야.’
스물여덟 건장한 청년의 휴대전화에선 뜻밖에 옛날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청년의 시간은 오래전에 멈춘 듯했다. 전북의 한 소도시에서 만난 최근호씨는 ‘살인’ 전과자다. 1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하다, 3년 전에 가석방돼 세상으로 나왔다. 징역형을 모두 살았음에도 청년은 여전히 ‘무죄’를 주장한다. 사건 발생 13년 만인 지난 3월9일 최씨는 광주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약촌사거리, 강도야.” 2000년 8월10일 새벽 2시께 전북 익산시 영등동 소재 약촌오거리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택시기사 유미진(당시 42살)씨가 무전기를 통해 회사 동료에게 외쳤다. 어깨·가슴 등 10여 군데나 칼에 찔린 채 피를 흘리며 쓰려져 있던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진다. 사건 발생 사흘 뒤인 8월13일 새벽 4시40분, 익산경찰서는 인근 다방에서 배달일을 하던 최근호(당시 15살)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입고 있는 옷 등에서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가 자백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소년은 사건 목격자였다. 사건 현장을 지나다 평소 안면이 있던 경찰에게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뒷모습을 봤다고 말한 뒤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8월11일 최군이 선배들과 충남 천안으로 가버리자 의심을 받는다. 8월13일 작성된 경찰 기록은 이렇다. ‘피의자는 범행을 은폐하려고 천안과 안성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중 피의자가 익산에 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13일 익산역에 도착한 피의자를 임의 동행해 범행 사실을 추궁하니 자백했다.’ 범행을 저지른 뒤 사건 현장에서 목격자로 행세하며 경찰에게 말까지 걸었다는 얘기다.
1심 법원에서 최군은 무죄를 주장한다. “경찰봉과 대걸레로도 맞았다. 어떤 형사는 소년원에 가서 1~2년만 살면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을 믿었다. 만날 맞고 잠도 못 자니까 ‘내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검사도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font size="3">새로운 용의자의 자백 나왔지만</font>
최군의 수사기관 진술을 보면, △범행 전후 상황 △흉기 종류 △흉기를 은닉한 장소 등에 대한 자백이 수시로 바뀐다. 먼저 피해자에게 다가갔다고도 하고,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차에서 내려 자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고도 한다. 수사 초기에는 택시 밖으로 나온 피해자와 다퉜다고 했으나, 나중에는 피해자가 택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진술한다. 수사 기록을 검토한 이기수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경찰연구관은 “진실한 자백이라면 핵심 내용이 바뀌기가 쉽지 않다.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고 분석했다. 2001년 2월 1심은 징역 15년을 선고한다. 피고인은 항소한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내가 뭐 죄가 크다고 누명을 쓰고 형을 살아야 하는지 앞날이 캄캄하다.” 하지만 2심 법원에서 다시 자백한다. 형량을 줄이는 게 최선이라는 국선변호인의 설득 탓이다. 2심은 징역 10년을 선고한다. 자포자기한 소년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다.
그렇게 사건은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2003년 6월, 전북 군산경찰서가 긴급체포한 오승한(당시 22살)씨는 자신이 익산 택시강도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진술한다. 친구 진성구(당시 22살)씨도 오씨의 범행 사실을 알고도 숨겨주었다고 밝혔다. 최군은 누명을 벗을 기대를 품었지만 곧 절망에 빠진다. 새로운 용의자들이 자백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물증이 발견되지 않아 수사는 2006년 종결된다.
경찰의 가혹행위가 밝혀졌다면 어땠을까? 용의자가 나타났을 때 전북 지역 인권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최군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허위 자백을 했다.’ 이듬해 인권위는 ‘1년 이상 지난 진정’이라며 각하한다(인권위법 제32조 1항 4호). 경찰들에 대한 조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조사자였던 인권위 관계자는 “위원회 설립 초기라 업무 부담이 많았는지, 심의 과정에서 보류돼 각하 결정이 내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인권위 출신인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경찰의 가혹행위 등은 각하 예외 사건에 해당된다”고 했다. 의지만 있었다면 조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최씨의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또 피해자가 탄 택시의 운행기록(태코미터)에 주목한다. 지난 3월 대한문서감정원이 내놓은 감정서를 보면, 피해자가 운전하던 택시의 정차 시점은 2000년 8월10일 새벽 2시8분으로 추정된다. 택시회사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현재 운행기록계 상황을 확인해보니 약 2분가량 늦게 기록이 된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택시 정차 시점(새벽 2시10분) 이후에 범행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최군은 사건 당시 휴대전화로 계속 통화 중이었다. 새벽 △1시56분58초∼1시59분12초 △2시5분24초∼2시5분39초 △2시9분11초∼2시10분40초 △2시11분7초∼2시11분25초.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최군은 ‘택시를 세우고 → 피해자와 다툼을 벌인 뒤 오토바이로 가 칼을 꺼내들고 택시 뒷문으로 들어가 피해자를 10여 차례 찌르고 → 택시에서 빠져나와 칼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오토바이를 타고 인근 공원으로 들어가 → 쓰레기통에 들어 있던 신문지로 피 묻은 칼을 닦고 신문지는 버리고 칼은 다시 오토바이 사물함에 넣은 뒤 → 김씨와 통화했다’고 돼 있다. 택시의 운행기록과 최군의 통화기록을 종합해보면 모든 범죄행위가 1분10초 만에 이루어져야 한다.
최군은 경제난에도 빠졌다. 2001년 근로복지공단이 피해자 유가족에게 지급한 산업재해보상보험금 4천여만원을 물어내라며 그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해서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10년간 이자가 붙어 돈은 1억4천만원으로 늘었다. 그 사실도 그는 2010년에야 알게 됐다.
<font size="3">“아직까지 정의 살아 있다고 믿어”</font>소년이 청년이 되는 동안, 키도 훌쩍 자랐다. 최씨는 현재 건설업체에서 일한다. 얼마 전 그는 재심 재판부에 편지를 썼다. “저는 솔직한 마음으로 진범을 잡고 안 잡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 이것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모든 것은 법이 판단하겠지만, 아직까지 정의는 살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대전=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전주=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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