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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염색체 11개 유전자좌의 비밀


거제경찰서 다방 종업원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잡힌 택시운전사, 강력한 증거인 Y염색체 2심에서 뒤집어져
등록 2013-03-30 13:49 수정 2020-05-03 04:27

문: 변사자 손톱에서 나온 남자 염색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감정한 결과 진술인의 염색체로 확인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답: 모릅니다.
문: 인정하지 않는가요.
답: (묵묵부답)
 
2004년 10월4일 거제경찰서로 불려나온 택시기사 이종훈(당시 36살·가명)은 긴급체포됐다. 두 달 전인 8월5일 밤 다방 종업원 ㅎ(당시 39살)씨를 살해한 혐의였다. 주검은 8월8일 새벽 경남 거제시 하청면 실전리 부두 입구 도로 옆 풀밭에서 발견됐다. 주검엔 34군데나 칼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
<font size="3"><font color="#C21A1A">변제 독촉… 교통사고… 35만원 합의금</font></font>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중부분소에서 법의학자들이 주검을 살피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중부분소에서 법의학자들이 주검을 살피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당시 수사기록을 들여다보면, 피해자는 8월5일 밤 일행과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다가 옥포동 도로변에서 내린다. 차 안에서 일행의 전화기를 빌려 한 남성과 ‘지금 가고 있다’는 대화를 나눈 뒤였다. 경찰은 범행 수법으로 미뤄 치정 사건으로 의심하고 가까이 지내던 남성들을 상대로 수사에 나선다. 피해자가 ‘택시 탈 수 있는 곳에 내려달라’고 한 뒤 일행과 헤어진 점, 현금 40만원이 든 손가방이 발견되지 않은 점에 주목해 택시기사가 저지른 강도살인일 가능성도 열어둔다.

말없는 주검의 손톱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국과수는 이 혈흔에서 부계로만 전달되는 남성 성염색체인 Y염색체 11개 유전자좌(염색체에서 특정 유전자가 차지하는 위치)를 추출한다. 혈흔을 남기고 간 남성이 범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피해자 주변인물 및 범행 추정 시각에 영업을 한 택시기사 등의 침(타액) 등을 채취해 국과수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한다. 이종훈도 이 과정에서 경찰에 타액을 제공했다. 10월1일, 국과수는 경찰에 이종훈의 Y염색체 11개 유전자좌가 변사자 손톱에 묻은 혈흔에서 추출한 것과 동일하다고 통보한다. 단, Y염색체 짧은 연쇄반복(STR) 유전자형 검출은 동일 부계를 확인하는 방법이므로 개인 식별 산출은 할 수 없다는 참조 문구가 붙었다.

검찰은 10월 말 이종훈에 대한 공소를 제기한다. 검찰의 주장은 이랬다. ‘피고인은 8월5일 밤 11시50분 피해자를 태운 뒤 실전 매립지로 향했다. 피고인은 채무금 7천만원을 2년 동안 납부하지 못해 은행으로부터 변제 독촉을 받아오고 있다. 이에 더해 2004년 7월 오토바이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낸다. 피고인은 8월5일 밤 12시께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합의금 35만원을 주기로 했으나 돈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다 승객인 피해자를 살해하고 현금 40만원이 든 손가방을 훔쳤다.’ 이종훈은 두 달 전 자신의 행적을 잘 기억해내지 못했으나, 수사를 받는 내내 범행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피고인의 집이나 주위에서 범행 도구가 발견되지 않았고 옷 등 압수품에서 피해자의 혈흔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듬해인 2005년 4월, 창원지방법원통영지원은 △용의자 집단에서 피고인 Y염색체 유전자좌만이 유일하게 혈흔에서 추출된 것과 일치하고 동일한 부계에 속하는 7촌 이내 혈족 중 거제에 거주하는 자가 없는 점 △사건 전후 오른쪽 팔에 물린 흔적이 있는 점 △8월5~6일 수입이 많고 돈 지출을 많이 한 점 등을 근거로 이종훈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부산고등법원에서 판결은 뒤집힌다. 가장 큰 쟁점은 Y염색체 감식 결과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유전자좌 비교 수를 늘릴수록 변별력은 높아지는데, 감식에 사용된 유전자좌는 11개라 19개 혹은 25개를 비교했을 때 피고인과 동일한 유전자좌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2004년 외국인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 2만6654명에 대한 Y염색체 유전자좌 중 피고인과 7개 유전자좌가 같은 사람이 4명, 8개 유전자좌가 같은 사람이 2만5777명 중 1명이므로 한국 남자 중 피고인만이 혈흔에서 검출된 Y염색체 유전자좌와 동일한 유전자 좌를 가진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물론 거제 시내택시기사가 범인임이 틀림없다면 유전자 감식 결과는 유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했다. 재판부는 △주검주위나 풀 등에 피해자 혈흔이 나타나지 않고 돌 조각 2점에서만 일부 혈흔이 발견돼 주검 발견 장소를 범행 현장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고 △피해자가 8월5일 밤 11시50분 이후 음식물을 섭취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사망 추정 시각도 달라질 수 있으며 △피해자를 차에 태웠다는 시각은 밤 11시50분, 오토바이 운전자를 만난건 새벽 1시께로 이동 시간 30분을 제외하면 초범인 피고인이 40분 동안 범행을 저지르고 현장을 정리한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이종훈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2006년 7월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 확정판결을 내린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color="#991900">“Y염색체를 수사에 활용하는 데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Y염색체가 같은 경우가 있다. 범인을 지목할 때는 다른 정황증거를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한다.” -법의학 전문가</font></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font size="3"><font color="#C21A1A">경기도 안성 강도살인 현장의 담배꽁초</font></font>

이름을 밝히길 꺼린 법의학 전문가는 Y염색체 개인 식별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성범죄 현장에 남겨진 소량의 정액에서 부계로 유전되는 Y염색체만 추출해 수사에 활용하기도 한다. 현재는 11개 유전자좌가 아닌 아닌 17개 부분을 대조해 Y염색체가 동일한지 여부를 판별한다. 그러나 Y염색체를 수사에 활용하는 데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용의자와 가까운 친척들도 같은 Y염색체를 갖고 있고,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Y염색체가 같은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범인을 지목할 때는 다른 정황증거나 알리바이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범죄 수사에서 유전자 감식은 하나의 혁명이다. 일란성쌍둥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DNA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신원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건 현장에서 나온 DNA 흔적은 자칫 미제로 남을 수도 있는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유전자 감식 결과만을 맹신할 경우, 무고한 이에게 누명을 씌우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2010년 경기도 안성에서 고교생 3명이 강도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단서는 피해자가 폭행당한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였다. 담배꽁초에서 체포된 송아무개군의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자가 검출된 것이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송군이 친구들과 함께 퍽치기 범행을 했다는 자백을 받아낸다. 그러나 검찰에 송치된 고교생들은 경찰이 무서워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한다. 검찰 수사 결과,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는 피의자들은 범행 추정 일자와 시간에 통화한 사실이 없었고, 이 중 한 명은 범행 추정 시간대에 인터넷에 접속해 글을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송군은 표현력이나 인지능력에 장애가 있었다. 더구나 범행 현장은 평소 인근 고교생들이 자주 모여 담배를 피우는 곳이었다. 결국 검찰은 고교생 3명을 무혐의 처분하고 석방한다.

<font size="3"><font color="#C21A1A">검사 출신 변호사 “무죄를 확신한다”</font></font>

국외에서 유전자 감식은 범인을 잡는 도구일 뿐 아니라 누명을 쓴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동아줄이다. 미국의 변호사인 배리 셰크와 피터 뉴펠드는 1992년 ‘결백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라는 이름의 연구소를 설립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재소자의 구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결백을 입증하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유전자 감식을 활용하고 있는데, 3월20일 현재까지 이런 방식으로 면죄된 재소자는 305명에 달한다.

297일 동안 갇혀 있던 이종훈은 더 이상 거제에 살지 못하고 거주지를 옮겼다. 그를 변호했던 진성진 변호사는 요즘도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경찰로부터 ‘사실 범인 맞지 않느냐. 변호사 잘 만나서 풀려난거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그는 이종훈이 무죄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검사는 보통 사람을 처벌하는 걸 본분으로 안다. 나도 검사 일을 할 때 그랬다. 사건 현장을 카메라로 찍어서 보지 않는 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사안을 두고 판사·검사가 추리소설 쓰듯이 처리하면 안 되지 않나.”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은 울부짖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유가족의 상처도 컸을 터다. 피해자 역시 눈을 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거제=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font size="4"><font color="#C21A1A">사건 나자 8km 내 거주 남성 100여 명 DNA 채취</font></font>
헌재 판결 기다리는 DNA법
‘서부 발바리’ 검거의 일등공신은 유전자(DNA)였다. 경찰은 서울 은평·마포구 등 서부 지역에서 지난 10년간 여성 9명을 성폭행하고도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갔던 박아무개(55)씨를 DNA 검사를 통해 붙잡았다고 지난 3월19일 발표했다. 다른 절도 사건의 용의자였던 그의 DNA를 채취해 분석해봤더니 미제로 남아 있던 9건의 성폭행 사건의 진범인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경찰은 2010년 7월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DNA법)이 만들어진 이후 강력범죄자의 DNA를 채취·보관해둔 덕이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서부 발바리 검거 사례처럼 과연 DNA법이 사회를 더 안전하고 정의롭게 만들고 있긴 한 걸까.
DNA법은 교도소에 수감된 수형자나 구속된 피의자의 DNA를 채취한 뒤 그들이 사망할 때까지 데이터베이스(DB)에 보관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흉악한 강력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라는 취지다. 검찰·경찰의 숙원사업이던 이법안이 인권침해 논란을 뚫고 2010년 통과된 데는 그로부터 2년 전 발생한 ‘조두순 사건’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8살 여자아이가 잔인하게 성폭행당한 사건이 알려지자 성범죄 등 재범 우려가 높은 강력범죄의 예방·통제를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었던 것이다.
그러나 DNA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DNA를 채취할 수 있는 범죄의 대상이 아동·청소년 상대 성폭력, 강간·추행, 살인, 강도, 방화, 절도 등 11개로 늘어나면서 수사기관이 법의 취지와 상관없이 수사 편의를 위해 DNA를 무분별하게 채취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실제 ‘경찰의 구속피의자 DNA 채취 현황’을 보면, 법이 시행된 이후 2012년 8월까지 2년여 간 경찰이 수집한 구속피의자의 DNA(2만3818건) 가운데 성폭력과 관련된 경우는 23%에 불과했다. 오히려 폭력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의 피의자(28.4%)가 더 많았다. 이 중엔 부당한 정리해고와 주거지 철거에 대항하다 처벌받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서울 용산 철거민의 DNA도 포함돼 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정부가 광범위하게 DNA를 수집한 뒤 상시 보관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가족은 DNA가 매우 비슷하다. 정부가 한 명의 DNA만 갖고 있더라도 그 가족 전체의 DNA를 모두 갖게 되는 셈이다. ‘연좌제’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DNA 채취가 남발되는 사례도 있다. 수형자나 구속피의자가 아니더라도 수사기관이 일반인의 동의를 구하면 DNA를 채취할 수 있게 돼 있는 탓이다. 지난해 8월 전남 해남경찰서는 한 마을에서 여고생이 성폭행을 당하자 사건 반경 8km 이내에 거주하는 65살 미만 남성 100여 명의 DNA를 집단적으로 채취했다. 경찰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주민이 “혼자 거부하면 피의자로 몰릴까봐 억지로 응했다”고 반박해 논란이 일었다.
현재 DNA법은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가 지난 3월 발간한 논문 ‘DNA법의 문제와 위헌성 검토’에서 지적한 DNA법의 위헌 소지는 이렇다. “구속피의자로부터 DNA 정보를 취득하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위반하고, DNA 채취 대상으로 규정한 범죄의 종류가 지나치게 넓은 것 등 과잉 금지원칙에 위반한다.” 수사기관이 자랑스레 내세우는 ‘서부 발바리’ 사건 뒤에는 수사기관이 감추고 있는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가 숨어 있다는 의미다.</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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