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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이상 3944명 중 3201명(80.8%)이 ‘죄 없는 사람이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생각했다. 과 두잇서베이가 지난 4월15~22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은 1947명(49.1%)으로, ‘신뢰한다’고 답한 683명(17.2%)의 3배에 달했다.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법정에서 ‘있는 그대로’ 말하고 이를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은 이런 불신을 부채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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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자 변호사(이하 김 변호사) 1·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1년 정도 치열하게 싸워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선고가 나온 적이 있었다. 판사가 빙긋이 웃으며 무죄 선고를 하는데, 정말 감사했다. 공무원 비리 사건이 연달아 터지던 시점이라 이 사건도 그중 하나로 치부될 수 있었는데 억울함을 살펴준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분야 사건이었는데, 검사나 판사가 우월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을 물어보지 않더라. 수사를 받기 시작해 직장으로 돌아가기까지 5년간, 한 사람이 고통을 당했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이하 한 교수) ‘무죄판결을 내줘서 감사하다’고 했는데, 기묘한 말이다. 무죄판결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한가?
이용구 변호사(이하 이 변호사) 판사일 때 무죄판결을 쉽게 내리는 쪽이었다. 그런데 주위 판사들과 세미나를 해보면 어느 정도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유죄판결이 나오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라고 볼 것인가, 그 기준은 개인마다 상당한 편차가 있었다.
김 변호사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에서 무고한 사람이 한두 명 있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법정에서 유무죄를 못 다툰다. 판사들이 이들에 대해 유죄라고 예단해, 무죄를 주장하면 ‘범행을 부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죄를 주장하기보단 감형을 위한 타협책으로 허위 자백을 하기도 한다.
이 변호사 변호사가 돼보니, 피고인에게 선뜻 ‘진실은 통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겪는 고충을 재판부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판사일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다. (웃음)
조은경 한림대 교수(이하 조 교수) 피고인이 유죄라고 판단할 만한 사건의 자문을 맡았다. 뇌물 공여자가 이미 유죄 선고를 받았고, 피고인은 뇌물 수뢰 혐의로 기소됐다. 변호인은 뇌물 공여자가 유죄를 선고받았으니, 판사가 무죄판결을 내리기 부담스러울 거라는 불안감이 있더라. 두려움의 또 다른 근거는 ‘판사들은 무죄 판결문을 쓰기 싫어한다’는 거다. 왜 무죄인지 많이 써야 하니까. 사건이 많으니까 현실적인 고민은 되겠다 싶었다. 소시민들은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변호사들조차 유무죄를 다투기 위해선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하는 걸 보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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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에 모든 증거 ‘올킬’시키는 자백
김 변호사 경찰에 성폭력 혐의로 붙잡힌 사람이 처음엔 부인을 했다. 그런데 국선변호인이 ‘에이, 별거 아닌데 혐의 인정하면 불구속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혐의 인정을 했더니 그대로 구속돼 검찰로 왔다. 피고인은 ‘이제 부인해야지’ 했는데 검찰은 ‘경찰에서 다 인정했는데, 인정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나온다. 또 혐의를 인정한다. 자백 뒤 기소된 상황에서 무죄 증거가 쏟아졌다. 담당 변호인이 무지하게 다퉜다. 그런데 선고일을 즈음해서 변호인이 ‘유죄가 날 것 같다. 전과도 있고, 자백하면 집행유예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피고인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게 목적이니까, 1심에서 쭉 부인하다 최후 진술에서 자백한다. 그랬더니 판사가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이 항소심 때 나한테 왔다. 경찰이 초동수사 단계에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확보도 안 했더라. 범행 현장 2~3m 앞에 목격자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사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다, 한번 다퉈보자 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됐다. ‘아, 이거 혹시 내가 자백을 시켰으면 합의도 된 사건이라 집행유예 받을 사람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게 아닌가’ 많이 후회했다.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피고인을 찾아갔더니, 이 사람이 손을 잡고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변호사님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 다 했다”는 것이다.
순간의 허위 자백이 유무죄를 가른다. 경찰·검찰·법원 세 단계를 거쳤음에도 허위 자백이 걸러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자백은 ‘증거의 왕’으로 군림한다. 허위 자백 사례를 연구한 이기수 연구관은 일선 수사관 시절, 허위 자백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고 털어놨다.이기수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이하 이 연구관) 자백은 한 방에 모든 증거를 ‘올킬’시킬 수 있다. 자백이 나오면 상대적으로 증거 수집을 소홀히 하고 수사를 종결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허위 자백 사례에서 국선변호인들의 무성의한 행태도 발견된다. 기록을 검토하다가 ‘이 사건은 무죄로 뒤집을 수 없으니 그냥 자백해서 선처를 받아라’고 조언한다. 법을 모르는 피고인 처지에서는 전문가의 말을 거스르기 힘들다. 더불어 판사가 꼭 알아야 할 게 있다. 수사를 받는 사람은 정말 약자다. 이들은 ‘수사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허위 자백을 했지만 적어도 판사는 내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법정에서 피고인이 분명히 수사를 받으면서 협박을 당했다거나 잠을 못 잤다고 주장해도, 임의성(수사기관의 강요 없이 피고인이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했다는 것)이 인정된 사례가 많다. 여기서 피고인은 좌절하고, 무죄 주장 항변을 포기한다.
조 교수 판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하지 않은 범죄를 인정해 괘씸죄에 걸리지 말라고 종용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한 교수 경찰 수사관들에게 자백 획득이 최대 목표인가?
이 연구관 대놓고 자백을 목표로 삼진 않는다. 초동수사 단계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런데 수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하고, 다른 업무를 하다가 현장에 나가는 게 수사 현실이다. 증거가 명확한 사건이 많지 않다보니 수사 성패는 용의자의 자백을 받는 데서 결정된다는 인식이 많다. 피의자 신문도 해봤지만 설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허위로 자백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가장 위험하다.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다보니, 조서에 자백을 담으면 법정에서 유죄로 연결된다. 이것은 수사 실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지금도 자백 중심의 수사 틀이 깨지지 않는 이유다.
한 교수 경찰 수사에서 자백이 나올 때, 그걸 지휘·감시하는 장치가 검찰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잘하고 있는가?
김 변호사 내 경험에 비춰보면 검찰에서도 자백이 중요시된다. 검사 시절에 상부에 결재를 받으러 가면, ‘자백했느냐?’ ‘아니요’ ‘다시 한번 확인해봐라’ 한다. 경찰이고 검찰이고, 하다못해 법원도 자유롭지 않다. 자백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허위 자백 강요와 피의자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2007년 수사 과정의 영상녹화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살인·성폭행 등 특정 범죄에서 그것도 수사 과정 전체가 아닌 일부만 녹화되는 게 현실이다. 피의자 방어권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는 경험담은 구체적인 대안 제시로 이어졌다.
조 교수 증거가 없더라도 수사관들은 경험에 의해 가설을 세우고 예단을 한다. 이러한 닫힌 신문 방식을 바꿔야 한다. 지금은 ‘누가 범인이다’라고 가설을 세워놓고 이를 확인하는 신문을 진행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개방형으로 피의자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유죄판결을 받고도 변호인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진풍경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이 연구관 고문이나 폭행이 없었음에도 허위 자백이 나오는 것은, 잘못된 신문기법 탓이다. 판사 처지에서 자백의 임의성을 파악하려면 법정에서 수사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게 녹음·녹화다. 특히 현실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장치가 녹음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는 전체 수사 과정을 녹음한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으니, 수사기관에서도 돈 없어 못한다고 피할 수 없다. 체포 단계, ‘미란다 원칙’(체포 이유와 변호인 조력 및 진술 거부 권리 등이 있음을 미리 알려줘야 한다는 원칙)을 고지할 때부터 녹음을 해야 한다. 경찰차에 블랙박스가 있어 차량 내부에서도 녹음이 가능하다. 또 우리나라 경제 수준 정도 되면 수사 개시 때부터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장시간 수사에서도 문제점이 나타난다. 영국은 최대 2시간 이상 휴식 없이 조사할 수 없고 24시간 중 8시간을 쉬게 해주는데, 이런 원칙이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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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 현재 변호인의 참여는 그냥 장식이다. 신문에 일절 관여할 수 없고, 피의자가 진술할 때도 조력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도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형사소송법이나 검경 수사 준칙이 바뀌어야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인 조력이 제대로 실현된다.
조 교수 피의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해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게 문제다. 선진국에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할 때 한 문장, 한 문장 이해했느냐고 물어본다. 국내에서 이것을 제대로 하는 수사관이나 검사를 보지 못했다. 수사 과정이 녹화된 것을 보면 웃긴 장면이 많다. 수사관이 조서 작성 전에 권리를 쫙 읽어주고 서류에 ‘사인하세요’ 한다. 피의자가 ‘이게 뭐예요?’ 하고 물어보면 ‘변호사 살 거냐고요’라고 설명한다. ‘어, 아니요’ 이러면서 피의자가 서명한다. (일동 웃음)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반인한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미란다 원칙 이해도를 평가하는 테스트가 있다. 미란다 원칙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백을 했다는 테스트 결과가 나오면 법정에서 자백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한 교수 거짓말탐지기 결과가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나올 수도 있지 않나. 과학수사 결과물에 대해서는 피의자와 검사가 다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물이 검사에게 간다면 변호사에게도 동시에 가야 한다. 감정 결과가 나오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는데 검사만 얻어야 하느냐, 변호인들은 이런 주장도 해볼 수 있을 듯하다.
김 변호사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였는데 검찰 기소 단계에서 누락됐다가 차후에 과학적 증거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법정에서 증거물로 제출돼 무죄 선고가 나온 사례가 있다. 수사기관에서 모든 과학적 증거를 내놓고 다 같이 법정에서 판단받는 게 중요하다.
이 연구관 이야기하고 싶은 게 교육이다. 일반인은 물론 수사관이나 판사도 허위 자백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일상 교육과정에서 허위 자백이나 오판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확실히 알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변호사 법원을 나오니까 판사들의 유죄 편향이 느껴지더라, 확실히. (웃음) 검사의 공소사실 근거가 하나하나 없어지니까 재판장이 당황한다. ‘아, 저게 유죄 편향이구나’ 생각했다. 원칙부터 교육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판의 원인 하나하나는 각론이고, 그 각론을 주워담을 수 있는 재판 철학이 다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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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 교육도 필요하지만, 혼자만 판단하지 않는 시스템이 갖춰지는 게 좋은 방법이 아닐까. 판사가 혼자 판단을 할 때 이를 보완하는 장치가 내부에 있었으면 한다. 멘토 시스템이라든가. 합의부에서는 이런 것이 가능하지만 단독 재판부는 어렵지 않나 싶다.
한 교수 합의부 재판은 판사들이 활발히 토론해서 판단하라는 건데, 합의부에서 정말 활발한 평의가 이루어지나? 보통 아니라고 하는데, 평의다운 평의가 이루어지면 조금은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리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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