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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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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게 거짓일 수 있다

등록 2013-04-27 10:48 수정 2020-05-03 04:27

“ 기사를 소재로 (연극) 작품을 하나 쓰려고 합니다.”
지난 3월28일 연극연출가 김영남(43)씨가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연출과 극작을 전공한 그는 연극계에서 20년 넘게 작업해왔다고 했다. “‘아무도 죽지 않은 살인’ 표지이야기(952호)를 읽었다. 더욱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고, 솔직히 관련 자료도 받고 싶다.” 연극으로 만들려는 이유가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진실이 무엇인지, 평소 관심이 많았다. 오늘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내일 거짓이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진실이 뒤집힐 수 있다고 말이다. 기사가 이를 제대로 보여줬다.”

‘한겨레21‘은 ‘1심 유죄-2심 무죄’로 판결이 엇갈린 오판 사건 540건(1995~2012년)을 분석해 그 원인과 대안을 밝혀왔다. 952~957호 ‘무죄와 벌’ 기획 연재 기사.

‘한겨레21‘은 ‘1심 유죄-2심 무죄’로 판결이 엇갈린 오판 사건 540건(1995~2012년)을 분석해 그 원인과 대안을 밝혀왔다. 952~957호 ‘무죄와 벌’ 기획 연재 기사.

연세대 로스쿨 ‘법심리과학센터’ 개소

‘살인했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세 남매가 실종된 자매를 살인했다고 경찰 수사 과정에서 진술했지만 그것이 거짓이었음이 밝혀진 ‘충남 보령 자매 살인사건’을 담고 있다. 살인했다는 자매가 열흘 뒤 살아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경찰의 반복·유도 질문에 세 남매가 허위 자백한 것이다. “실종된 동생이 돌아왔을 때 (그를 죽였다고 자백한) 언니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둘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쳐다보고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국가기관, 그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고 어떠한 피해 보상도 없었다.” 그 가족을 면담한 조은경 한림대 교수(심리학)의 뒷얘기다. 허위 자백은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후속 취재에 나섰다. 허위 자백을 연구해온 이기수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경찰연구관은 “‘무죄와 벌’ 연재 보도 뒤 사회적 관심이 급격히 커져 인터뷰 요청이 잇따랐다”고 했다.

학계에서도 법과 심리학, 뇌인지과학을 융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과 심리학과는 ‘법심리과학센터’를 지난 4월17일 개소했다. 박상기 연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증인의 기억, 법관의 사실인정, 피고인의 심리상태 등을 연구해 수사·재판 과정에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개소 이유를 밝혔다. 2009년 법심리학연구소를 개설한 한림대는 국내 처음으로 법심리학 협동 석사과정을 운영한다.

서울대 법학연구소는 5월11일 ‘뇌, 마음, 법-뇌인지 과학과 법의 인터페이스’라는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발표 주제는 △과학적 증거에 대한 판례 △증거 판단 능력 향상 방안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유죄편향성 등이다. 흥미롭게도 의 ‘무죄와 벌’ 연재 보도 내용과 비슷하다. 박은정 서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법이 정한 대로 법관이 재판하면 된다고 간단히 생각하지만 개별 사건에서 실체적 사실을 인정하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고 말했다. “1심과 2심의 결론이 엇갈리는 경우도 그래서 생긴다. 뇌인지과학적 관점에서 그 과정을 분석해 사실인정 판단의 객관성·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과학 증거에서도 오류 발생하다니”

954호 표지이야기 ‘믿습니까 과학수사’(무죄와 벌 ③)는 수사기관의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소속과 이름을 밝히길 꺼린 수사관 이아무개(39)씨가 말했다. “사건 현장에서 유전자를 감식하면서, 그 과학적 증거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유전자좌 탈락 현상이 발생하면 DNA가 변형되거나 불완전해 믿을 수 없다고 법원이 판결하는지를 일선에선 모르고 있다. DNA가 일부라도 일치하면 보강 수사 없이 사건을 종결해왔는데 그 관행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한편 서울대는 한국의 첫 오판 보고서인 ‘무죄판결과 법관의 사실인정에 관한 연구’(김상준·2013)를 우수 논문으로 선정해 오는 9월께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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