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수사기관에서 소환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죄가 없으니까 자신만만하게 출석했다. 9시간 만에 초죽음이 돼 돌아오며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판사·검사·변호사·법학자·경찰 등 10명에게 물었다. ‘당신이 만약 억울하게 용의자로 지목돼 수사·재판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그들이 털어놓은 ‘수사 잘 받는 법’을 8가지로 정리한다.
수사관은 “별거 아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소환할 때는 잠깐 얘기만 하면 된다 하고, 신문할 때는 자백하면 집에 돌아간다고 한다. 일종의 신문 기법이다. 한 변호사의 말이다. “체포된 피의자를 접견하러 가면 대부분 조금 있으면 풀려난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곧 구속될 상황인데도 말이다.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그러려면 수사기관이 소환 통보를 할 때 자신이 정식으로 입건된 ‘피의자’ 신분인지, 아직 입건되지 않은 ‘참고인’ 신분인지 확인해야 한다. 피의자 신분이라면 혐의 사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요구하자.
2. 수사 초기에 변호인을 구하라아무런 준비 없이 홀로 수사기관에 출석하는 것은 짚더미를 짊어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격이다. 헌법이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할 때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 이유다. 반드시 법률적 조언을 받아야 한다. 변호인은 성실하고, 또 성실해야 한다. 돈이 없다면 지역의 지방변호사회나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있다면 절대 아끼지 마라. 수사 초기 단계의 잘못된 선택으로 대부분 구속되고, 전과자가 된다. 출석 날짜도 수사기관과 협의하거나 조정·변경할 수 있다. 충분한 시간 동안 방어 무기를 갖춘 뒤 출격하자.
3.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협업하라아무리 성실한 변호인이라도 그는 남이다.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지도,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지도 않는다. 피의자에게는 인생이 걸린 일이지만, 변호인에게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무죄 증거를 수집하고 구속된 피의자와 변호인 사이를 오갈 또 다른 조력자가 필요하다. 죄가 없으니까 혼자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고 자만이다. 수사나 재판은 자기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내가 결백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니다. 특히 수사기관은 유죄라고 단정하고 몰아세운다. 유죄 증거는 확대하고 무죄 증거는 무시한다. 무죄라고 절규해도 그 상황을 혼자 벗어날 수 없다. 유죄 올가미가 씌워졌음을 인정하고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자.
4. 진술 거부권을 활용하라헌법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진술거부권이다. 이는 단순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묵비권’이 아니다.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신문에는 일단 응하면서 불리한 질문에만 진술을 거부할 수도 있다. 변호사와 협의한 진술만 하고 다른 질문에는 묵묵부답해도 된다. 흔히 대답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지만, 현실에선 진술이 오히려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한 검사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건은 피의자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이유를 수사기관에 설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유죄 증거를 발견하고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수사기관의 책임이다. 직접 증거를 먼저 대라.”
5. 조사 시작 시각과 종료 시각을 정하라피의자를 제압하려고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조사실에 넣어놓고는 몇 시간 동안 대기시킨다. 피의자가 불안감에 심리적으로 무너지도록 하는 수사 기법이다. 이럴 때 대응 방법은 출석할 때 조사 시작 시각과 종료 시각을 미리 정하고 변호인이 조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변호인은 부당한 신문 방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변호인이 옆에서 수사관의 질문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수사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미리 정한 종료 시각이 지나면 조사가 끝나지 않아도 피의자는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장기간 조사는 피의자의 방어력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특히 심야 조사는 거부하는 게 낫다. 사실상의 가혹행위가 될 수 있다. 재출석하고 싶지 않아서 심야 조사에 응하기도 하는데 어차피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계속 소환한다.
6. 자백은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다많은 증거 중에서 수사기관이 가장 원하는 것은 피의자의 자백이다. 혐의 자체가 불분명할 때 일단 자백을 받아내면 수사가 압축되고 법원도 유죄를 선고한다. 형사소송법은 자백 이외에 다른 증거가 없을 때, 즉 자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는 자백만 가지고 유죄를 선고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백은 ‘증거의 왕’으로서, 모든 무죄 증거를 뒤덮는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수사기관의 반복·유도 신문이나 “옆방에 있는 사람은 이미 자백했다”는 회유에 넘어가 거짓 자백해서는 안 된다. 혼자 계속 버티면 오히려 자기만 불리해질 것이라고 언뜻 생각하지만 전형적인 수사 방식에 불과하다.
7. 영상녹화를 활용하라혐의를 부인할 때는 영상녹화가 유리할 수 있다. 피의자의 부인 진술이 영상녹화물로 남고 수사관이 반복적인 유도성 질문이나 회유 및 협박성 질문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상녹화를 할 때는 조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이 객관적으로 녹화되도록 해야 한다. 자백하는 듯한 순간만 선별해 영상을 녹화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영상녹화가 끝나면 피의자나 변호인 앞에서 원본을 봉인하고 피의자가 기명 날인이나 서명을 해야 한다. 물론 요구하면 영상녹화물을 재생해 시청할 수 있고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면 그 내용을 서면으로 첨부하게 된다. 하지만 영상녹화물은 독립적인 유죄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수사기관이 피의자 신문 과정을 영상녹화했더라도 피의자 신문조서를 별도로 작성하는 까닭이다.
8. “의심스러울 때는 검사의 이익으로”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억울한 일이 있으면 판사가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재판 과정에서 반드시 진실을 밝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판사 역시 평범한 인간이며 재판 과정에선 양 당사자가 거짓말을 하거나 적어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는 경우가 많아서 진실이 100% 밝혀지기 어렵다. 게다가 판사는 같은 법률가인데다 공직자인 검사의 주장을 피고인보다 신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은 곧잘 무너진다. 따라서 피고인은 재판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검사의 유죄 주장·증거에 대해 판사가 합리적 의심을 품도록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무죄판결이 나오지 않는다. 피고인은 재판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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