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 진규는 초등학생 형과 함께 집근처 태권도장에 다녔다. 어느 날 진규는 엄마에게 태권도장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태권도 사범이 성기를 만지고 엉덩이를 때렸다고 했다. 깜짝 놀란 엄마는 사범이 진규를 어떻게 때리고 만졌는지 캐물었다. 얼마 뒤 엄마가 알게된 사실은 엄청났다. 태권도 사범이 진규의 성기를 만졌을 뿐만 아니라 옷을 벗겨 진규의 엉덩이에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엉덩이를 향수물로 닦아주고, 항문을 가시와 같은 뾰족한 물건으로 찌르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서 보여주고, 심지어 자신의 성기를 진규의 입에 대고 거기서 나온 뭔가를 먹으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보통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엄마는 외과로 달려갔다. 진규의 항문 주변에 약간의 상처가 있으나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진단을 받았고, 원스톱지원센터로 가서 진규의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원스톱지원센터는 진규 엄마의 신고 내용을 듣고 바로 진규에 대한 진술녹화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만 13살 미만 아동 피해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진술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여자경찰관이 진규의 피해 여부를 파악하려고 인터뷰를 했고, 엄마는 신뢰관계자로서 진규 옆에 앉았다. 그런데 면담이 시작되자 진규는 태권도 사범 때문에 왔다고는 말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산만해져서 경찰관의 질문에 집중하지 않았고 대답도 하지 않으려 했다. 1차 조사에서는 태권도 사범이 진규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전혀 알아내지 못했다. 원스톱지원센터는 그 뒤 두 차례 더 진규를 면담했으나 진규는 계속 면담하기 싫어하면서 산만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관과 엄마는 진규의 입을 통해 피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진규를 설득하고 유도질문을 했다.
세 차례의 면담 결과 정리된 준규의 성폭력 피해 사실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30대 초반의 남자 태권도 사범이 6살 남아를 태권도장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성추행했고 항문성교까지 한 것으로 의심되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발생했다. 엄마와 경찰관은 진규의 산만한 태도가 성폭력 피해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진규를 심리치료기관에 보내기로 했다. 태권도 사범은 즉시 구속됐지만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원생들의 훈육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도복 위로 성기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한 사실과 언젠가 진규가 똥을 눠서 닦아준 사실은 인정했으나, 항문을 찌르거나 항문성교를 시도한 적은 결코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오직 아동의 진술밖에 없는 사건에서 아동 진술에 대한 신빙성 판단은 피해 사실이 최초로 폭로된 과정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동이 부모에게 성폭력 피해를 암시하는 단편적인 언급을 하거나 혹은 아동의 음부에서 특이한 현상이 발견되면 부모는 의심하는 태도로 아동에게 캐물은 뒤 가해자를 지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이집·학원·학교 등에서 선생님이나 운전기사가 추행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건들은 이런 경로로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아동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음이 의심될 때 부모가 보이는 과민한 반응과 부적절한 질문은 실제 아동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아동의 기억과 진술 동기를 오염시킬 수 있으므로 이런 행동은 삼가야 한다.
진규 엄마는 진규가 단편적으로 내뱉은 말에 대해 부연설명하기를 요구하기보다는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또 뭐가 있었느냐는 식으로 계속 추궁했다.
“사범이 어디를 때렸는데?” “머리? 또?” “눈? 또?” “코? 또?” “입? 또? 귀.” “사범이 고추 잡아당기고?” “또 어떻게 했어?” “엉덩이 찌르고?” “뭘로?” “손? 또?” “가시? 또? 바늘.”
<font size="3">유도된 진술 반복할 가능성</font>엄마는 진규에게 일어난 일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진규가 답할 때까지 계속 질문했고, 심지어 진규가 말하지 않으면 경찰이와서 진규를 잡아간다는 위협까지 했다. 엄마의 추궁으로 유도된 단편적인 진술들은 모자이크를 짜맞추듯 그럴듯한 이야기로 구성됐다.
가정에서 부모의 추궁에 의해 아동이 피해 사실을 털어놓게 되면 이후 아동은 상담소나 경찰에서도 그 진술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아동 피해자를 면담하는 수사관도이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아동에게는 특별한 면담기법을 사용해야 한다. ‘예/아니요’ 답을 요구하는 선택형 질문이나 면담자의 기대나 선입견을 암시하는 유도질문보다 아동의 자발적인 기억 회상을 촉진하는 개방형 질문을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 선택형 질문이나 유도질문은 아동이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질문 속에 내포된 선택지에 반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린 아동일수록 암시에 취약하기 때문에 면담자가 먼저 “그때 이렇게 된 거 아니야?”라고 물어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어린 아동은 타인의 유도에 의해 진술을 한 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원래 기억이던 것처럼 혼동하고, 나중에는 실제 경험한 것과 암시에 의해 생겨난 기억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진규를 면담한 경찰관은 진규가 자발적으로 진술할 수 있도록 개방형 질문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선택형 질문과 유도질문을 주로 사용했다. 진규가 면담을 지루해하자 조사에 동석한 엄마도 진규에게 암시적이고 유도적인 질문을 하면서 경찰관을 거들었다. 엄마는 집에서 들었던 정보를 바탕으로 유도질문을 해서 진규의 반응을 끌어내려했고, 경찰관은 집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확인해야 한다는 태도로 면담을 계속했다. “엄마가 진규한테 들었다고 했는데, 태권도 사범이 진규 입에다 쉬했다고 진규가 그랬다는데 맞아?” 경찰관은 진규를 면담하기 전 동석한 보호자에게 보호자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면담 과정에서 엄마의 적극적인 개입은 면담 전체에 대한 신빙성을 오히려 떨어뜨렸다.
<font size="3">태권도 사범 결국 무죄</font>이처럼 진규의 진술에 외적 압력이 가해진 흔적이 여러 군데에서 발견됐고, 특히 “똥꼬를 가시로 찔렀다” “고추 먹었다” 등 사건의 핵심 진술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외적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여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됐다. 결국 태권도 사범은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은경 한림대 교수·심리학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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