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은 김원기 선수가 땄고, 동메달은 방대두 선수가 땄다. 금메달은 전부 다 금이 아니고 6그램만이 금이다. 금메달은 약 135달러밖에 되지 않는다.”(1984년 8월5일) “오늘 여자농구가 중공을 큰 스코어 차이로 이기고 은메달을 확보하였다. 수요일날 미국과 금메달을 놓고 싸우게 됐다.”(8월6일) “(한참 딴소리 블러블러하다 맨 마지막 줄) …그리고 어제 여자농구가 미국에 져 은메달을 땄다.”(8월9일)
국민학교 4학년 여름방학 일기는 온통 미국 로스앤젤레스올림픽으로 도배가 됐다. 금메달이 18K인지 24K인지, 전당포에 내다 팔면 가격이 얼마인지, 4년마다 되풀이되는 뻔한 기사 아이템은 28년 전에도 어김없이 등장해 어린아이의 심성을 황폐하게 했나 보다. 그래서 우리 선수들은 금메달을 받으면 일단 깨물기부터 하는가. 게다가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은메달이든 동메달이든 어디 컴컴한 저 구석으로 밀어버리는 조선의 마음이란. “내가 바로 조선의 국…민학생이다!”
올림픽 얘기가 뜸해지는가 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기를 썼더라. “오늘 학교에서 누나를 오라고 했다. 태극기를 들고 LA에 갔던 여자 선수를 환영하라는 것이다. 1시간30분이 지나서야 차 1대가 지나갔다. 더운데 땅바닥에서 햇볕을 받으며 1시간30분 동안 서 있는 게 이거라니. 정말 내가 불려갔었다면 10분이 못 돼서 돌아올 텐데. 1시간30분 동안 서 있은(앉았을지 누가 알아) 누나가 용하다.”(8월17일)
옛날 기사를 찾아봤다. 답이 나왔다. 당시 정부는 진의종 국무총리를 위원장, 각계 대표 529명을 위원으로 하는 환영위원회를 꾸렸다. 아, 촌스러워. 그해 8월16일 김포공항∼여의도∼서소문∼시청앞∼광화문∼동대문∼청량리∼태릉선수촌으로 이어지는 40km를 오픈카 32대에 나눠타고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시민·학생 100만 명이 연도에 섰다. 건물에서 오색종이가 뿌려졌다. 당연히 두피 전두환, 양악 이순자도 나왔다.
누나가 땡볕 아래 고생한 그날, 왜 우리 동네에는 달랑 차 한 대만 지나갔을까. 신문기사는 이렇게 전한다.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너무 벅찬 환영행사로 쉴 틈이 없어 벌써부터 비명이다. 대부분 지방이 고향인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은 상부 지시로 상경한 시도체육회사무국 간부들의 안내로 귀향, 도 단위, 시군 단위, 마을 단위의 환영행사에 차례로 참석해야 될 판.” 일기장으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우리 동네 출신 메달리스트 누군가가 끄어억 비명을 지르며 누나 앞을 홀연히 지나갔던 것이다. 선수들은 피곤했다. “500일 강훈에 이어 심신이 지친 선수들 중 일부는 부상까지 겹쳐….”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고,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선수단 도보행진과 국민 대축제가 벌어졌다. 난리다. 2012년 런던올림픽 선수들도 비슷한 푸닥거리를 한단다. 이거 어디 갔나 했는데, 이건 뭐 28년 전 두피·양악 수준이다.
그나저나 ‘아이돌 올림픽’ 환영행사는 어디 갔어. 걸그룹 메달리스트 ‘공덕콘’(한겨레 사옥 공덕동 콘서트) 대환영일세. 경축 에프엑스 빅토리아 펜싱 금메달. 빅토리아는 중국인. 우리, 스포츠는 말고 아이돌로 하나 되자.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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