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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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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마실 같은 동네 병원 꿈꾸다

국내 최초의 여성주의 의료생협 여는‘살림의료생협’추혜인 원장

공대생으로 성폭력 상담 업무 돕다 의사된‘의료생협 키드’의 꿈
등록 2012-06-15 11:05 수정 2020-05-03 04:26
추혜인씨가 이야기를 나누가 밝게 웃고 있다. 그는 그를 찾는 환자들도 건강하게 웃을 수 있기 바란다. 정용일 기자

추혜인씨가 이야기를 나누가 밝게 웃고 있다. 그는 그를 찾는 환자들도 건강하게 웃을 수 있기 바란다. 정용일 기자

아침 7시면 눈을 뜬다. 오늘 그의 첫 일정은 인천평화의료생협에 가서 내시경 장비로 시술 연습을 하는 것. 한동안 병원 생활을 하지 않은 탓에 손이 잊었을까봐서다. 거기서 점심도 먹고 온다. 맛없는 밥의 대표 주자가 병원 밥이라지만, 인천평화의료생협 식당은 음식 마련하는 분의 손맛이 좋다. 밥이 꿀맛이다. 오후에는 회의며 미팅이 기다리고 있다. 8월 중순 개원할 병원에 갖출 장비를 고르고, 진료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혼자 할 일은 아니다. 살림의료생협 조합원들이 고민을 나눠 힘이 덜 부친다. 요즘은 의료보험 청구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동안은 대학병원에 있어서 몰랐는데, 곧 문을 열 의원에서 진료를 책임지는 의사로서 살림을 세세하게 돌봐야 한다.

비혼여성 운동가부터 70대 노인까지

6월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역촌동 살림이재단에서 만난 추혜인(34)씨의 얼굴이 밝았다. 하루를 빠듯하게 쓰지만 고단하진 않다. 두 달여 뒤 조합원들과 함께 꾸린 의료생협 병원 개원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 중인 요즘 “긴장되면서도 기분이 좋은 이상한 상태”라고 표현했다.

오는 8월부터 추씨는 살림의료생협에서 개원하는 의원의 초대원장이 된다. 말이 거창해 원장이지 병원의 유일한 의사다. 의료생협은 주민들과 의료인이 공동으로 자본을 출자해 조합에서 사업소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 의원을 개원한 생활협동조합은 1994년 문을 연 안성의료생협이다. 경기도 안성으로 주말 진료를 나가던 의대생들을 중심으로 이들이 졸업 뒤 공동으로 의원을 연 것이 최초의 모델인 셈인데, 법적으로 가능해진 것은 2003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흔히들 의료생협 의원을 두고 ‘1시간 대기, 1분 진료’가 더 이상 없는 곳이라고 말한다. 처음 의료생협 의원이 문을 열고 20년 가까운 역사를 가졌지만 아직 대중적인 형태의 병원은 아니다.

추씨가 주치의로 나서는 살림의료생협은 국내 최초의 여성주의 의료생협이다. 2009년부터 준비했다. 처음에는 비혼여성 운동가들이 중심이었다. 대체로 비혼여성들은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있지 않고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복지나 의료 등에서 소외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스스로, 그리고 다 같이 울타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출발이었다. 지금은 시민단체 활동가와 주민들을 꾸준히 모아 남성 조합원 수도 늘고, 연령대도 20~70대까지 다양하다.

추혜인씨는 대학 때부터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며 비혼여성의 주거권·문화권·건강권과 관련한 고민을 하다 자연스레 의료생협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대학 2학년 때까지 공학도였던 그는 여성단체에서 성폭력 상담 업무를 도우며 상담원 선생님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귀에 꽂혔다. “법정에서 증언해줄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만 있음 좋겠다.”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해 의대에 입학했다. 의학도가 되고선 의료생협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주민들과 손잡고 병원을 만들고 지역에 맞게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이 즐겁다고 생각했다. 의료생협에 관한 일이라면 무조건 쫓아다니며 배웠다. 우리보다 의료생협 역사가 깊은 일본에 가서 벤치마킹을 하고, 의료생협에서 일하기엔 가정의학과가 좋다고들 해 전공도 그렇게 택했다. 그런 추씨에게 주변 사람들은 “너는 의료생협 키드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환자와 꾸준한 관계 맺기 중요

레지던트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지역주민 건강증진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직 병원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봉사 형식으로 진료를 지원했다. 병원에서보다 사람들과 깊이 관계를 맺을 수 있어 좋다는 그에게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 “아주 마른, 젊은 여자 환자였어요. 오른쪽 배에서 종양이 만져진다고 해서 기록을 뒤져보니 몇 년 동안 같은 증상으로 큰 병원에 다니셨더라고요. 만지면 아프기도 해서 컴퓨터단층촬영(CT)도 하고, 초음파도 다 해봤는데 특별히 나오는 게 없으니 의사는 ‘괜찮다, 정상이다’라고 하죠. 그런데 본인은 계속 만져지고 아프니까 불안하고 신경쇠약이 왔어요. 그래서 정신과 치료도 받았어요. 만져봤더니 그게 간과 신장이었어요. 정상적인 크기의 장에 비해 몸에 살이 너무 없어서 뱃가죽 밑으로 신장이 만져졌던 거예요. 간과 신장이 만지면 원래 아프거든요. 그렇게 얘기했더니 그분이 많이 울었어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 줄 알고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그는 1차 의료기관에서 의사와 환자가 꾸준히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환자가 처한 환경, 가족관계와 더불어 지역사회의 문제를 고려해서 총체적으로 진료해주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늘어나면 큰 병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한국의 의료문화도 바뀌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1·2·3차 진료 기관은 그 단계에 따라 나름의 장점이 있어요. 이들이 협력관계이면 좋을 텐데 지금은 경쟁관계에 놓여 있는 게 아쉽죠.”

조합원들은 오는 8월 문을 열 병원에 기대하는 점이 많다. 그러나 대체로 소소한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이다.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상담을 잘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동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러저러한 증상이 있을 때 어느 과를 가야 하는지 교통정리를 해주는 의원이면 좋겠다, 건강관리 방법을 알려주고 그걸 실천해나갈 수 있게 힘을 보태주면 좋겠다는 것 따위다.

주민들 스스로 주인인 병원에서 조합원들은 의사에게 깊은 신뢰를 보인다. 환자들이 솔직하게 증상을 얘기하고, 필요한 검사나 차후 관리를 잘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의사 또한 일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는 앞으로 의원 생활에서 환자가 건강해야 의사도 행복한 관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다른 의사들도 많이 했음 좋겠단다.

의료 생협 네트워크 구축할 수 있기를

그는 1차 진료를 하는 진정한 동네 병원이 지역 커뮤니티 내에서 여러 개 늘어나고, 조합원들이 세운 종합병원이 가능해지고, 이 병원들이 연계해서 의료 전달 체계를 갖추고, 주민들 처지에서 진료가 쭉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가능해지길 바란다. 한 사람의 건강 관리에서 허점이 발견되지 않는 것, 그가 그리는 청사진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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