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 일이야.”
“ 아니 우리 딸이 요 앞에 자전거, 액세서리인가 뭣인가 그것 사러 온다고, 그래서 지나가다가. 아니 근데 형님, 문자 안 보셨어요? 오늘 모임이 있나. 어묵을 더 사려고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없어가지고.”
“아니야. 없어. 아이고, 딸이야? 날씬하기도 해라.”
“이왕에 아예 새로운 일을 해보자”
동네 자전거포 앞에서 아줌마들 수다가 한판 벌어졌다. 맥락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수다는 골목의 적막을 깼다. 돌멩이 굴러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했던 주택가 어귀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자전거포 주인은 시끌벅적한 대화에 아랑곳없이, 일상적인 일이라는 듯 손님을 응대하고 원하는 물건을 찾아줬다.
박상준(40)씨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 골목 한켠에서 자전거포를 운영한다. 어릴 적부터 흑석동에 살았던 동네 토박이지만 지난 20년 동안 그에게 동네는 그저 잠자러 들르는 곳에 불과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가 있는 다른 동네에서 보내고, 또 다른 동네로 넘어가 친구나 업체 사람들을 만났다. 온라인 서점 직원 3년, 출판일 8년 등 책과 관련한 일만 11년을 했다.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20~30대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펜을 굴리던 남자는 이제 공구를 손에 쥐고 기름 묻은 앞치마를 두른 채 동네로 돌아왔다.
더 이상 세상사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나이를 맞으며 그가 한 가장 큰 일은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었다. 출판사 편집장이라는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세계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우선은 전 직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5년 정도 일하다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회사에서도 알고 있었고요. 10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어요. 자전거를 타다 보니 이래저래 수리할 일이 생기고 자전거 가게에 갈 일도 생기더라고요. 자전거를 만지는 게 낯설지 않아졌고,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자전거 기술을 배우면 큰 욕심 없이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퇴직을 결심하기 전 업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다음 자리로 얼추 그려지는 것이 작은 출판사를 차려 꾸려나가는 모습이었단다. 책 만드는 일을 처음 할 때만큼 열정적으로 자신의 출판사를 꾸려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젊은 시절 꼭 해보고 싶던 일을 신나게 해봤으니 이번에는 다른 길을 가보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추렸다. 두 가지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헌책방을 운영할까, 자전거포를 꾸려볼까.
“책 만드는 일을 10년 이상 해왔으니 헌책방을 하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셀렉션 등 여러 면에서 기존 헌책방과 좀 다른 형식으로 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책이란 연장선상에 놓인 일이다 보니 업계 선배들에게 도움도 받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할 테고, 오히려 폐 끼치게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래, 이왕에 아예 새로운 일을 해보자 싶었죠.”
2011년 겨울 회사를 그만둔 박상준씨는 곧바로 자전거 기술 학원에 등록했다. 수업은 3주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숙련이다. 교육을 수료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전거포에 들어가 보조 업무를 하며 기술을 익힌다. 일종의 인턴 생활인 셈이다. 그러나 20대 후반~30대 초반이던 학생들에 비해 10살이나 많았던 박씨는 자전거포를 찾아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는 부리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이나 서로 민망할 것 같았다. 자기 가게를 열어 혼자 조금씩 배워가자 싶었다.
‘김훈과 함께하는 한강 라이딩’도 열어
“그러던 차에 EBS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광고회사에 다니다가 자전거 가게를 차린 분을 봤어요. 저랑 비슷하게 40살에 가게를 시작해 이제 10여 년에 접어들었더라고요. 그곳에서 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번 정도 방문하고, ‘거두어 주십시오’ 했죠. 인천 검단에 있는 자전거포였는데 집에서 1시간쯤 걸려요. 3개월을 일했어요. 그러면서 일도 많이 배웠지만 자전거 가게를 하며 산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자전거 가게를 하며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자전거를 만지는 일이 정직하고 인간적인 작업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전거는 사람이 폐달을 밟아 움직이는 아날로그 기계다. 자전거를 판매하거나 고칠 때 자전거 주인과 자전거 기술자는 직접 대면을 한다. 자전거는 어떻게 만지느냐에 따라 100만원짜리 기계가 10만원짜리 기계가 될 수도 있을 만큼 사람의 손에 의해 변하는 정도가 크다고 한다. 박씨는 이런 이유를 꼽으며 자전거에 밴 인간적 정서를 언급했다. 포장을 하거나 쉽게 부풀릴 수 없는, 작업의 과정과 결과가 정직하다고 말했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일한 만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에서 그간 해온 책 만드는 일과도 많이 닮았단다.
박씨의 하루 일과는 아침 9~10시에 가게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해 밤 9시쯤 문을 닫는 것으로 마친다. 작업대를 청소하고, 판매할 자전거를 내놓고, 이런저런 물건을 주문하고, 소소한 손님들을 응대하다 보면 오전 시간이 훌쩍 간다. 나머지 시간은 주로 자전거를 수리하거나 주문 들어온 자전거를 조립하고 남는 시간에는 공부를 하며 보낸다. 학교를 마치거나 퇴근 뒤 들르는 손님이 많아 저녁 시간은 이들을 맞느라 분주하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세상을 굴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야 했던 지난 일에 비하면 어쩌면 밋밋하고 지나치게 정적인 일상이다. 박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보낸 지난 10개월을 돌이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은 세상이 돌아가는 중심에 너무 가까이 있었어요.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것도 좋아요. 뉴스는 신문과 여러 매체로 언제나 보고 있기도 하고. 제가 알고 싶은 정도만 알고,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는 지금도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생활이…. 마침 가게 자리도 큰 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 안으로 들어와 있잖아요. 번잡함에서 벗어난 일상이 좋아요.”
거대 뉴스에서 멀어진 대신 그는 동네의 작은 소식들에 귀기울이기로 한 모양이다. 박씨는 자전거를 매개로 주민 이벤트를 구상 중이다. 그동안의 경력을 살려 주민을 대상으로 한 작은 강연을 열거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비정기적으로 마련할 생각이다. 돌아오는 일요일인 10월28일에는 ‘김훈과 함께하는 한강 라이딩’을 마련했다. 출판사 근무 시절 연을 맺은 소설가 김훈과 함께 준비한 행사다. “흑석동 주민 40~50명을 모시고 왕복 4~5시간 코스로 자전거를 타고 이야기도 나눌 예정이에요.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학교의) 에 광고는 내놨고, 아, 플래카드도 걸고 해야 하는데….”
평생 자전거 책임지겠다는 ‘약속’
1년차 자전거포 아저씨 박상준씨의 계획은 앞으로 20년은 같은 자리에서 자전거포를 운영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오며 가며 수다도 떨고, 작은 소식을 나누고, 믿고 자전거를 맡길 수도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단다. “첫 손님을 기억해요. 지난 6월쯤,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자전거 펼쳐놓고 개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찾아왔어요. 중앙대 법대를 졸업한 역도부 청년이었는데, 체격이 있다 보니 벌써 자전거가 두어 번 고장났어요. 첫 손님이니만큼 평생 자전거를 책임져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더 오래,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전거를 만져주며 앞으로 그가 손님들과 맺는 약속은 더 많아질 것이다. 소소한 약속을 지켜가며 ‘흑석동 자전거포’는, 박씨가 말한 20년쯤 뒤에 얼마나 더 다채로운 ‘자전거 탄 풍경’을 그리고 있을까.
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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