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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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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눈이 되어 더불어 함께 걷다

지난 9년간 매주 목요일 시각장애인과 함께 등산하는 선인산악회원들
자신보다 더 산을 만끽하는 장애인들과 금강산 오르고 싶은 선한 마음
등록 2012-09-21 15:04 수정 2020-05-03 04:26
선인산악회원들이 지난 9월13일 경기도 남양주의 예봉산을 오르고 있다.

선인산악회원들이 지난 9월13일 경기도 남양주의 예봉산을 오르고 있다.

9월13일 목요일, 구슬비가 흩뿌려 자욱하게 안개가 내려앉은 경기도 남양주 예봉산 산길. 1년에 한 번쯤 산에 오르는 나는 숨이 턱턱 막혔다. 저만치 앞선 선인산악회 일행을 다급한 마음으로 쫓아갔지만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일행들은 빗길이 미끄러워 다른 날보다 쉬엄쉬엄 가고 있다는데도 말이다. 10년 가까이 매주 목요일 산행을 나선 베테랑들과 발맞춰 등산하겠다는 생각이 애초에 무모했다. 산악회 회원 절반이 시각장애인이라는 말에 오만을 부렸다가 보기 좋게 꼴찌를 했다.

‘언니’ ‘오빠’들의 가족 나들이처럼

선인산악회는 시각장애인 12명과 그들의 등산을 돕는 봉사자들이 짝을 이루고 있다.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담은 산악회가 2003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산악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종민(53)씨의 말이다. “40대 중반이 되자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말에 장애인 봉사활동 모습이 TV에서 나와 ‘나도 저런 활동을 해봐야지’라고 마음먹었죠. 송파자원봉사센터와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아가 도울 방법을 묻자 시각장애인과 함께 등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알려주더군요.” 서울메트로에서 일하며 직장 산악회 활동을 꾸준히 해온 김씨에게 딱 어울리는 활동이었다. 문제는 참여자가 거의 없고 등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김씨는 ‘시각장애인들이 제대로 등산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돕는 산악회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즈음 시각장애인인 이명옥(67)씨는 우울증에 휩싸여 있었다. 평생 ‘등대지기’ 역할을 해주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탓이다. “산에 오르면서 우울감이 사라졌어요. 산길을 걸으면 집 생각이 다 사라지고 복잡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더라고요. 혼자 산을 오를 수 없으니 봉사자가 필요한데 그럴 기회가 드물었어요. 산악회를 만들자고 복지관에 졸라댔죠.”

김종민씨와 이명옥씨의 ‘마음’이 만나 2003년 8월 선인산악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지난 9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주 목요일 산에 올랐다. 안마사로 일하는 박지영(40)씨는 “목요일은 가장 행복하고도 우울한 날”이라고 했다. “흙내음, 풀내음 맡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산에 오르는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리죠. 비나 눈이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나오면 어찌나 속상한지. 그래서 날씨가 좋지 않아도 웬만하면 등산을 취소하지 않아요. 산에서 내려와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질 때면 또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리나 싶어 울적해집니다. ”

국민은행에서 2000년에 퇴임한 이종산(67)씨도 목요일을 기다리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이용자들이 산을 올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죠. 엔도르핀이 막 솟는 거 같고요.” 아내의 손에 이끌려 산악회에 들어온 김호문(65)씨는 “이제 혼자서는 재미없어서 등산을 못 간다”고 거들었다.

장애인들은 앞에 있는 자원봉사자의 배낭에 묶인 50cm짜리 산악용 줄을 잡고 다른 손에는 등산용 스틱을 들고 산을 탄다. 앞서가는 사람은 뒷사람에게 길의 상태나 주의할 점을 도란도란 알려준다. 언뜻 다정한 부부나 친구가 짝을 이뤄 한발 한발 내딛는 것 같다. 회원들끼리 ‘언니’ ‘오빠’라고 불러서 가족 나들이처럼도 보인다.

“보이고 안 보이고는 큰 문제가 아냐”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눈을 뜬 내가 무색할 정도로 이용자(시각장애인)들은 한번 다녀온 등산로를 정확히 알고 있다. 여기는 삼거리 길, 저기는 전기 철주 밑, 묘 옆, 약수터 등 길눈이 훤하다. 초행길에도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지형물을 훤히 맞혀 탄성이 절로 나온다.” 자원봉사자인 임풍환(72)씨가 선인산악회 블로그에 쓴 글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니라고 박지영씨가 설명했다. “산길을 걸으며 느끼는 감각은 다양해요. 발끝으로 느끼는 촉감, 코끝으로 스치는 냄새, 잎이 서걱거리는 소리, 얼굴에 닿는 햇볕,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 높은 산 정상에 섰을 때 느껴지는 탁 트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많죠.” 산악회가 지난해 8월 1박2일로 여름캠프를 떠났을 때 별빛이 흐르는 밤하늘을 박씨가 가슴 벅차게 느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별빛 밤하늘의 경험을 임풍환씨는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시각장애우들이 봉사자보다 더 좋아하고 즐기는 모습이었다. 우주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은하수 말고, 그 너머 수백억 광년을 가도 끝이 없는 공간에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있다고 하니 육안으로 보이고 안 보이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어쩌면 진짜 장애인은 시각이 있는 우리가 아닐까? 눈이 보인다고, 많은 것이 있다고 매사에 건성 보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니까.”

가끔은 위험한 순간이 찾아온다. 봉사자가 발밑에 신경 쓰며 걷다 보니 나뭇가지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두 사람이 뒤엉켜 굴러 떨어지기도 한다. “개울가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뒤따르던 장애인이 함께 뛰지 않고 그냥 배낭을 잡고 서 있었던 거예요. 그만 뒤로 고꾸라져버렸죠.” 김종민씨의 경험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미안해할까봐 좀처럼 아프다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와 점심을 함께 먹을 때도 시각장애인과 봉사자는 짝지어 앉았다. 밑반찬의 위치를 손을 잡고 알려주고 부침개와 두부전골도 떠주며 장애인이 식사하는 걸 돕는다. ‘저 마십니다. 함께 드세요’라고 말하며 막걸리잔을 기울였다. 점심값은 봉사자가 7천원씩, 시각장애인이 1만7천원씩 나눠 낸다. 봉사자는 은퇴자나 주부가 대부분이지만 장애인은 안마사로 일하고 있어 회비를 그렇게 정했다. 안마사들은 주말에 일하는 대신 목요일을 휴일로 정해 산악회에 참석한다.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온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이승종(55)씨는 2004년부터 매주 목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산행을 준비한다. 부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도림역으로 오면 자원봉사자 이만구(67)씨가 기다리고 있다. “시력을 잃은 지 25년이 됐는데,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니 갑갑합니다. 밖이 항상 그립죠.” 이정대(58)씨는 원래 등산을 좋아했다. 2003년 병으로 시력을 잃은 뒤 등산을 다시 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4월 선인산악회를 소개받고 등산한 이씨는 “봉사자들이 워낙 베테랑이라서 어려움 없이 정상을 밟았다”고 했다.

“관광 재개되면 금강산 오를 것”

선인산악회가 오르고 싶은 산이 있다. 계획했다가 무산된 금강산이다. 김종민씨는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남북관계) 상황이 나빠져서 기회를 놓쳤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다시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013년 8월 창립 10돌을 맞았을 때 선인산악회가 금강산에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 문의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02-3433-3843).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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