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두 번 해외여행을 보내주고, 다른 곳보다 월급도 많고, 회식 때마다 경품 이벤트를 여는 회사. 직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회사 홍보글을 올리면 수시로 10만원을 쏴주거나 영화와 뮤지컬 표를 끊어와 건네는 사장. 가히 ‘신의 직장’이라 할 만한 이곳은 굴지의 대기업도 아니고, 첨단 정보기술(IT) 업체도 아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병원, 서울 신사동 쥬얼리성형외과다.
1년에 두 번 직원들 해외여행 보내줘
처음엔 돈 많이 버는 성형외과니까 직원들에게 돈을 풀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쥬얼리성형외과의 ‘나눔경영’은 병원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지난 설에는 임직원 60여명이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강남의 구룡마을을 찾아 연탄과 쌀, 생필품을 전달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성폭행 사건 피해 여학생의 수술 및 치료비 전부를 몰래 지원하기도 했다.
신용원(43) 대표 원장은 “앞으로 사회봉사 활동의 횟수와 규모를 더 늘려갈 계획”이라며 “피해 여학생의 경우는 생활비와 장학금도 후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선사업을 하려고 성형외과를 연 것일까?
“전 결코 천사가 아니에요. 직원들 복지를 신경 쓰는 건 결국 병원을 위해서죠. 제가 직원들에게 잘해주면 직원들도 병원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지 않겠어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인 거죠. 직원들에게 생색도 많이 내요. ‘이렇게 잘해주는 병원이 있는 줄 아느냐. 열심히 잘하라’면서요. 세상엔 공짜가 없잖아요. (웃음)”
애사심과 충성도를 높이기 위함이라고 말했지만, 직원뿐만 아니라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손을 내밀었을 땐 선의가 없을 수 없을터. “제가 어렵게 자랐거든요.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어려운 사람 처지를 알죠. 무엇보다 지난해 말부터 병원이 흑자를 낸 것도 한몫했죠. 무턱대고 남을 도울 만큼의 깜냥은 못 되거든요. 제 딸 또래인 피해 아동의 뉴스를 보고 가슴 아파서 다음날 바로 연락드렸죠. 마음 바뀌기 전에 해야겠다 싶어서요. 오래 끌면 안 하게 되잖아요.”
결국 돈이 없으면 돕기 힘들었을 거라며 자신이 즐거우려고 한 일일 뿐이라는 그는, 정작 본인은 직원들과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늘 병원 일에 묶여 있는 까닭이다. “얼마 전에 직원들이 하와이에 갔다 왔거든요. 사진을 보니까 부럽더라고요. 내년에는 뉴질랜드에 간다네요. 전 물론 못 가겠지만요. (웃음)” 여기까지만 보면 됨됨이가 훌륭한 병원장 같지만, 그렇다고 신 원장이 마냥 성격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에서는 엄하죠. 가장 중요한 얼굴을 만지는 일이잖아요. 환자에게 불친절하게 대하거나 근무가 태만한 직원을 보면 불같이 화를 내죠.”
일과 관련해 남에게 들이대는 신 원장의 엄격한 잣대는 고스란히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잖아요. 저도 당연히 실수할 수 있죠. 하지만 제 실수는 환자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죠. 환자분들은 절 믿고 자신의 얼굴을 맡기는 거잖아요. 전 술·담배를 안 하거든요. 최상의 컨디션으로 환자들을 시술하려면 힘들지만 자기관리를 안 할 수 없어요.” 11월21일, 약속 시간에 1시간30분이나 늦게 나타나서 어쩔 줄 몰라 했던 그였지만, 이런 일로 무엇보다 환자를 앞에 두는 그의 ‘태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매일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운동을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살이 찐 것 같아 다이어트로 하루 한 끼만 먹는다. 김밥·라면 같은 분식을 좋아하는데 살이 잘 찌는 체질이어서 거의 먹지 못한단다. 이젠 이골이 나서 속이 비어 있어야 더 집중이 잘된다고도 했다. 돈 쓸 시간도, 먹는 즐거움도 없으니 사는 낙이 없을 것 같다.
“미국·브라질도 우리처럼 양악 안 해”
“한 달 용돈이 30만원인데, 그 돈도 다 못써요. 한국 사회 남편들이 대개 그렇지만, 자기를 위해 쓰는 돈은 별로 없잖아요. 다른 남자들처럼 차에 대한 욕심은 있는데 요샌 운동 삼아 지하철 타고 다녀서 차 탈 시간도 없네요. (웃음)”
일중독에 가까운 그는 의외로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을 전공했다. 대학은 산업디자인학과나 건축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재수해서 의대에 갔다. 말 잘 듣는 순한 아들이었지만, 원치 않던 의대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원래 그쪽 꿈이 아니어서 공부할 때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의대에서 하위 10%에 들 정도로 공부를 못했어요. 시험도 못 보고, 의학서적 보는 게 싫었어요. 경쟁률이 높았는데 운 좋게 성형외과 전문의가 됐어요.”
사람은 마음먹기 나름인 것인가. 예쁘게 만들고 빚고 한다는 점에서 성형외과가 자신이 꿈꿔온 미술과 많은 부분 겹친다고 느꼈다는 그는, 전문의가 된 뒤에는 이 일이 아니었으면 다른 건 못했을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그렇다고 사람의 ‘욕심’을 다루는 일에 긴장과 스트레스가 왜 없겠는가.
“일이 쉽거나 편하진 않죠. 굉장히 힘들 때도 많은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 허튼 생각 하지 말고 행복한 줄 알자’고 마음을 다잡죠. 모두 힘들잖아요. 정말 어렵고 고되게 일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 행복한 거죠.”
어디 가서 힘들다고 얘기해선 안 된다는 그는, 업계의 다른 성형외과 의사들이 직원들 보너스 10만원 올려주며 아까워할 때 화가 난다고 했다. 성수기 때는 몇천만원에서 몇억원까지 버는 사람들이 그 얼마 안 되는 돈을 더 가지려 하는 걸 보면 너무한다 싶다는 것. “밥 거르는 아이들도 여전히 많잖아요. 그 돈 더 준다고 밥 굶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1억원을 벌면 직원들에게 2천만원은 풀어야죠. 같이 번 거잖아요. 그 돈은 제게 다시 돌아오게 돼 있고요.”
진정한 이기주의는 결국 이타주의인가. 돈벌이에 혈안인 업계에서 남을 위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 믿는 괴짜 의사인 그에게 성형 열풍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성형 열풍, 문제죠. 대표적인 게 양악 수술 유행이라고 봐요. 성형으로 유명한 미국이나 브라질에서도 우리처럼 이렇게 양악을 하지는 않거든요. 공급 과잉이 낳은 수요인거죠. 이게 굉장히 위험한 수술이거든요. 몇 mm 차이를 위해 할 수술이 아니죠. 그래서 저희 병원은 양악 수술을 하지 않아요. 꼭 필요한 분들이 아니면 권하지도 않고요.”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건 좋다고 봐”
결국 ‘양악 유행’도 한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병폐가 아닐까. “외모지상주의는 반대지만, 두 사람이 비슷한 능력을 가졌다고 할 때, 잘생기고 예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봐요. 독서를 통해 내면을 가꾸듯, 꼭 성형이 아니라 운동이나 다이어트를 통해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것은 좋다고 봅니다.”
삶의 자극을 남겨준 그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장난 삼아 내 얼굴의 ‘견적’을 문의했다. 다행히 견적이 나왔다. 다른 데는 필요없고 눈두덩이 지방 흡입과 코평수 줄이기만 하면 300만원 정도. 착한 의사의 ‘착한’ 견적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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