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작가 최고은은 가장 강렬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아사 위기에 처한 한국 영화의 현실을 알리고 생을 마감했다.
140편의 영화가 개봉한 지난해 한국 영화판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21편. 나머지 85%의 영화들은 망했다. 2006년, 한국 영화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제물로 팔려가고 스크린쿼터가 조각나면서부터 한국 영화의 몰락은 불가피한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영화는 만들어져도 극장에 교차상영으로나마 걸리는 건 요원한 일이 되고, 관객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더불어 배우들의 개런티도 하락했고, 스태프들의 개런티는 처참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영화노조는 6년째 연대 중이지만…
그러나 극장주들은 사상 최대의 수익을 남겼다. 그들은 극장이자 배급자이며 동시에 투자자다. 어떤 식으로든 손해 보지 않는다. 한국 영화가 모조리 망하더라도 그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배급하고 상영하면서 얼마든지 호황을 누릴 수 있다. 그들 입장에서는 굳이 좋은 한국 감독, 좋은 시나리오작가 따위를 키워야 할 이유가 없다. 시장의 논리만이 군림하는 이 야수들의 벌판에서 강자가 독식을 했다는데 누가 딴죽을 걸 것인가. 영화계의 큰형님이 주머니를 더 불리셨으니, 그럼 한국 영화산업은 융성한 건가?
지난 10년간 ‘좌파들의 온상’이라 낙인찍혔던 이 동네, 이명박 정권은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영화계의 새싹들을 잘라내는 일에 전념했다. 독립·예술 영화 제작 직접 지원을 폐지하고, 시나리오작가들의 관문인 시나리오 마켓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등 오늘의 비극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영화판은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가장 처참한 노동 착취가 뒤엉키는, 숨 막히는 자본의 정글이다. 한 편에 5억원의 개런티를 받는 배우와 500만원의 임금도 떼이고 마는 스태프들이 같은 영화를 위해 땀을 흘린다. 그 정글에서 느끼는 상대적 빈곤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절대적인 생존이다. 적어도 영화‘산업’을 말할 수 있으려면, 이 판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줄기차게 일하는 사람들이 밥은 먹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영화산업은 영화판에 불나방처럼 날아드는 청년들을, 그들이 바라본 꿈을 낚싯대 끝에 매달아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청춘을 낚아왔고 그들의 생을 소진시켰다.
20년 넘게 문화 영역을 관장하는 문화부가 존재하고 2천억원이 넘는 예산을 관리하는 영화진흥을 맡은 국가기관이 존재한다면, 이 영역에는 분명히 공적인 기능과 공적인 개입이 작동해야 한다. 그럼에도 자본 논리만이 작동하도록 방관해오다가 오늘에 이르렀다면 굳이 그 기관들은 간판을 달고 유지돼야 할 이유조차 없어 보인다.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자들이 자신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해 들 수 있는 무기는 오직 ‘연대’임을 우린 알고 있다. “제발 연대해서 싸우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 이미 이들은 연대했다. 벌써 6년 전에. 난 영화인이지 노동자가 아니라고 우기던 많은 이들을 설득해 영화노조가 만들어졌다. 노조가 줄기차게 정부에 요구했던 것은 적어도, 영화에 청춘을 바쳤다는 이유로 생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도록, 일하지 않는 시기에도 일정 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실업급여제도’의 실현이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록 문화부는 여기에 답하지 않고 있으며, 예술계의 중지를 모아 만들어진 예술인 복지 법안도 2009년 발의된 뒤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법무부·기획재정부·노동부가 각자 편리한 이유를 들어 복지가 확대되는 것을 최대한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인 노동에 사회가 화답해야
지난 정부에서 영화계 권력의 노른자를 차지했던(그러나 영화인들의 고통스러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이현승 감독은 “최고은의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적어도 목으로 넘어오는 밥과 김치가 있어야 한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고통스럽게 일깨워준 최고은의 마지막 문장을 우린 환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양분 삼아, 아무 답도,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고 미적미적 시장만 바라보는 국가를 향해 거대한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제 남은 일은 그뿐이다. 이 사회에 자국민의 정서와 삶을 대변하는 영화가 필요하고 예술과 문화가 여전히 유효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면, 그것을 생산해내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을 통해 밥을 먹을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내는 것 또한 사회가 함께 져야 할 의무다.
새벽마다 살려달라고 울던 이웃집 세 살배기 아이를 방관하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뒤늦게 가슴 아파해야 아무 소용 없다.
목수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