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음식물쓰레기 수거함 앞에 죽어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그 얼룩무늬 고양이를 전날에도 만났다. 길고양이들이 그렇듯 뭔가를 주워먹다 눈이 마주친 고양이는 깜짝 놀라 후다다닥 빛의 속도로 도망갔다. 그런데 그날은 못 먹을 걸 먹었던 것일까. 목도리보다 가볍고 부드러운 고양이는 차가운 길바닥에 누운 채 굳어가고 있었다. 나는 서울시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준다는 ‘120다산콜센터’에 전화를 했다. 안내원은 과연 친절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님의 유기동물신고 민원이 처리되었습니다. …더 궁금하신 사항은 청소행정과로….” 돌아와 보니 고양이가 죽어 있던 자리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잠시 서서 명복을 빌었다. ‘다음 생에는 꼭 부잣집 영국 할머니의 무르팍에서 쿨쿨 잠만 자는 고양이로 태어나렴.’
안락사 또는 중성화 수술
고양이의 죽음.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며칠 뒤 소설가 친구로부터 고양이를 입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새끼고양이는 경찰관에게 발견돼 동물병원의 보호 아래 있다가 친절한 주인을 만난 것이었다. 폭설이 내릴 때 태어난 고양이는 실버스푼은 아니더라도 쇠숟가락은 입에 물고 나온 행운아였다. 친구는 현재도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으며, 오랫동안 ‘애묘인’으로 살아온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지금까지 도둑고양이, 집고양이, 챔피언 혈통 고양이, 성격파탄 고양이, ‘투명고양이증후군’(자기가 투명한 줄 아는 터라 사람들이 알아보면 식겁하는 몹쓸 병)을 앓는 고양이까지 참으로 다양한 고양이들을 키우기는 했다. 그리하여 얻은 결론은, 동물을 잘 키우는 방법은 동물은 안 키우는 것이다, 라는 씁쓸한 자책과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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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고양이를 맞으며 기쁨보다 앞으로 어떻게 함께 살지 걱정이 앞섰는데 응당 옳은 태도였다. 동물과 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아니,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 동물들에게 선택이란 없기에 우리가 전적으로 그들의 생로병사를 책임져야 한다. 평균수명이 100년인 바다거북이를 키우지 않는 이상 그들의 죽음을 우리 손으로 거둬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한다고 했음에도 동물들과 여러 번 안 좋게 헤어졌다. 목욕을 하다 모기장을 뜯고 탈출하지 않나, 심지어 투명고양이증후군을 앓던 고양이는 5층 옥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애완동물을 잃어버린 사람은 알겠지만, 한 번 잃은 동물을 찾는 일은 거의 기적과도 같다. 결국 그들은 하루아침에 유기동물이 되는 것인데, 대부분 교통사고로 죽거나 구조된다 해도 안락사에 처해진다. 안락사라니, 그러니까 지금 어딘가 동물들의 아우슈비츠에서는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과연 우리에게 그들을 죽일 권리가 있는지, 과연 그것이 도시 생태 환경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 동물을 키우면서 늘 마음의 빚을 안고 살기에 이 주제가 나올 때마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착잡해진다.
예전에 일본 〈NHK〉의 외국인 토론 프로그램에서 동네 주민들이 길고양이를 데려다 중성화 수술을 시켜 개체 수를 확인하고 보호하는 ‘TNR’(Trap-Neuter-Return) 시스템에 대해 한 유럽 청년이 자기 나라에서는 저러지 않아도 주민들과 잘 산다며 불쾌해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유기동물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사람 사는 곳 어디에서나 문제이며, 그 해결 방법 또한 하나일 수는 없다. 다행히 요즘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의사와 연계해 입양을 활성화하는 등 관리체계를 운영하고 있지만, 휴가철에 애완견을 버리는 사람들의 양심까지는 감당할 수 없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인간에게나 동물에게나 긴장되고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 함께 잘 살 것인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여관들을 보고 고양이들이 인간을 흉보지 않듯, 인간들도 놀이터에서 겁나게 짝짓기를 하고 있는 고양이들의 성생활을 인정해줄 것인가.
사람 살기도 힘들다는 변명우리나 그들이나 다른 행성에서 온 것이 아닌, 이 지구 생태계의 일부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거참, 사람 살기도 힘든데, 이건 사람에게나 통하는 변명이다. 어쩌면 불행의 시작은 동물들의 까맣고 선한 눈망울이 그것을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들 눈에도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지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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