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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가볍게 뛰어들라


‘무제한의 낙관주의’가 필요해… 두번째 시즌 ‘국내외 사회혁신기업’편 정리 대담
등록 2009-08-18 16:03 수정 2020-05-03 04:25

국내외 사회혁신기업(사회적 기업)을 소개한 ‘지구를 바꾸는 행복한 상상 Why Not’ 두 번째 시즌을 마치며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과 한찬 ‘Sopoong’ 대표가 마주 앉았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사회적 기업과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컨설팅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Sopoong은 사회혁신기업의 창업을 돕는 인큐베이팅 회사로, 과 공동으로 해외 사회혁신기업을 취재할 인턴기자를 선발했다. 대담은 8월5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경제연구소에서 열렸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왼쪽)과 한찬 ‘Sopoong’ 대표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왼쪽)과 한찬 ‘Sopoong’ 대표

-사회적 기업을 소개한 ‘Why Not’ 시리즈를 어떻게 봤나.

한찬(이하 한)= 요즘 사회혁신기업과 관련한 책도 많이 나오면서 세계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게 알려지고는 있지만, 이번 보도를 통해 ‘세상에 이런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구나. 그렇다면 나도 못할 것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Sopoong 차원에서 보면, 사회혁신기업을 추진할 사회적 기반이 아직은 약해서 인턴기자 선발에도 청년들의 관심이 미흡할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놀랐다. 두 팀을 선발하는데 40팀이나 지원해 그 열기에서 희망을 보게 됐다.

이원재(이하 이)= 그런 열기에 맞춰 사회혁신기업이 많이 보도되고 있는데, 대부분 장밋빛 세상만 이야기한다. 실제로는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과 이익을 내는 것 사이에 상충되는 게 있는데, 그런 부분을 감추고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포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Why Not’ 기사에선 그런 한계까지 드러내줘서 개인적으로도 많이 배웠다.

-소개됐던 회사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어디였나.

이= 770호에 소개된 ‘원월드헬스’(OWH·효과적이고 저렴한 약을 개발해 저개발 국가에 판매하는 미국 회사)가 인상적이었다. 병은 기술이 있으면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술로 약을 만들고 팔고 이용하는 모델이 없으면 안 된다. 약이 있어도 너무 비싸 살 수 없고,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OWH는 ‘이런 병을 앓는 이런 지역 사람을 구한다’는 식으로 목적이 분명했고, 목적을 구현할 방법을 찾은 끝에 약값 차별의 벽을 뚫고 나갔다. 기업을 만든 분명한 목적이 조직을 그 목적으로 이끌고 간 셈이다.

한= 765호에 나온 ‘파이어니어 휴먼 서비시스’(PHS·전과자·알코올중독자·노숙자 출신을 고용한 미국의 식품·택배 기업)는 기업 규모와 매출 면에서 놀라웠다. 전과자 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교육해 ‘과거’의 고리를 끊어주는 시스템도 인상적이었다.‘배시 크리에이션’(영국의 친환경 엔터테인먼트 업체·769호)은 재밌었다. “개개인의 습관이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직원들의 이야기가 와닿았다. 인터넷이 사람들의 습관을 바꾼 것처럼 (기업의) 시스템 변화가 사회로 반영돼 개인의 습관을 바꾸는 게 사회혁신 아닌가.

-한국에서도 시도되면 좋을 만한 회사는.

한= 모든 사례가 탐났다. (웃음) ‘베터월드북스’(도서관·대학에서 헌책을 기증받아 판매하는 미국 기업·768호) 기사 말미에서 우리나라에선 제도가 갖춰지지 않아 도서관에서 헌책을 풀지 못한다는 지적을 봤는데 안타깝다. 안 보는 책이라면 창고에 두지 말고 유통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 사실 한국에도 OWH처럼 국제적인 규모나 기술을 갖추지 못했을 뿐이지 사회혁신기업은 많다. 기존 기업 중에도 비영리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곳이 있다. 외국에서 모델을 들여와 심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실행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중요하다. 공정여행의 경우 규모 있게 추진하면 좋겠다. 사회혁신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규모다. 기업의 역량이 뛰어나 모든 시장을 지배하든지, 사업 소재를 여러 군데서 따라해 시장이 커지고 그 안에서 경쟁이 일어나든지. 공정여행은 후자다. 주류 여행사도 더 공정한 여행을 만들려고 경쟁할 수 있는 소재다.

-한국에도 사회혁신기업이 많다면 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 홍보를 잘 못하는 측면이 있다. 사업을 구상하는 스케일도 작다. 좀더 큰 구상을 할 필요가 있다. 가령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한 아이템’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OWH처럼 중국이나 인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우리가 해결해보겠다고 생각하면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사회혁신기업을 이끄는 사람들의 문화다. 아직은 사회혁신기업을 시민사회 부문에서 시도하는데, 시민사회를 이끄는 분들은 사업을 추진하는 데 굉장히 조심스럽고 보수적이다. 영리를 추구하다 실패할 경우 겪을 비난을 몹시 두려워하는 것 같다. 사회혁신기업에 뛰어드는 인재도 부족하다. 가령 미국은 프린스턴대나 예일대 졸업생이 사회혁신기업인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에 들어가 2년 동안 빈민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반면 한국의 엘리트는 누구를 돕더라도 재단을 만들거나 공무원이 되려 하지 직접 뛰어들진 않는다.

한= 사회혁신기업의 역사가 짧기도 하다. 옥스팸은 벌써 50년이나 되지 않았나. 무엇보다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사회혁신 마인드를 가진 의사·주부·엔지니어 등이 많이 나와야 한다. 시민사회 부문의 ‘운동’이 아니라 ‘나도 저거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일을 제시해야 한다. 파티가 좋은데, 친환경은 어떨까? ‘배시 크리에이션’ 친구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즐겁고 가볍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회혁신기업에 도전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폴 라이트 뉴욕대 교수는 ‘무제한의 낙관주의’가 사회혁신가의 정신이라고 하더라. 지나친 자신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 영리기업에서 성공한 사람을 봐도 그렇다. 실패를 하더라도 ‘운이 없어서 안 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도전하고, 도전하다 보면 성공하는 거다. 포털 사이트 다음만 봐도 처음엔 왜 전자우편을 무료로 쓰게 하는지, 그걸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재웅 당시 사장은 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지금의 다음을 만든 거 아닌가.

한= 낙관도 필요하지만 위기관리 측면에선 냉철해져야 한다. 수평적인 문화와 혁신적인 구조, 시장과의 빠른 소통 같은 벤처의 덕목도 필수적으로 접목돼야 한다.

-사회혁신기업이 정말 수많은 사회문제를 진보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한= 사회문제 해결은 국가도 하고 비영리 단체도 하지만, 국가의 경우 정권과 지도자가 바뀌면 문제 해결 방식도 달라진다. 사회혁신기업은 문제 해결 방식이 지속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사회혁신기업만이 대안은 아니다. 각 부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고, 사회혁신기업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분야의 확장이라고 봐야 한다.

이= 사회를 바꿔온 건 기업이다. 관건은 어떻게 바꿀 것이냐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사명을 분명하게 갖고 경쟁하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가들이 기업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한다면 진보적인 변화도 일으킬 수 있다. 사명은 명확하게, 돈과 자원을 구하는 방식은 유연하게 해야 한다.

사회·정리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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