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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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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슈퍼’ 영국의 세인즈버리


재활용 장바구니부터 공정무역 상품까지 녹색 매장의 산실
등록 2009-05-19 12:00 수정 2020-05-03 04:25
자연광을 최대화하고 인공조명을 최소화한 세인즈버리 매장. 제품을 사기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만 밝힌다는 것이 세인즈버리 녹색매장의 조명 원칙이다. 천장의 동그란 조명은 인공조명이 아닌 자연광이다. 천장의 굵은 파이프는 바이오매스 보일러로 덮힌 열기를 매장안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광을 최대화하고 인공조명을 최소화한 세인즈버리 매장. 제품을 사기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만 밝힌다는 것이 세인즈버리 녹색매장의 조명 원칙이다. 천장의 동그란 조명은 인공조명이 아닌 자연광이다. 천장의 굵은 파이프는 바이오매스 보일러로 덮힌 열기를 매장안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의 월마트, 한국의 이마트로 대표되는 대형마트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상징이다. 크고 작은 동네 점포들을 모두 궤멸시키는 블랙홀이다. 소비의 욕망만 부추기는 대형마트 매장에 환경이니 미래니 하는 가치가 진열될 공간은 없다. 그런데 영국에는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착한 대형마트가 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도 하나쯤은 있는 슈퍼마켓, 세인즈버리(Sainsbury’s)가 그곳이다. ‘세상을 바꾸는 슈퍼마켓’이다.

영국 남부 다트머스에 위치한 세인즈버리의 친환경 매장을 찾았다. 영국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남부 해안가 마을 다트머스. 세인즈버리는 지난해 8월 이곳에 친환경 매장 1호를 열었다. 탁 트인 언덕 위의 매장 앞에는 하얀 풍력 터빈 두 개가 돌아가고 있었다. 넓디넓은 유리창이 자연광을 매장 안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폐목재 활용한 바이오매스 보일러

매장 앞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재활용 장바구니를 쓰자는 포스터.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매대는 ‘절 자꾸자꾸 써주세요’라고 적힌 재활용 장바구니가 차지하고 있었다. 세인즈버리는 1989년부터 100% 재활용 물질로 만든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세인즈버리의 재활용 역사는 전통이 깊다. 1913년 매장 안에서 판지 재활용을 시작한 게 시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종이를 아끼려고 자체 상표의 사이즈를 줄이기도 했다.

매장 내에 들어가 보니 조명이 별로 밝지 않았다. 다른 마트에서 느낄 수 있는 밝고 화사한 조명이 여기에는 없었다. 쇼핑하는 사람들 위로는 은색의 파이프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 전등과 스피커도 그냥 줄에 매달려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었다.

세인즈버리 매장 입구 쪽에 있는 재활용 장바구니 코너. 장바구니에는 ‘저희 모두는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고 싶어요. 이를 위해 저를 자꾸자꾸 써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세인즈버리 매장 입구 쪽에 있는 재활용 장바구니 코너. 장바구니에는 ‘저희 모두는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고 싶어요. 이를 위해 저를 자꾸자꾸 써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매장 매니저인 스튜어트 트립은 “슈퍼마켓 매장으로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친환경 건물을 도입했다”며 건물 곳곳의 친환경 요소들을 소개했다. 처음으로 간 곳은 보일러실. 이곳 매장은 바이오매스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었다. 지역에서 버려지는 폐목재를 원료로 열을 발생시킨다. 이 보일러 덕분에 가스를 사용하지 않게 됐고, 결과적으로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40%나 줄였다고 한다. 매장 뒤편에는 소규모 변전소가 있었다. 매장 앞의 풍력 터빈에서 전기를 생산해 냉장고와 전산시스템용 전력으로 쓴다. 매장에서 쓰는 전력의 50%에 해당한다.

세인즈버리의 미디어 담당 톰 파커는 “이번 여름부터 세인즈버리는 더 이상 음식물 쓰레기를 매립하지 않기로 했다”며 “음식물 쓰레기를 발효시켜 전력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기로 매장용 전력을 확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매장 내의 물 흐름을 조절하는 수도제어실. 이 수도제어실 덕분에 이곳은 다른 매장에 비해 상수도 사용량이 60%나 적다고 한다. 물 사용량을 줄이는 비결은 빗물 사용이다. 비가 올 때마다 옥상의 대형 수조가 빗물을 받아 보관한다. 이 물은 수도제어실을 통해 화장실의 변기용 등으로 사용된다. 이런 식으로 연간 100만ℓ의 물이 절약된다.

매장 조명도 ‘적당한 밝기’로

트립 매니저는 “매장 건물 자체가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졌다”며 “매장 건축에 들어간 나무가 모두 200그루였기에 인근 지역에 400그루의 나무를 새로 심었다”고 말했다. “매장이 어두운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지나치게 밝은 조명이 에너지 절약과 환경 지키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손님들이 제품을 보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조명을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답했다. 소비 심리를 부추기는 밝은 조명 아래 살아온 우리에게 ‘적당한 밝기’란 어느 정도일까.

지속 가능성을 위한 세인즈버리의 노력은 이런 녹색 매장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동시에 ‘좋은 음식만 취급한다’는 세인즈버리의 긍정적인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1869년에 만들어져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지닌 세인즈버리는 슈퍼마켓 509개와 편의점 276개 그리고 자체 은행 시스템을 갖춘 회사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슈퍼마켓’이기도 한 세인즈버리는 그 역사만큼 사회적 활동의 자취도 길다. 프레온가스가 있는 스프레이 제품은 판매를 금지하고 있고, 100% 재생지로 만든 재생 휴지와 키친타월 등을 자체 브랜드로 판매한다.

세인즈버리는 영국 슈퍼마켓 최초로 방목 달걀만을 판매하고 있다. 달걀을 낳은 닭들이 자유로운 방목 조건에서 크고 있다는 것을 인증하는 ‘자유식품(Freedom Food) 마크가 눈에 뛴다.

세인즈버리는 영국 슈퍼마켓 최초로 방목 달걀만을 판매하고 있다. 달걀을 낳은 닭들이 자유로운 방목 조건에서 크고 있다는 것을 인증하는 ‘자유식품(Freedom Food) 마크가 눈에 뛴다.

매장 내의 모든 바나나는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공정무역의 핵심은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나 농민이 건강한 환경에서 생산한 제품을 ‘제값’을 주고 사는 것이다. 영국에서 판매되는 바나나는 대부분 아프리카산이다. 영국 전체의 세인즈버리 매장에서는 분당 1천 개의 바나나가 판매된다. 연간 7억 개에 달한다. 세인즈버리는 2002년에 처음 공정무역 바나나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2007년 7월 말부터는 공정거래 바나나만 취급한다. 공정무역 제품군은 홍차와 커피, 설탕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세인즈버리의 공정무역 정책에 소비자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톰 파커는 “지난 1분기 매출 집계 결과 공정무역 제품 판매량이 2억1천만파운드(약 4천억원)에 달해 자체 목표였던 2억파운드를 넘어섰다”며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50%포인트 늘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세인즈버리가 취급하는 공정무역 제품은 전체 영국 공정무역 거래액의 3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멸종 우려 어류 유통금지

건강한 소비를 위해 빨강·주황·초록의 ‘신호등’ 제도도 도입했다. 우선 어류 제품. 세인즈버리는 해양보존협회와 공동으로 영국인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생선을 세 등급으로 분류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초록 등급은 아직 멸종 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어류군에, 주황 등급은 지속 가능성은 염려되지만 이에 상응하는 조처가 취해지고 있는 어류군에 부여된다. 빨강 등급은 멸종 우려종을 뜻한다. 세인즈버리는 빨강 등급으로 분류된 어류의 유통을 금하고 있다. 또한 주황이나 빨강 등급으로 분류된 생선이 초록으로 바뀔 수 있도록 하는 환경보호 목표도 자체적으로 세우고 있다.

톰 파커는 “세인즈버리는 영국에서 소비량이 가장 많은 대구, 참치, 연어, 새우 등을 녹색 등급으로 높이는 것이 목표”라며 “2010년까지 이 어류들을 녹색 등급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어류들은 세인즈버리 어류 판매량의 80%를 차지한다.

신호등 제도는 영양표시에도 쓰인다. 소비자는 세 가지 색으로 식품 안정성과 영양 함유량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영양 표시를 꼼꼼히 읽어보는 이들이 드물지만, 빨강으로 표시된 마크에는 쉽게 눈이 갈 것이다. 이 표시는 칼로리나 함유된 식품첨가물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비만과 건강에 많은 영양을 미치는 지방·당·나트륨 함량을 빨강·노랑·초록 등급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세인즈버리는 최근에 ‘방목 달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했다. 방목한 닭에서 나오는 달걀이 건강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매장 내에서 판매하는 모든 달걀을 방목 달걀로 바꾼 것이다. 영국 유통업체로서는 처음 실천하는 것이다. 달걀 포장도 모두 종이로 바꿨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조처다. 이렇게 조금씩 세인즈버리의 매장 풍경은 바뀌고 있다.

이른바 ‘패스트패션’을 추방하자는 운동도 시작했다. 의류계의 ‘패스트푸드’라 할 수 있는 패스트패션은 유행에 따라 디자인을 바꿔 내놓는 옷을 뜻한다. 보통 한철이 지나면 유행이 끝나기 때문에 버려지는 일이 많다.

매장 뒤쪽의 변전소. 세인즈버리는 풍력 발전 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한 발전도 이용할 계획이다.

매장 뒤쪽의 변전소. 세인즈버리는 풍력 발전 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한 발전도 이용할 계획이다.

세인즈버리의 이런 정신은 창업자 집안의 전통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난 사이먼 세인즈버리는 1억파운드(약 1900억원)에 이르는 미술품을 런던 국립미술관과 테이트미술관에 유산으로 남겼다. 자선사업가이자 예술품 수집가로 유명했던 그가 기증한 작품은 클로드 모네, 폴 고갱, 에드가르 드가, 루치안 프로이트, 프랜시스 베이컨, 앙리 루소 등 쟁쟁한 대가들의 작품 18점이다. 당시 영국 문화계에서는 “금세기 최고의 예술적 기부행위”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대가들 작품 미술관에 기증

슈퍼마켓의 이런 노력은 소비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 달에 한 번 세인즈버리에서 장을 본다는 주부 수전 킹(47)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가족 모두가 세인즈버리를 이용해왔다”며 “세인즈버리의 재생 휴지와 재생 장바구니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킹은 “지역에서 생산된 농수산품을 애용하자는 원칙에 따라 판매하는 육류를 영국산으로 바꾼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육류 제품은 반드시 여기에서 산다”고 덧붙였다. 세인즈버리의 이런 노력을 알고 있는 소비자들은 세인즈버리의 ‘팬’이 된다.

톰 파커는 “우리는 사회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유통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며 “따라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회적·환경적 그리고 도덕적 측면을 항상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그 결과 고객에게 건강하고 안전하고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한다는 신뢰가 쌓였고 이 신뢰가 세인즈버리의 브랜드 이미지가 됐다는 설명이다. 세인즈버리의 사회활동은 결국 ‘자선’이 아닌 ‘투자’인 셈이다.

다트머스(영국)=글·사진 구혜미 레이번스본 디자인커뮤니케이션대학 방송산업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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