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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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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가 된 문제아


가난하고 직업 없는 청년을 뽑아 교육하는 제이미 올리버의 ‘피프틴’…
삶을 가르치고 일반인의 인식도 바꿔
등록 2009-06-30 05:09 수정 2020-05-02 19:25

요리는 욕망이다. 삶의 근원을 리비도에 두고, 평생 리비도에 갇혀 살았던 천재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는 “침실이 아니라 부엌이 기쁨의 원천이며, 먹는 것이야말로 리비도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했던 ‘구순기’는 유아기가 아닌 평생일 것이다. 입으로, 혀로, 목구멍으로 채워가는 욕망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리비도이므로. 프로이트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리비도 때문에 요리를 즐겼다.

‘피프틴 런던’의 주방에서 일하는 수습생들. 1년 수습 기간의 마지막 과정에서 피프틴 주방에서 일하게 된다.

‘피프틴 런던’의 주방에서 일하는 수습생들. 1년 수습 기간의 마지막 과정에서 피프틴 주방에서 일하게 된다.

 

‘교도소’에 갔다 오면 더 좋다 

청년 역시 욕망덩어리다. 욕망은 강하되, 그것을 채워줄 공간과 수단이 없으니 분노한다. 그 분노의 표출을 어른들은 탈선이라고 부른다. 요리는 그 풀 수 없는 욕망을 채워주는 가장 멋진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영국의 ‘국민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그런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요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이들은 그를 알 것이다. 살짝 혀 짧고 말 빠른 런던식 ‘코크니 악센트’로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가며 ‘참 쉽죠잉~’ 하고 요리를 보여주는 그의 모습과 함께.)

제이미 올리버는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패스트푸드나 다름없던 영국 공립학교의 급식을 유기농 친환경식으로 바꾸는 운동을 통해 영국 청소년들의 건강을 지켰다. 이와 동시에 시작한 것이 ‘비행청소년’들의 새로운 꿈을 위한 식당 ‘피프틴’(Fifteen)이었다. 올리버가 마약·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던 청소년 15명과 함께 식당을 시작한 것이 2002년이었다. 이 도전은 영국에서 공중파 방송으로 제작됐다.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싶어 피프틴을 찾아간 날엔 비가 왔다.

시티 지역의 시티스트리트와 올드스트리트가 맞닿은 지점에 그 식당이 있었다. 날씨만큼이나 우중충한 건물, 무거운 문. 하지만 그것이 반전이었다. 강렬한 분홍색의 식당 로고. 밝은 조명보다 더 밝은 음악. 바로 테이블에 앉아 웨이터를 부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피프틴은 예약 없이는 식사가 불가능할 만큼 손님이 많았다. 피프틴의 홍보담당 웬디 리치먼드를 만났다.

피프틴은 레스토랑 이전에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는 곳이다. 18~24살의 젊은이들을 뽑는다. 우선 직업이 없어야 한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야 한다. 집안이 가난하면 더 좋다. 교도소를 다녀와도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우선점을 받을 수도 있다. 교육 기간은 1년이다. 매년 4월에 있는 수습생 모집 공고에는 400명 이상이 도전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과 요리에 대한 생각이다. 선발 과정은 인터뷰, 단체활동, 미각 심사 등을 거친다. 리치먼드는 “선발 과정에서 인터뷰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고 말했다. “선발은 대략 4단계로 진행한다. 마지막 인터뷰로 최종 당락이 결정된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원자의 열정이기 때문이다.” 8월까지 수습 선발이 계속된다. 이후는 도제 과정이다. 2009년의 도제 과정은 오는 9월7일에 시작한다.

도제 과정에 들어가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과정은 크게 2단계다. 첫 번째 단계는 9월에서 12월까지다. 10주 동안 루이셤대학에서 요리 기술을 배운다. 루이셤대학은 유명 요리사들을 많이 길러낸 곳이다. 피프틴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교수들이 있다. 일주일에 하루는 피프틴에서 일한다. 물론 참관이 대부분이지만. 2단계는 12월에서 9월까지 진행된다. 30주에 이르는 기간 동안 주로 피프틴 레스토랑에서 보조로 일하며 실무를 익힌다. 일주일의 또 하루는 오픈 도어 시간이다. 수습생들 간의 ‘요리 배틀’이 열리기도 하고, 야외로 나가 요리를 하기도 한다. 마지막 5주 동안은 다른 레스토랑이나 생선가게, 정육점 등 식재료를 공급하는 곳을 방문한다.

 

1년 교육 뒤 다른 레스토랑으로 

이런 1년 과정에 들어가는 학비는 만만찮을 듯하다. 리치먼드에게 물어보니 “1인당 3만파운드가 든다”는 답이 돌아왔다. 3만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6천만원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18명이 교육을 시작했다고 하니 이들을 키우는 데만 54만파운드, 우리 돈으로 1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 것이다. 유니폼과 식기류 구입비, 생활비에 집세 보조금, 주간여행 수업비 등 엄청나게 많은 항목들이 있었다.

피프틴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수습생들. 팔뚝에 뚜렷한 문신과 날카로운 눈매가 그들의 과거를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이들이 만드는 것은 아름다운 미래다.

피프틴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수습생들. 팔뚝에 뚜렷한 문신과 날카로운 눈매가 그들의 과거를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이들이 만드는 것은 아름다운 미래다.

“우리는 요리 수업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수업도 한다”는 리치먼드의 말이 가볍지 않게 마음속을 울렸다. 아무리 유명한, 그래서 돈 잘 버는 제이미 올리버라지만, 이런 돈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비결은 피프틴 레스토랑과 피프틴 재단이었다. 올리버는 설립자였지만, 재단을 설립한 이후로는 10명의 이사진 중 한 명으로 돌아갔다. 레스토랑의 수익은 재단을 거쳐 수습 과정 지원에 쓰인다. 레스토랑의 수익 중 이렇게 쓰이는 돈이 한 해 25만파운드 이상이라고 한다. 모자라는 부분은 재단 자체 행사와 인터넷 숍의 수익에서도 충당하지만, 후원을 안 받을 수는 없다.

피프틴은 2002년 런던을 시작으로 2004년 1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2006년 5월 영국 콘월, 같은 해 12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까지 4곳으로 늘었다. 성공 비결을 물었다. “좋은 요리와 특별함”이 비결이라고 했다.

피프틴은 좋은 재료를 제일 강조한다. (하긴 제이미 올리버가 진행하는 을 보면, ‘좋은 재료가 좋은 요리를 만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수습생들이 의무적으로 ‘재료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프틴을 방문한 지난 5월에는 웨일스를 방문한다고 했다. 양 목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좋은 양고기를 고르는 법과 좋은 양이 자라는 조건을 알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비결은 ‘특별함’이다. 이것은 피프틴의 이념이기도 하다. 고객을 넘어, 사회까지 생각한다는 이념. “사회에서 낙오된 젊은이를 교육한다는 것은 자체적인 의미도 있지만 사회에서 잊혀진 문제를 알린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는 문제아들을 훌륭한 요리사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처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까지 바꾸려고 노력한다.”

2002년부터 올해까지 수습생은 모두 100여 명이었다. 이 중 최종 졸업생은 65명. 수습 과정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수다. 1년 과정이 끝나면 졸업생은 국가공인직능자격(NVQ·National Vocational Qualification)의 전문요리사 부문과 조리과정 부문 2단계 자격이 주어진다.

피프틴을 졸업하면 일단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졸업 뒤 다른 레스토랑을 거쳐 다시 피프틴으로 돌아온 이들도 있다. 돌아온 졸업생은 견습생들의 좋은 본보기이자 멘토가 된다. 요리사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한 이들도 있다. 대학 진학을 한 경우도 있고, 자기 가게를 연 사업가도 있다. 예술가로 변신한 졸업생도 있다고 한다. 피프틴이 지향하는 바는 훌륭한 요리사를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는 곳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업과 사회적 목적 사이의 균형감각 

피프틴은 아직 배가 고프다. 더 많은 곳에 더 많은 레스토랑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사업을 확장할수록, 더 많은 이들이 피프틴의 혜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분점이 많아지면 음식 질이 떨어지는 법. 무리한 확정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우리와 같은 기업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업과 사회적 목적 사이의 균형감각이다. 사회와 수익, 두 가치 가운데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면 그것은 본래의 목적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치먼드의 대답이었다.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모든 진심은 운동이 된다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제이미 올리버(34)는 유명한 요리사다. 그러나 요리사 이상이기도 하다. ‘요리 운동가’다. 요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애초 그는 말 많은 신세대 요리사였다. 요리를 겁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지금 당장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손에 잡히는 재료 서너 가지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법을 보여줬다. 텔레비전을 통해.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그가 맨 처음 도전한 것은 ‘영국 음식은 세상에서 가장 맛이 없다’는 세계의 상식이었다. 이 상식을 깨는 데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국 여왕은 2003년 그에게 대영제국훈장을 수여했다.
피프틴 레스토랑과 함께 그가 도전한 것은 영국 학교의 급식을 바꾸는 일이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치킨너깃이 주메뉴이던 런던의 한 공립학교에 들어가 유기농 재료로 만든 식단을 내놓았다. 학생들은 거부했다. 그가 만든 음식을 버렸다. 결국 그는 초강수를 뒀다. 치킨너깃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줬다. 도살한 닭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남은 껍데기와 고기 찌꺼기를 지방과 섞어 튀긴 것이라는 사실을. 학생들은 경악했다. 도전 9개월 만에 그는 학생들의 입맛을 바꿨다.
그의 다음 타깃은 닭이었다. 정확히는 닭과 달걀 공장이었다. 지난해 1월 영국의 시청자들은 올리버가 살아 있는 병아리들을 무대 위에서 가스로 질식사시키는 장면을 봐야 했다.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옆에 있던 양계업계 관계자는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들은 이렇게 살처분한 뒤 사료화된다”고 인정했다. 곧바로 철창 속에 갇혀 하루 한 개씩 기계적으로 알을 낳는 암탉들의 현실이 그대로 보도됐다. 부화한 지 39일 만에 도살되는 육계(우리가 보통 ‘영계’라 부르는)의 비참한 모습도 이어졌다. 요리쇼는 이렇게 닭공장에서 키워진 닭고기와 달걀을 자연 방목한 닭고기와 달걀과 비교해 시식하는 것으로 끝났다.
영국에서는 그로부터 석 달 뒤 자연 방목한 닭고기와 달걀의 생산량이 공장형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761호에서 소개한 친환경 슈퍼마켓 세인즈버리에서 방목 달걀만 팔게 된 것도 사실 올리버 때문인 셈이다. 이제 그는 영국인들의 비만을 치료하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모든 진심은 운동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런던(영국)=글 임다희 인턴기자 dahee9928@hotmail.com·사진 이미선 인턴기자 i796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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