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제약 연구·개발의 90%는 10%의 부자를 위한 것이다. 원월드헬스는 90%의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위해 일한다.”
빛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원월드헬스’(OWH·One World Health) 연구소가 있는 곳이다. 지난 2007년부터 OWH를 맡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리처드 진(42) 대표이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현대 제약업의 수준이면 대다수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를 위한 제약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제약업체들이 돈이 되지 않는 약품은 연구·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수백만 명의 가난한 이들이 약만 있으면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어간다.”
OWH는 2000년 제약연구원 빅토리아 헤일이 세웠다. 그는 제약 본연의 의무는 경제성을 넘어서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헤일이 주목한 질병은 ‘리슈마니아 편모충증’이었다. 인도·네팔·방글라데시·브라질 등에서 연간 20만 명이 이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OWH의 홍보담당 버니사 샌커러는 “헤일은 이미 1960년대에 이 질병에 효과적인 치료약이 개발됐다는 것을 알았다”며 “문제는 경제성 때문에 이 약품이 시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헤일은 심장병 전문의인 남편과 함께 집 1층에 사무실을 차리고 일을 시작했다. 2002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세운 재단에서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협력도 이끌어냈다. 2004년, 2년에 걸쳐 역대 최대 규모로 3상 임상실험을 시행한 결과 약이 나왔다. 21일만 투약하면 95%의 환자들이 완치됐다. 기적이었다. 샌커러는 “우리가 개발한 약품이 첫 번째 치료제는 아니었지만, 가장 저렴한 약품이라는 게 중요하다”며 “기존 약품은 175달러(약 20만원)가량이지만, 우리 약품은 10달러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인도 정부는 2006년 말 이 약품을 승인했다. OWH는 빠른 생산과 보급을 위해 인도의 제약업체에 아예 특허권을 넘겼다. 업체가 원가에 약품을 공급하는 조건으로.
OWH는 현재 매년 200만 명의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설사 질환과 연간 6억 명이 감염되는 말라리아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이 질병들에 대해서도 이미 약은 개발돼 있다. 비싼 가격 때문에 가난한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OWH는 효과가 좋은 싼 약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리처드 진은 빅토리아 헤일이 퇴임한 이후부터 경영을 맡고 있다. 진 대표는 유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이민 1.5세대다. 하버드 의학전문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가 OWH 경영을 맡았을 때는 최고의 위기 상황이었다. 직원 절반 이상이 회사를 뜬 상태였다. 그는 “아예 새로 설립해야 할 상황이라 경영진을 대폭 교체하고, 사업구조도 크게 바꿨다”며 “재무 시스템 개혁과 과감한 비용 절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회고했다. WHO뿐만 아니라 다른 비영리단체나 재단과의 협력 관계도 재정립했다.
“우리는 굉장히 영리적인 마인드를 가진 비영리 단체다. 우리는 저개발국가의 환자들뿐만 아니라 정부와 제약업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단된 제약 연구를 재개해야 할 새로운 필요성을 제약업계에 일깨우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공유,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합법이었네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기차로 2시간. 정보통신과 차세대 기술의 중심지 실리콘밸리에는 미국 인권센터의 랜드만 박사가 “정의를 추구하고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곳은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말한 특별한 회사가 있다. 베네테크(Benetech). 공식 명칭은 ‘베니피션트 테크놀로지’(Beneficent Technology)다. ‘도움이 되는 기술’이란 뜻이다. 인권운동가, 환경운동가,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기술을 개발한다. 이를 위해 실리콘밸리에서도 내로라하는 공학, 지적재산권, 벤처 펀드 경영, 공공서비스 전문가들이 모였다. 베네테크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짐 프룩터맨을 만났다.
청소년 시절 프룩터맨은 공상과학소설 마니아였다. 하루 한 권씩 읽었다. 그에게 책은 소중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도 독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신념으로 1989년 비영리회사인 알켄스톤을 만들었다. 오픈북 서비스를 개발했다. 문서를 스캔해서 텍스트 파일로 만들고, 다시 음성 파일로 바꿔주는 시스템이었다. 시각장애인용이다. 이런 기능을 갖춘 제품은 보통 5만달러(약 6천만원)였다. 알켄스톤은 5천달러에 내놨다. 1999년 프룩터맨은 다른 회사에 알켄스톤을 넘겼다. 그 다음 일을 찾던 중 ‘냅스터’와 만났다.
“집에 있는 컴퓨터에 몇 개의 음악 파일이 있었다. 아들 지미가 내려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미는 ‘인터넷이 아닌 냅스터를 통해 받았다’고 했다. 물론 불법이었다. 하지만 굉장히 놀랍고 멋진 기술이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서로 좋아하는 노래들을 공유할 수 있다니.” 시각장애인도 스캔한 문서 파일을 서로 공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프룩터맨은 아들과 함께 하루 종일 펑크음악을 내려받으며 놀았다. 다음날부터 관련 법규를 모두 뒤졌다. 미국의 저작권법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든 자료는 공유를 허락하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직후 그는 엔지니어 출신 시각장애인 한 명과 베네테크를 설립했다. 2001년 시각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도서관인 ‘북셰어’ 서비스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시각장애인들끼리 스캔한 책을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출판사와 작가에게 허락을 받고 직접 스캔한 파일을 올려 공유하는 방법도 도입했다. 출판사들도 새로운 책 내용이 담긴 파일을 기증했다. 현재 북셰어는 5만 권의 장서 파일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시각장애인용 디지털 도서관으로 성장했다.
안전한 ‘인권침해 조사’ 프로그램 개발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분야가 베네테크의 활동 무대다. 베네테크가 개발하는 기술에는 기준이 있다. 먼저 인간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사회적 요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술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인권운동가들의 자료 수집과 관리를 위한 ‘마르터스’의 개발 이유가 이를 잘 보여준다. 1999년에 36년의 내전을 끝낸 과테말라에서는 그간의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가 필요했다. 유엔이 설립한 과거사규명위원회(Commission for Historical Clarification) 등 많은 단체들이 과테말라의 인권침해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전 기간에 죽거나 실종됐다. 당시 과테말라 인구는 100만 명 정도였다. 내전 당사자들이 인권탄압을 조사하던 기관들을 달갑게 볼 리가 없었다. 사무실은 수시로 습격당했고, 컴퓨터를 뺏겼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베네테크는 마르터스를 개발했다. 사용자들이 만든 데이터베이스를 암호화하고, 이를 외부의 안전한 서버에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마르터스는 현재 콜롬비아, 이집트, 이라크 등 10곳이 넘는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
베네테크는 환경운동가들의 환경 보존 프로젝트를 돕는 소프트웨어인 ‘미라디’도 만들어 공짜로 나눠줬다. 미라디는 환경 보존 프로젝트 디자인과 순위 선정, 프로젝트의 효율성을 판단해줄 모니터링을 해줄 수 있고, 전세계적인 활동가들이 프로젝트 정보도 공유하게 도와준다. 현재 82개 나라 환경운동가들이 이를 사용하고 있다.
프록터맨은 실리콘밸리에서도 알아주는 로켓 과학자였다. 1980년대 초반까지 스탠퍼드대학과 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공학과 응용물리학을 연구했다. 대학을 나온 뒤에는 몇 개의 성공적인 벤처기업을 세웠다. 위험을 안고 도전하고 성공하는 것에 즐거웠다. 그런데 왜 비영리 사회적 기업의 창업자가 되었을까?
“나는 기술자였다. ‘괴짜’라고 불리는. 나는 기술을 사랑했다. 우리 시대의 엔지니어들은 부를 위해 공학을 선택하지 않았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의사나 변호사가 답이었다. 우리 같은 엔지니어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술 본연의 목적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변화시켜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라고 했다. 물론, 그의 시선은 그 너머의 인간에게 맞춰져 있었다.
베네테크의 다음 작품은 ‘휴대용 전자기기’라고 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컴퓨터보다 작은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다. 들고 다니기 쉽기 때문에. 개인휴대단말기(PDA)와 스캐너를 짝짓는다면 멋지지 않겠나? 그것으로 교통신호를 읽거나 레스토랑 메뉴를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지난 5월 인터뷰 때 했던 이 말은 지금 현실이 됐다. 베테테크는 7월 초 ‘플렉스토크’란 벤처기업과 손잡고 교과서나 잡지, 신문 등 다양한 문자 정보를 음성으로 이용할 수 있는 ‘데이지’(Digital Accessible Information System) 플레이어를 개발했다. 또한 ‘코드팩토리’와 제휴해 액정에 뜨는 문자를 읽어주는 휴대전화도 개발했다. 꿈은 계속 현실이 되고 있다.
농민에게 장기 대출해주는 ‘나오미 펀드’볼 수 없다는 장애만큼 비참한 것이 빈곤이다. 지금도 전세계에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이 12억 명에 이른다. 이 문제에 ‘아그로스 인터내셔널’(Agros International)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중남미의 가난한 농민들을 빈곤의 악순환에서 탈출시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시애틀의 한적한 길가에 위치한 사무실은 흰색과 녹색으로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홍보담당 션 디몬드는 자부심에 찬 표정이었다. 그는 아그로스의 창립 과정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아그로스는 1982년 시애틀의 변호사 스킵 리가 설립했다. 그는 중국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유년을 중남미에서 보냈다. 리는 한 회의에 참석했다가 미국 정부에서 중남미의 내전에 수많은 비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시 이 사실을 말한 이는 “그 돈이면 중남미의 땅을 다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 말을 들은 리는 ‘중남미의 땅을 사서, 땅 없는 농민들이 스스로 땅을 살 수 있을 때까지 빌려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그로스가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디몬드는 “농촌 빈곤의 근본적 원인은 땅의 소유 구조에 있다”며 “전세계 농민의 75%는 소작농 또는 빈농이다. 땅의 재분배는 가난을 극복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루 1달러를 겨우 버는 이들이 대부분의 소득을 소작료로 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땅을 살 돈을 대출해준다. 이들이 경쟁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하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기금이 ‘나오미 펀드’다. 6~12%의 이율로 농민들에게 장기 대출을 해준다.
7~10년 만에 독립한 마을은 다시 조력자로대출만으로는 2% 부족하다. 기술도 인력도 없기 때문이다. 아그로스가 만든 대안은 ‘마을 공동체 개발’이다. 우선 ‘아그로스 마을’에 참가할 가족들을 모집한다. 5가구에서 20가구까지 규모는 다양하다. 이들은 아그로스 땅에서 경작을 한다. 경작 과정에서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수익성 높은 작물 재배법과 친환경 농사 기법을 배운다. 그 결과 미국으로 공정무역 커피를 수출하는 마을, 독일로 완두콩을 수출하는 마을이 생겼다. 아그로스의 도움을 받으면 마을의 이익은 4~5배 늘어난다. 자립 기반이 마련되는 동시에 대출금 상환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교육·의료 등 사회간접시설을 마련한다. 최종 목표는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아그로스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없다. 아그로스 전문가와 마을 주민들의 공동 작업으로 이뤄진다. 아그로스 마을의 설립부터 독립까지 걸리는 시간은 7~10년 정도. 독립한 마을은 제3의 아그로스 마을을 돕는 조력자가 된다. 지금까지 중남미 6개국에 모두 38개 아그로스 마을이 생겼다. 8500명이 넘는 빈농들이 새 삶을 찾았다.
아그로스의 그랙 레이크 전 회장은 “이런 변화는 주민들의 잠재력 덕분이었다”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돈과 훈련이었다. 지금껏 아무도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아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아그로스는 가난을 ‘관계의 단절’로 정의한다. 가난이 가족·지역 공동체와 같이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건강한 관계들을 무너뜨리고, 단절된 관계는 다시 가난을 낳는다. 아그로스는 이렇게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는 활동을 한다. 그 결과가 ‘마을로의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다. 가족 또는 회사 단위의 후원자들이 자매결연을 한 마을을 해마다 한두 번씩 방문한다. 이들은 일주일 정도 머물며 주민들과 함께 생활한다. 마을 아이들과 놀이도 하고, 주민들과 함께 마을회관도 짓는다. 이 과정에서 후원자들도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디몬드의 설명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안정된 수입과 부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중남미 농민들이 경제적 요인에 의한 관계의 단절을 겪고 있다면, 미국인들은 정신적 요인에 의한 단절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들을 이어준다. 자매결연과 여행을 통해 미국인은 가난한 이들을 돕고, 가난한 이들은 이들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해준다.”
아그로스는 개인과 재단의 기부로 운영한다. ‘재원 조달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디몬드는 주저 없이 “뚜렷한 가치와 운영 방식”이라 답했다.
“우리는 희망과 꿈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기부자들은 아그로스의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회혁신기업과 단체들이 그간의 성과들을 수치로 설명하지만, 우리는 좀 다르다. 그간 몇 채의 건물이 지어졌는지, 얼마의 돈이 투자됐는지를 설명하는 결과 보고서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그로스를 거쳐간 이들이 스스로의 자산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아그로스 마을의 근본적 목적이다. 후원자들도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지지한다.”
샌프란시스코·실리콘밸리·시애틀(미국)=함혜선 인턴기자 heysun14@snu.ac.kr
최수진 인턴기자 sujin12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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