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단돈 300만원을 사채업자에게 빌렸다가 연이율 345%의 덫에 걸린 딸을 목 졸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이야기에 우리 모두는 경악했다. 숨진 여대생이 창업을 위해 사채업자에게 300만원을 빌린 것은 지난해 11월. 6700만원으로 늘어난 이 돈은 결국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2009년 현재 국내의 금융소외자(신용불량자)는 모두 813만 명이다. 한국 사람 6명이 모이면 그중 한 사람은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신용카드를 이용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이들은 급한 돈이 필요할 때 출구가 없다. 사채 이외에는.
착한 대출 ‘원클릭닷컴’(oneclick.com)은 금융소외 계층을 고리사채의 길로 몰아가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꿔보자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대안 금융이다. 투자자와 대출자를 바로 연결해주는 P2P(peer to peer) 방식이다. 먼저 대출자가 원클릭닷컴 사이트에 돈이 필요한 이유나 사업 내용, 상환 방법 등을 적어 올린다. 아이 병원비, 아버지 장례식 비용 등으로 급한 돈이 필요하다는 사정이 주를 이룬다. 창업 아이디어를 올린 이들도 있다. 투자자들은 내용을 읽고 대출자가 상환을 잘할지 예상해 투표를 한다. 궁금한 사항을 대출자에게 질문하기도 한다. 투자자들로부터 ‘믿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대출자는 대출을 받게 된다. 이른바 ‘경매 방식’의 대출이다. 이자율과 상환 기간은 대출자와 투자자들이 스스로 정한다. 대출자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이자율을 정해서 올리면, 투자자들이 그 안에서 자신이 받고 싶은 이자율을 정한다. 투자 금액은 다양하다. 보통 100만원 대출에 40명의 투자자가 모인다. 평균 2만5천원 정도인 셈이다. 원클릭닷컴에 투자해본 안아무개(35·회사원)씨는 “대출 신청자의 사연을 꼼꼼히 읽어보고, 정말 형편이 어렵다고 생각되면 ‘그냥 돕자’ 싶어 최저치인 1%의 이자율을, 대출자가 갚을 여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30%의 이자율을 정한다”며 “보통 2만~3만원의 돈이지만 동정이 아닌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상환은 잘 이루어질까? 원클릭닷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안고 찾아간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가정집이었다. 오피스타운 옆의 가정집을 사무실로 개조해 쓰고 있었다. 신현욱 대표가 반갑게 맞아줬다.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신현욱 대표는 “현재까지 350건의 대출이 이뤄졌고 그중 20건만이 대손 처리(대출금 상환 포기)됐다”며 “현재 대출은 최대 한도가 300만원으로, 대부분 100만원 범위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갚기 어려운 금액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클릭닷컴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7년 7월이다.
신 대표는 “최근 들어 신규 회원들이 아무 대출건이나 쉽게 대출해주는 경향이 있다”며 “투자자들이 좀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원클릭닷컴에 대출을 신청하려면 10여 가지의 문서를 제출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그 문서와 상환 계획 등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투자를 해야 한다. 그래야 대출자들의 모럴해저드를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자들 중에서 수익률 랭킹 20위에 드는 회원들은 그냥 사연만 보고 투자하지 않습니다. 상환 계획 등을 꼼꼼히 따져 투자합니다. 이런 분들은 대체로 저희 사이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하루 8시간을 보는 회원분도 있어요. 또 저희보다 투자에 대해 더 많은 정보와 원칙을 가지고 계시죠.”
초반에는 신종 사금융 업체로 오해받기도원클릭닷컴에서는 투자자 모임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창구도 만들었고, 수익률 랭킹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는 이들의 특징을 밝혀내기 위해 그간의 투자 결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원클릭닷컴이 존속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신 대표는 “우리 회원들이 일반은행 대출금리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원클릭닷컴은 지난해부터는 저축은행과 제휴를 맺어 대출하고 있다. 원클릭에서 대출 낙찰이 이뤄지면, 실제 대출은 저축은행에서 한다. 대출에 동의한 투자자들이 담보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원클릭닷컴 운영팀의 차상민씨는 “대출자들이 공신력 있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고 이를 상환한 기록을 남김으로써 이들의 신용등급이 올라갈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상환 비율이 높아져 투자자 입장에서는 더욱 활발하게 투자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씨는 “원클릭 운영 초기에는 투자자들이 직접 투자를 하게 한 결과 개인들이 대부업자로 판정받을 수 있는 문제점이 있었다”며 “저축은행을 통해 대출하게 되면서 이런 문제도 해결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신 대표는 “초창기에는 신종 사금융 업체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신 대표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다가 영국의 P2P 대출 기업인 조파닷컴(zopa.com)을 알게 되면서 한국에서도 이런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비슷한 성격의 미국 프로스퍼닷컴(prosper.com) 사례를 분석하면서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뜻있는 투자자들을 모아 ‘팝펀딩’(원클릭닷컴의 전신)을 시작했다. 대안 금융에 관심을 보인 이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난 이들이 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원클릭닷컴의 목표요? 당연히 한국의 금융소외 계층을 없애는 것이죠. 저희가 투자와 대출 데이터를 꼼꼼히 모아 분석하는 이유는 앞으로 원클릭에서 더 큰 액수의 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 대표의 말이다.
대손 위험 없애기, 연대의식 세우는 과정성장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클릭닷컴 초기에 이뤄진 100건의 대출 가운데 대손 처리된 것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대손 처리를 한 20건은 그 후 성사된 250건에서 발생한 거죠. 커뮤니티가 커지면서 대손 발생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 겁니다.” 원클릭닷컴에서 대출할 수 있는 금액이 커지면,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위험은 그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위험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위험을 없애는 과정이 우리 사회의 ‘연대의식’과 신뢰를 다시금 세우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원클릭닷컴의 또 다른 목표는 금리 낮추기. 파생금융상품도 만들고, 카드사와 제휴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대중이 더 쉽게 원클릭닷컴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인터넷의 기본 정신은 개방과 공유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아픔을 개방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자원을 나눌 수 있는 공간. 원클릭닷컴을 나오면서 이런 공간이 꼭 만들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함혜선 인턴기자 heysun14@snu.ac.kr·최수진 인턴기자 sujin121@korea.ac.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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