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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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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why not] 좋은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여행


내몽골 체험에 일반 유적지 답사 합친 4차 공정여행 동행 취재…
새로운 경험만큼 참가자들 사이에 쌓인 우의가 뜻깊어
등록 2009-08-18 15:53 수정 2020-05-03 04:25
은 749호 지구를 바꾸는 행복한 상상 Why Not ‘촛콜릿처럼 여행도 착하게’를 시작으로 국제민주연대가 주관하는 공정여행 소식을 전해왔다. 시작된 지 6개월 만에 공정여행은 어느덧 제 궤도에 올라 8월에는 내몽골과 티베트(차마고도) 프로그램이 진행됐거나 진행 중에 있다. 이 가운데 4차 공정여행인 ‘내몽골 초원 게르에서 잠들다’를 직접 따라가봤다. 편집자
드넓은 초원에서의 몽골말 타기 체험.

드넓은 초원에서의 몽골말 타기 체험.

문득 눈을 떴다. 의자를 눕힌 채 곤히 잠든 이들이 내쉬는 숨소리와 버스 엔진 소음만이 귓전에 들려왔다. 창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진 상태. 의자에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게슴츠레한 눈길로 어스름한 바깥을 살폈다. 너른 들판 같은 대지의 윤곽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곳이 바로 내몽골 초원이구나.’

마두금 연주와 노랫소리 속에서 마유주를 따라주는 몽골족의 전통적인 환영 의식을 받는 공정여행 참가자들.

마두금 연주와 노랫소리 속에서 마유주를 따라주는 몽골족의 전통적인 환영 의식을 받는 공정여행 참가자들.

노래 부르며 마유주 따라주는 몽골식 환영
국제민주연대 공정여행 진행 현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제민주연대 공정여행 진행 현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좀더 시간이 흘러 버스에서 내릴 때는 한밤중이었다. 오전 11시께 베이징에 도착해 후퉁 거리 민가에서 식사를 한 뒤 만리장성의 잔존성 일대를 둘러보고 버스를 탄 지 4시간여 만에 도착한 초원은 새카만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다. 갑자기 낭랑한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몽골식 전통 복장을 입은 남성이 가냘픈 듯하면서도 성량이 큰 특유의 목소리로 노랫말을 읊조리며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 옆에서 술잔을 들고 있던 여성은 잔이 채워질 때마다 미소와 함께 우리 일행에게 일일이 잔을 건넸고, 또 다른 몽골인은 옆에서 ‘마두금’이라는 몽골의 전통 현악기를 연주했다. 반가운 손님이 오면 노래와 함께 말의 젖을 발효시켜 빚은 마유주를 따라준다는 몽골의 전통 환영 의식이었다. 희미한 전구 불빛 너머 게르의 모습을 바라보며 술잔을 들이켰다.

날이 밝자 초원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아침 일찍 게르에서 나와 일행 몇몇과 함께 올라간 고즈넉한 풍경의 언덕에서는, 날이 좀 흐리긴 했지만 사방이 탁 트인 시원한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너른 평원과 야트막한 동산들이 끝없이 연결된 모습이었다. 중간중간 옥수수밭과 나무가 심어진 숲·마을이 보였고, 전날 밤 우리를 태운 버스가 달려왔을 도로도 눈에 띄었다. 저 멀리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풍력발전기 여러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양떼들이 풀밭을 가로질러갔다. 양떼 뒤로 한 손으로는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긴 작대기로 양떼를 몰아가는 현지인의 모습이 이채롭게만 느껴졌다.

사실 이국적이긴 했지만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광활한 초지와는 거리가 있는 풍경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찾은 타이푸쓰치 초원이 내몽골자치구 가운데서도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지역인 만큼 개발의 손때를 많이 탔기 때문이리라.

몽골족의 전통적인 거주 수단인 게르 안에서의 식사.

몽골족의 전통적인 거주 수단인 게르 안에서의 식사.

제일 안타까운 점은 발밑 풀들의 키가 너무 작다는 점이었다. 내몽골로 오는 버스 안에서 들었던 설명이 떠올랐다. “중국 정부가 유목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땅을 나눠주면서부터 풀이 많이 줄었다. 유목민들은 계절마다 풀이 나는 지역을 옮겨다니며 목축을 했지만, 정착 생활을 한 뒤로는 풀이 자랄 틈이 없어 황폐화되고 있다.” 여기에 내몽골 초원의 인구 또한 급증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당시 내몽골자치구에는 몽골인 유목민 230만여 명이 살고 있었는데, 내몽골자치구의 현재 인구는 2300만 명가량이다. 이 가운데 몽골인은 10%를 약간 넘는 수준이고, 주로 상업과 농업에 종사하는 한족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초원은 초원이었다. 한가로운 양떼들의 모습도, 광대한 푸른 벌판도, 게르 한쪽에 집채만큼 쌓아놓은 말똥들도, 이곳 내몽골 지역에서 처음 보는 풍경이 아니던가.

아침 식사 뒤엔 본격적인 초원 체험이 시작됐다. 첫 번째는 몽골 말 타보기. 몽골 말은 경주용 말과 제주도 조랑말의 중간 정도 크기였다. 한때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했던 명마의 위용치곤 너무 소박한 모습이었다. 난생처음 잡아본 말고삐가 어색했지만 현지인의 길라잡이를 받아 조금씩 걷다 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어떻게 말을 세우고 방향을 조정하는지 설명을 들은 다음 혼자 말을 몰았다. 워낙 순한 말이었던지 말을 잘 들었다. 10~20분가량 말을 탄 뒤 고삐로 말 목 부분을 살살 치자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말이 속도를 냈다. 빠른 속도로 언덕 위를 오르내리는 말도 보였다. 버스 안에서 승마동호회 회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부산에서 올라온 오해진(52)씨가 탄 말이었다. 이 모습을 구경하는 이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황량한 초원임에도 다양한 체험거리들

이어지는 초원 체험 일정은 빡빡했다. △활쏘기 △몽골인 가정 방문과 몽골식 두부 맛보기 △몽골 전통 사찰 방문 △초원 산등성이 트레킹 △소젖 짜기 구경 및 체험 등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이 낸 참가비의 1%씩을 모아 마련한 학용품은, 학교가 방학 중이어서 학교 선생님에게 전달해야만 했다.

내몽골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

내몽골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

밤에는 통째로 구운 양을 안주 삼아 마유주를 들이켜며 몽골 전통 공연단의 공연을 봤다. 전통 복장을 한 채 밥그릇 여러 개를 쌓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음악에 맞춰 민속춤을 추는 여성들, 마두금을 연주하는 남성들의 얼굴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연이 절정에 오르자 구경하던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나 이들과 어울려 함께 춤을 췄다. 춤은 자연스레 캠프파이어를 중심으로 한 강강술래로 변했고,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날이 흐린 탓에 초원 하늘의 별들을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었다. 이튿날 아침 초원을 떠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오랜 세월 햇빛에 그을린 얼굴 한가득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몽골인들의 표정이 정겨웠다.

다음부터는 일종의 유적지 탐험이었다. 내몽골자치구에서 5시간가량을 달려 산시성 다퉁시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윈강석굴을 찾았고, 이어서 잉현으로 가 1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60여m 높이의 목탑을 봤다. 모두 중국다운 거대함을 느낄 수 있는 문화유적이었다. 이튿날에는 5악 가운데 하나인 헝산의 암벽에 매달린 쉬안쿵사(현공사)와 현존하는 중국의 역참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됐다는 베이징 인근의 지밍역(계명역)을 돌며 옛 중국인들의 삶의 자취를 살폈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첫날과 마찬가지로 베이징 시내에서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는 후퉁 거리에서 중국의 전통 가옥과 수나라 때 만들어졌다는 대운하를 구경했다.

소젖을 짜는 몽골족 여인(왼쪽). 내몽골초원 언덕에는 돌무더기와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어워’가 있다. 어워는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비슷하다.

소젖을 짜는 몽골족 여인(왼쪽). 내몽골초원 언덕에는 돌무더기와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어워’가 있다. 어워는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비슷하다.

중국 남서부 윈난성의 소수민족들과 어울러 그들의 삶을 느껴보는 것이 1~3차 공정여행의 의미였다면, 4차 공정여행은 내몽골 소수민족과 함께하는 일정과 일반 관광 코스가 반씩 섞인 듯했다. 공정여행의 순도가 좀 낮아졌다고나 할까. 그에 따른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체험하고 보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오랜 버스 이동 시간은 참가자들을 쉬 지치게 만들었다. “차라리 내몽골에 집중해 그곳에서 좀더 지내다 왔으면 좋지 않았겠나”라며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유적지 관광에서도 공정여행은 일반 패키지 여행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같은 만리장성 가운데서도, 절대다수의 관광객이 찾는 번듯하게 잘 관리된 바다링(팔달령) 지역 대신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지만 세월의 두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허름한 잔존성을 찾은 게 대표적이다. 또 첫날 베이징에서 일반 식당이 아니라 민가를 찾아 현지 주부들과 함께 만두를 빚고 ‘가정식 백반’을 맛본 것도 일반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미였다.

현지 양꼬치 포장마차에서 단합대회도

만리장성 가운데서도 역사와 세월의 두께가 가장 잘 드러난다는 잔존성.

만리장성 가운데서도 역사와 세월의 두께가 가장 잘 드러난다는 잔존성.

일반 패키지 여행과 가장 큰 차이는 무엇보다도 참가자들 면면에 있었다. 교사와 공무원, 회사원, 주부, 학생,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변호사 등 다양한 직종의 참가자 35명이 전국에서 모였는데, 다들 현지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유쾌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또래끼리 금세 친구가 돼 어울렸고, 어른들 또한 버스나 숙소에서 먹을거리를 함께 나누며 수시로 웃음꽃을 피웠다. 이틀째부터는 상당수 참가자들에게 ‘별명’이 붙여졌고 그것을 부르며 거리를 좁혔다. 특히 세쨋날과 넷쨋날 밤에는 참가자 상당수가 잉현과 베이징의 숙소에서 나와 길거리 양꼬치 포장마차를 찾았는데, 마치 오래만에 열린 동창 모임처럼 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때의 비용은 참가자들이 갹출했는데, 1인당 20~30위안(우리돈 약 3800~5700원)에 불과했다.

그만큼 정이 들어서였을까. 8월12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포옹으로 인사를 나눴으며, 맞잡은 손을 쉽사리 떼지 못했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는 이도 적지 않았다. 조만간 국내에서 2차 모임을 열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1차 공정여행에 참가한 뒤 “공정여행이 좋아서” 국제민주연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이번 4차 공정여행에 스태프로 참여한 이귀정씨는 “지금까지 공정여행에 참가했던 이들 상당수가 온라인 카페에 가입해 소식을 나누며 종종 번개 모임을 갖거나 국내 공정여행을 다녀오고 있다”며 “이번 공정여행 참가자들도 좋은 만남을 이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공정여행 기획한 최정규 여행작가
“5차 여행 뒤 사회적 기업 전환 논의할 것”


최정규 여행작가

최정규 여행작가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제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여행작가 최정규(37·사진)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공정여행이란 아이디어를 만든 것도, 여행지를 답사하고 프로그램을 짠 것도 온전히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 공정여행을 시작하게된 계기는.
= 지난해 초 공정무역 단체로부터 현지 생산시설을 방문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일반 여행상품과 너무 비슷하더라. 알고 보니 여행사가 짜준 것이었다. 이것은 아니다 싶어 공정여행 콘셉트를 구상했고, 평소 회원으로 활동하던 국제민주연대에 제안하게 됐다.
- 그동안의 공정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은 모습은.
= 1차 여행 때 몇 사람이 학용품을 잔뜩 사다가 현지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그 모습이 좋았던지 당시 참가자들이 다음 공정여행 때 학용품 마련에 보태라며 1만원, 3만원, 5만원, 10만원씩 보내주고 있다. 그동안 몰랐던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 모습들이 좋더라.
-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 항상 고민이다. 내가 생각하는 콘셉트와 대중성이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진짜 체험’은 힘든 것이어야 하는데, 너무 심한 오지 체험이 될 경우엔 반감이 생길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좀더 견인해나가야 하는데, 적당히 타협할 때도 있다.
- 구체적으로 개선할 점은.
= 좀 느슨한 프로그램을 짜야 하는데…. (웃음) 조금이라도 더 현지인을 만날 수 있도록 하려고 빡빡한 스케줄을 짜고 있는데, 그런 욕심을 버려야 할 것 같다.
- 공정여행 비용이 싸지는 않은 것 같다.
= 일반 여행사가 제시하는 비용에는 팁과 필수 옵션, 쇼핑 등 또 다른 비용이 숨어 있다. 하지만 공정여행은 그 모든 게 포함된 가격이다. 답사비 등을 감안하면 거의 원가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
= 시민단체에서 캠페인성으로 진행하기엔 벅찬 규모가 된 것 같다. 5차 공정여행을 다녀온 뒤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할지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다. 공정여행이 일반 여행사로도 퍼져 여행 문화를 개선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내몽골·산시·베이징(중국)=글·사진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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