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4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시분향소를 찾은 추모객이 술 한 잔을 영정 앞에 올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나(生)는 것은 죽음의 시작이요 성(盛)한 것은 쇠하는 것의 발단이다. 영화스러운 것은 욕되는 일의 조짐이요 얻는 것은 잃는 것의 원인이다. 그런 때문에 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고, 성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고, 영화스러우면 반드시 욕됨이 있고, 얻으면 잃게 되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되는 정당한 이치로서, 어리석거나 지혜가 있거나 간에 아무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어두운 사람은 매양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성한 데에 처해 있으면서도 이를 그칠 줄 알지 못하고, 영화를 탐내어 피할 줄 알지 못하고, 얻는 것만 힘쓰고 경계할 줄 모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이수광, <지봉유설> 권17 사망)
살아오면서도 부끄러움을 안 사람, 대통령이라는 무한에 가까운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누리기를 버린 사람, 도회의 모든 영화를 훌훌 털어버리고 태를 묻은 궁벽한 고향땅으로 돌아온 사람, 노무현 전 대통령이 5월29일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그야말로 “날 때에는 한 가지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고 죽을 때에도 한 가지 물건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는 옛사람의 말처럼, 부귀도 영화도 미련도 후회도 모두 버리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이다. 아, 노무현 대통령이여, 죽어서 돌아가 천명(天命)을 즐길 것이니 무엇을 다시 의심하랴. 하나 속진의 인연을 끊지 못하는 자 슬프고 슬플 뿐이니, 곡(哭)하며 이 글을 메워간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다. 그러나 죽음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아주 일찍부터 인간들의 관심을 지배했다. 이러한 관심은 그 극복의 도구로서 장례와 제례 문화의 탄생과 발전으로 이어졌다. 곧 이승과 저승을 잇는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탄생이 축복인 것처럼 죽음도 축복 속에 새로운 세계로 떠나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장례의식을 행하는 동물’이라 했고, 볼테르는 “인간은 자기가 죽으리라는 것을 아는 유일한 종(種)으로서, 그들은 경험을 통해 죽음을 인식한다”고 말했다.
장례와 제례 의식은 믿음에 따라 하늘에서의 영원한 삶을 구하거나, 땅으로의 새로운 환생을 비는 구조로 이뤄진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보면, 장례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별 의식이고, 제례는 죽은 자에 대한 산 자의 기억을 이어가는 회상 의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별하고자, 그에 대한 사연과 기억을 공유하고자 전국 방방곡곡 수백 군데에 분향소가 차려지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렸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 반 술 반의 음복(飮福) 잔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설문해자>에 보면 복(福)자에는 ‘제사 때 바치는 술과 음식’이란 뜻도 있다. 그러므로 음복은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죽은 사람과의 일심동체를 확인하기 위해 제상에 올라왔던 제주와 제수를 나눠먹는 절차인데, 음식보다는 술이 중심이다. 곧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술과 음식을 나눠먹음으로써 하늘과 땅, 조상과 후손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의 뜻이 발전해 요즘에는 음복을 해야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골고루 복을 받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장례와 제례가 축복의 의식인 만큼 그렇게 해석해도 나쁠 것은 없다.
사악한 패거리들에 의해 평생을 지켜왔던 자존심이 능멸되고, 상식과 의식을 가진 한 인간의 품격이 조롱당하고,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뤄왔던 숱한 성과와 가치들이 부인되고 유린되는 것을 보다 못해 스무 척 바위 아래로 육신을 던진 그.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며 남은 이들을 위로한 그이지만, 뼈에 사무치는 이 한과 슬픔은 어찌할꼬. 오늘 밤에도 신갈 오거리 분향소에서 술 한 잔 올리고 음복, 또 음복으로 당신과의 끈을 이어가는, 그리하여 이뤄지는 이별을 연습한다.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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