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버스 차벽이 서울광장을 도도하게 둘러싸고 버틸 수 있는 배경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서울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경찰은 서울광장을 버스 차벽으로 막아놓고는 서울시의 광장 사용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들었다. 민주당 쪽에서 사용 승인 신청을 하자 서울시는 “광장은 시민의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추모제를 열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버텼다. 서울시 공무원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것도 아닌 공간에서 전직 대통령 추모 행사가 불허되는 근거는 뭘까?
발단은 서울시 조례다.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는 조례 제정의 목적을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을 위한 서울광장”의 사용과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와서 쉬거나 문화 행사를 여는 게 서울광장의 조성 취지라는 것이다. 물론 이 조례에 조문 행사나 정치적 목적의 집회를 금지한다는 조항은 없다. 항상 그 취지가 악용될 뿐이다.
이 조례는 2004년 5월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시의회를 통과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광장에 잔디를 까는 게 적절한가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 뒤 실제로 서울시는 잔디 보호와 교체를 이유로 허다하게 서울광장 사용 승인을 불허하며 입길에 오르내렸다. 심지어 보수단체에는 사용을 허가하고 진보단체 행사는 불허한다는 편파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5일에는 전역 군인들의 모임인 ‘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들이 서울광장 잔디 위에 전사자의 위패와 대형 태극기를 수천 개 설치해놓고 행사를 벌인 적도 있다. LPG 가스통을 틀어놓고 과격 시위를 벌여 처벌받은 적도 있는 전직 군인들은 이곳에서 위령제를 열 수 있어도 전직 대통령의 상을 맞아 조문 행사는 열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된 공간이 서울광장이다.
마침 서울시의회는 5월28일 ‘광화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 광화문광장은 서울 광화문 바로 앞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 기존 도로의 폭을 좁혀가며 공간을 확보한 새 도심 공원이다. 7월 초 문을 열 계획이다. 이달 초 시의회를 통과해 이날 공포된 조례의 내용은 서울광장의 것과 거의 유사하다.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이 주목적이다. 일찌감치 시위대가 장악할 것을 우려한 경찰 쪽 반대로 조성 계획 자체가 흔들리기도 했다. 정부청사와 미 대사관 등에 인접한 탓에 광화문광장은 앞으로 제도 정치에서 소외받고 언로를 확보하지 못한 ‘작은 목소리들’이 터져나오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임이 틀림없다. 억측이었으면 좋겠지만, 시는 또 조례를 기반 삼아 사용승인을 내주지 않고 경찰은 버스 차벽을 둘러쳐 막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 권한을 서울시설공단에 넘기기로 했지만, 공단이 서울시 입김을 벗어날 순 없다.
구체적인 시민 삶을 규율하는 조례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장이 두 차례 연속 집권했고, 현역 서울시의원 102명 가운데 96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중앙정부에 비해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는 느슨하다. 그 틈을 비집고 시민을 배반하는 조례는 계속 재생산된다. 조례는 법률보다 더 구체적인 시민의 삶의 양식을 규율한다.
한 서울시 간부의 말이 가슴을 치게 한다. “잘 보라. 시민들은 시의원들이 뭘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저래 놓고 저들을 또 뽑아준다. 예전엔 막걸리라도 한 사발 얻어먹고 뽑아줬지만, 요즘엔 그것도 아닌 게 차이라면 차이일 뿐.”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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