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재벌 놀음이 잡아먹은 ‘두꺼비’


진로 창업자의 한 우물 파기와 2세 회장의 여러 우물 파기, 그리고 80년 묵은 덕산양조장의 미덕
등록 2009-12-23 18:08 수정 2020-05-03 04:25

내 둘째 처남은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진로’아파트에 살고 있다. 1년에 한두 번 둘째 처남 집에서 처갓집 모임을 여는데, 진로 소주병처럼 디자인 개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밍밍한 외양에 내부 구조조차 그저 그런, 싸구려 3류 건설업자가 지은 듯한 그 아파트에 들어설 때마다 한심한 생각이 든다. ‘진로’가 어떤 회사인가. 우리나라 최고 최대 소주회사이니, 당연히 세계 최고 최대 소주회사가 아니겠는가. 그런 회사가 건설회사 만들어 아파트를 지을 생각을 하다니, 코카콜라가 건설회사를 계열사로 둔 꼴이라고나 할까.

확인할 길은 없지만, 고인이 된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나 현대의 정주영 회장도 생전에 진로를 부러워했을지 모른다. 단순화하자면, 국세청에서 배정해주는 주정에 우물에서 무한정 뽑아올릴 수 있는 물을 붓고 약간의 첨가물을 넣어 병에 담아내면 그날 저녁 전국의 장삼이사들이 다투어 현금으로 바꿔주니, 세상에 그런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상당 기간 술꾼들에게 ‘소주는 진로이고 진로는 소주’를 넘어 ‘술 자체가 곧 진로’였다. 공장에서 막 나온 따끈따끈한 소주를 차떼기로 도매상이나 술집으로 바로 운송하는, 제조업체로서는 유일하게 완제품 창고가 없는 회사가 진로였던 것이다.

백두산 삼나무로 지은 세왕주조 건물 안에는 70년 이상 된 술독들이 즐비하다. 김학민

백두산 삼나무로 지은 세왕주조 건물 안에는 70년 이상 된 술독들이 즐비하다. 김학민

진로의 창업자는 1985년 81살로 세상을 등진 장학엽씨다. 그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진천양조상회를 설립하고 ‘진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장학엽씨는 6·25 전쟁 시기에 남쪽으로 내려와 부산에서 소주 ‘금련’을 생산하다 환도 뒤 영등포에서 소주 생산을 본격화했다. 진로는 1965년 제조 방식을 증류식에서 희석식으로 바꾸면서 크게 도약해, 5년 만에 업계 1위인 삼학소주를 제쳤다. 그러나 흥하면 언젠가는 이지러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 1985년 한 우물을 파던 창업자가 타계하고 제2대 회장을 이어받은 장진호씨가 여러 우물을 파면서 진로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소주·위스키·매실주 등을 생산·판매하는 (주)진로 외에 음식료품 전문 진로종합식품, 진로쿠어스맥주, 진로식품판매, 고려양주, 진로지리산샘물, 화장품을 생산하는 쥬리아, 유리병 제조업체 진로유리, 전선 제조업체 진로산업, 삼원, 도·소매 유통업의 진로종합유통, 진로출장연회, 진로하이리빙, 진우통신, 청주진로백화점, 진로인더스트리, 건설업과 운송업의 남부터미널, 진로건설, 남부화물터미널, 우신공영, 진로엔지니어링, 금융업의 우신상호신용금고, 우신선물, 우신투자자문, 광고업의 GTV, 우신중·고등학교 등이 소주 팔아 만든 진로그룹의 ‘계열사’였다.

그러나 아파트 건설, 제약, 화장품, 전자, 전선, 백화점, 유통 등의 사업은 ‘주정에 물 붓기’가 아니라 ‘깨진 독에 물 붓기’였다. 무리한 인수·합병과 사업 확장으로 극심한 자금난을 겪게 돼 1997년 9월 법정관리와 함께 화의 신청을 하고 부도를 냄으로써 망하려야 망할 수 없는 ‘국민기업 진로’는 도산하고, 결국 장진호씨의 ‘재벌 놀음’ 10년도 파탄을 맞았다. 이후 진로는 채권단의 관리하에 간신히 연명하다 2005년 7월 하이트맥주에 인수됨으로써 장씨 일가의 80년 ‘진로 시대’는 막을 내리고, 박씨 일가의 ‘하이트·진로 시대’로 바뀌었다.

충북 진천군 덕산면에 가면 진로와 같은 시기인 1924년에 세워진 ‘세왕주조’ 덕산양조장(043-536-3567)이 있다. 할아버지 이장범, 아버지 이재철씨에 이어 아들 이규행(50)씨가 3대째 정직한 마음, 정직한 주질, 정직한 제품 생산으로 장인 정신의 한 우물만 파고 있다. 이규행씨는 오로지 가계 전승과 독학으로 상당 수준의 양조 기술을 익혔다. 선대 때부터 유명한 약주와 그가 직접 개발한 ‘천년제례주’, ‘천년주’, ‘천마활보주’가 지난 9월 국세청에서 주류품질인증을 받았다.

할아버지 이장범씨가 백두산 삼나무를 벌채해와 1930년에 완공한 덕산양조장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58호로 지정돼 있는데, 건물 안 발효실에는 70년 이상 된 큰 술독들이 아직도 현역으로 ‘근무’하고 있다. 최근 오크통과 술독을 형상화해 지은 저온창고에는 멋진 시음장이 딸려 있어 덕산양조장의 갖가지 술을 맛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고, 눅은 값으로 술도 살 수 있다. 관광 코스 강추!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이번호로 ‘김학민의 주류인생’을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