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청년이 서울 송파구 서울스카이 전망대에서 강남과 송파 일대 아파트들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초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논란이 됐다. 글쓴이는 “개나 고양이를 키울 때도 경제력이 제일 중요하다. 애가 다니고 싶은 학원 하나 못 보내주고, 갖고 싶은 장난감 하나 못 사주고, 대학 입학해서는 용돈 한 푼 없이 남들 해외여행 가고 놀러 다닐 때 알바 전전하게 만드는 것은 안 된다”며 “가난하면서 애를 낳는 것은 죄악이다. 꼭 싸우고 욕하는 것만이 가정폭력이 아니다. 가난도 가정폭력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 글은 많은 이에게 호응을 얻으며 여기저기 퍼날라졌다. 비슷한 시기에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아이들을 두고 “낳음 당했다”고 말하는 표현도 널리 쓰였다. ‘가난하면서 애를 낳는 건 죄악’이라는 글이나 ‘낳음 당했다’는 표현은 모두 가난한 부모를 원망하는 정서를 담고 있다.
32살 김현제는 성인이 되고 난 뒤 “한 번도 일을 쉬지 못했다”고 말했다.(표지이야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모 빚을 상속받은 김현제는 평생 “혼자 쓰는 방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 소원을 위한 반전세 보증금 마련에 13년이나 걸렸다. 김현제는 부모 자산을 상속받고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거나 전문직 자격증을 따기 위해 손쉽게 퇴사하는 또래들을 보면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끼리 ‘계급통 느낀다’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속한 계급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상황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 ‘부모의 재산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수저계급론이 등장한 건 2010년대 중반이다. 이때만 해도 계급론은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한 채 ‘개인이 그저 노오력만 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회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는 도구로 쓰였다. 청년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조직문화가 판치는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부르며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담론이 퍼진 것도 이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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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0년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불평등을 야기하는 구조와 사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가난은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하는 죄악이고, 가난한 사람은 재생산을 할 자격도 없다는 말이 널리 유통된다. 가난에 대한 혐오, 현실에 대한 체념 정서가 퍼지면서 가난으로 인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구조를 겨냥하는 계급‘론’이 아니라 개인이 감내해야 할 계급‘통’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파고 있다.
이런 사회가 된 것은 오로지 정치 탓이다. 2010년대 초반 더 나은 복지 정책을 다투던 거대 양당은 최근에는 앞다퉈 상속세 완화 카드를 내밀며 ‘부자 감세’에 몰두한다. 조기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한국 사회의 갈등 원인을 ‘양극화, 불평등, 격차’라고 진단하면서도, 해결책으로 조세 정책을 통한 공공부조가 아니라 정부 단위의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와 인력 양성을 통한 경제 성장을 꼽았다. ‘중도보수’ 선언에 부합하는 방향성이다. 내란세력인 국민의힘의 친부자 성향은 말할 것도 없다.
한겨레21이 윤석열 파면으로 열린 조기 대선의 첫 사회적 의제로 ‘상속계급사회’를 제시하는 까닭이다. 가난은 개인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이야기가 내란 이후 사회 대개혁을 말하면서 다시 거론되길 앙망하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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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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