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 무렵인 1960년대 초에 전기구이 통닭집이 등장한 것 같은데, 그때 받았던 충격(?)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닭 한 마리로 죽을 쑤거나 국으로 끓여 여러 식구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먹는 것이 아니라, 닭을 통째로 구워 한두 사람이 뜯어먹다니! 해가 뉘엿뉘엿 져 학교에서 돌아올 즈음, 동네 전기구이 통닭집의 불이 훤히 밝혀져 있고, 유리창 안 그릴에서는 쇠막대에 꿰인 닭들이 빙빙 돌아가며 전기 열기에 기름이 빠지면서 껍데기가 노릇노릇 익어가는, 그리하여 집에 가는 것도 잊고 잠시 성장기의 끝 모를 허기를 눈으로 해결하던 내 어릴 적 로망의 한 풍경이다. 영양센터! 아, 그 통닭집 이름은 또 얼마나 멋졌던가.
그 무렵 청량리에 살던 내 사촌형님이 맞선을 보기로 했는데, 만나는 장소가 지금은 없어진 답십리 입구 오스카극장 건너편 ‘청량리영양센터’였다. 언젠가 사촌형수에게, 그날 선보면서 두 분이 통닭을 뜯어먹었느냐고 물으니, 그때는 청량리 부근에서 그 집이 제일 고급이었다고 에둘러 대답했다. 우리 집은 칠남매로, 10년 이상 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이 줄곧 재학하고 있어 항시 살림이 쪼들렸다. 그러므로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알뜰살뜰한 우리 어머니의 닭은 죽이요 국이었지 ‘영양센터’는 아니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자 바로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첫 월급을 타자마자 그날 저녁 영양센터 통닭을 사가지고 가 어릴 적 그 못다 한 로망을 이루었다.
영양(營養)은, 생물이 생명을 유지하고 몸을 성장시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성분을 섭취하는 작용, 또는 그 성분을 뜻한다. 생리학 용어인 ‘영양’을 지금은 모두 영양(營養)이라고 쓰고 있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영양(榮養)으로 표기했다. 동양에서는 애초부터 영양(營養)이라는 개념이 확실하지 않았을뿐더러, 동양에서 처음으로 서양의학을 도입한 일본이 영양(榮養)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양(榮養)의 원뜻은 ‘지위가 높아져서 부모를 영화롭게 봉양하는 일’이므로, 이것을 생리학상의 용어로 차용하기에는 어색하다고 생각돼 일정 기간 두 용어가 혼용되다가 이제는 영양(營養)으로 확정된 듯하다. 그런 뜻에서 보면 ‘영양센터’는 통닭으로 자기 몸의 원기를 보충하는 곳, 그리고 견강부회하자면 어려운 시절 통닭으로 부모님을 봉양하는 곳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양센터가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1970년대 들어 소득 증대로 육류 소비가 늘자 통닭도 빠르게 기름에 바싹 튀기는 방법으로 바뀌었고, 곧이어 프라이드치킨류의 국내외 브랜드가 유행하면서 쇠막대에 꿰어 긴 시간 빙빙 돌려가며 굽는 방식을 사람들은 더 이상 참아내지 못했다. 더구나 삼겹살이라는 ‘국민 술안주’가 등장하면서 영양의 상징이던 통닭의 위상도 크게 떨어졌다. 결국 영양센터는 새롭고 빠르고 자극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그 촌스러운 이름과 함께 대부분 사라지고, 닭을 쇠막대에 꿰어 돌리는 기술은 중앙정보부에 ‘이전’돼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학생과 재야 민주인사를 빨갱이로 몰 때 사용하는 ‘통닭구이’ 고문 수법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영양센터로는 명동에 본점과 모래내·대치동에 체인을 둔 ‘명동영양센터’가 유명하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 3번 출구로 나와 연세대 방향 ‘걷고 싶은 거리’ 쪽으로 가다 보면 제법 오랜 역사와 맛을 자랑하는 전기구이 통닭집 ‘신촌영양센터’(주인 송송심·02-312-5460)가 있다. 이 집의 전기구이 통닭은 적정 온도로 알맞게 구워 기름기를 쫙 빼기 때문에 고소하고 담백하다. 과자를 씹는 듯한 껍데기의 고소한 맛, 퍽퍽하지 않으면서도 졸깃졸깃 담백한 가슴살 뜯어먹는 맛에 맥주잔을 연방 채우기가 바쁘다. 인삼과 대추를 넣어 폭 곤 삼계탕도 한여름 무더위로 지친 몸을 추스르는 데 추천할 만하다(전기구이 통닭, 삼계탕 각 1만1천원).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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