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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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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마마, 막걸리만은 금주령에서 제외를!


청주 마시는 양반 대신 막걸리 마시는 상민만 걸려들던 조선시대 금주령…
‘유전유주 무전무주’ 법칙 적용된 셈
등록 2009-10-15 14:23 수정 2020-05-03 04:25
능서막걸리. 사진 김학민

능서막걸리. 사진 김학민

조선시대에는 종교적 교리와는 관계없는 이유로 금주령이 자주 내려졌다. 조선 개국 직후인 1392년 흉작으로 인해 금주령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태종 때는 거의 매년 금주령을 내렸다. 이성계가 쿠데타로 고려를 뒤엎고 나라를 연 조선조는 당연히 흉흉한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일차적으로 백성들 먹을거리 확보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한편으로 토지 정리와 황무지 개간으로 식량 증산에 힘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술을 빚는 데 소요되는 곡식이라도 줄이기 위해 자주 금주령을 내렸던 것이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도 막대한 미국산 밀가루를 들여와 시중에 풀고, 막걸리 양조에 일절 쌀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금주령은 원칙적으로 메뚜기해(害)·풍해·가뭄·수해 등 자연재해가 극심해 식량이 크게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면 왕의 명령으로 내려지곤 했는데, 생각만큼 금주가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은 것 같다. 권력이나 재산 있는 자에게는 그물코가 성기고, 힘없고 가난한 자에게는 그물코가 총총한 유전유주(有錢有酒)·무전무주(無錢無酒)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나라의 기틀이 비교적 반듯하게 잡혀 있었던 세종 때에도, 청주 마시는 자는 금주령을 면하고 막걸리 마시는 자만 걸려들고 있다고 원성이 드높아 세종이 할 수 없이 금주령을 풀어보기도 했다( 세종 2년조).

어차피 항시적 식량 부족으로 마음 놓고 술을 빚어 마실 수 없는 백성들은 금주령의 최대 피해자이면서 또한 금주령 대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는 사대부였다. 건국 시기 쿠데타로 네 편 내 편으로 갈려 죽이고 죽임을 당하던, 또 태조 이후 왕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던 골육상쟁의 시대가 태종·세종대에 들어 안정을 찾아가자 사대부들은 생멸의 긴장에서 벗어나 평화를 만끽한 나머지 술독에 빠져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여 세종대왕은 술을 경계하라는 대국민 호소문인 ‘계주교서’(誡酒敎書)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원래는 예문응교 유의손이 지은 글인데, 내용이 좋아 세종이 교지를 내려 주자소에 명령해 인쇄한 뒤 중앙과 지방에 배포하도록 했던 것이다.

“대개 들으니 옛적에 술을 만든 것은 그저 마시려고만이 아니라, 신명을 받들고 빈객을 하고 늙은이를 봉양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제사로 인해서 마실 때는 헌수를 절차로 삼고, 활을 쏨으로 인해서 마실 때는 읍하고 사양하는 것을 예로 삼았다. 향음의 예는 친목을 가르치는 것이요, 양로의 예는 치덕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건만 오히려 말하기를, ‘손과 주인이 백 번 절하고 술은 세 순배를 돌린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종일토록 술을 마시어도 취하게 하지는 않는다’ 하였으니, 선왕이 술의 예를 제정하여 술의 화를 방비한 것이 지극하였다.

후세로 내려오매 풍속과 습상이 옛날과 달라서 오직 황료하고 침혹을 주장하므로, 금주하는 법이 비록 엄하나 마침내 그 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이냐. 대개 술이 화가 됨은 심히 크다. 어찌 특별히 곡식을 없애고 재물을 허비할 뿐이랴. 안으로는 심지를 어지럽히고 밖으로는 위의를 잃어서 혹은 부모의 봉양을 폐하고, 혹은 남녀의 분별을 문란하게 하며 크게는 나라를 잃고 집을 망치고, 작게는 성품을 해치고 생명을 잃어버리어 강상을 더럽히고 풍속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루 다 말하기 어렵다….”

10월9일은 한글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능이 경기 여주군 능서면에 있는데, 여기에서 양조되는 ‘능서막걸리’가 아주 좋다. 그리 달지 않으면서도 적당하게 구수한 발효 맛이 밍밍한 물맛을 살짝 덮어준다. 면소재지의 능서막걸리양조장과 붙어 있는 식당 ‘능서막걸리’(주인 이정임·031-883-6711)에는 능서막걸리와 어울리는 소박한 손맛 안주가 있다. 생족발을 무 썰듯 가로로 썰어 삶은 다음, 무·양파·파·팽이버섯·호박을 넣고 주인 아줌마의 눈대중으로 고추장을 풀어 폭 끓이는 족발탕이다. 주인이 생족발만을 고집하므로 전화로 확인하고 가야 한다.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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