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대들이 공유하는 가장 큰 욕망은, 취업과는 무관하게, 좋은 감수성을 갖는 일인 듯하다. 이는 1990년대 이후의 사회변동이 그들의 집단적 경험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이 끝나고 인터넷이 일상화되는 동안, 서태지는 소녀시대로 진화했고,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은 금융 자본주의로 이어졌다. 이 시기를 중·고등학교에서 맞이했던 이들은 이미지의 대량 소비와 경제적 혼란을 어린 나이에 일상적 조건으로 체험했다. 이로 인해, 이 세대는 산업화 세대뿐만 아니라 민주화 세대와도 확연히 구분된다. 거칠게 말하면, 1980년대에 대학생들이 포괄적인 지성을 갖춘 지식인이 되기를 희망했다면, 2000년대에는 섬세한 감성의 마니아나 전문가가 되기를 꿈꾼다. 각자가 관통해온 정치·경제적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어느 한쪽을 편드는 일은 불공평한 일이 될 것이다.
카페 순례기, 진부한 여행 사진들…
20대에게 세잔을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문제는, 감성을 향한 거의 맹목적인 갈망에도 좋은 감성을 교육받고 훈련할 기회를 지금의 20대들이 거의 갖지 못했다는 데 있다. 누가 안내도를 건네줄 수 있었겠는가. 산업화 세대는 감성을 사치와 동일시하고, 민주화 세대는 감성을 오류와 동일시했는데 말이다. 각 세대가 해결해야 할 절박한 문제에 감성은 종속돼 있었다. 그렇게 내용 없이 풀려나온 감성의 아틀리에를 드라마와 연예기획사가 점령했다. 그 결과 지금 20대들은 보잘것없는 ‘인상’을 경쟁적으로 프레임에 담아 블로깅하는 것으로 자신의 취향을 입증하려는 지경에 이르렀다. 카페 순례기, 진부한 여행 사진들, ‘지름신’의 강림 간증, 쇼핑 박스 개봉기 따위가 도처에 널려 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장소의 방문이나 상품의 구입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야기하는 생활과 사고의 변화인데 말이다. 많은 20대에게 감성의 표현은 순간적인 소비와 동일시되고 있다. 그러나 “어디를 가보니 예뻤다” “저것을 먹어보니 맛있었다” 따위의 일차원적인 멘트를 초등학생 그림일기 밖에서 보는 것은 무척 민망한 일이다. 이래서는 기성세대가 20대에게 보내는 불신과 우려를 기분 좋게 맞받아칠 여지가 사라진다.
좀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세대 간 대치의 양상에는 어떤 철학적 문제가 어려 있다. 많은 철학자들이 감성보다 지성에 더 우월한 가치를 부여했다. 감성은 순간적이고 유동적인 것에 관여하고 있어서, 영원한 본질이나 불변의 법칙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감성의 힘에 주목한 철학자도 있었다. 셸링과 들뢰즈는 어떤 이념이 지성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감성에 현시(顯示)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했다. 물론, 여기에는 ‘감성의 교육학’이 적절하게 작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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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세잔의 작업을 예로 살펴보자. 19세기 말, 세잔은 동시대의 인상주의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인상주의의 혁신은 회화의 과제가 순간 포착에 있다는 점을 과격하게 주장했다는 데 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성당의 벽과 연못의 수면이 전혀 다르게 지각된다는 사실을 이전의 화가들은 무시했다는 것이다. 순간적인 인상에 대한 이러한 존중은, 그러나 세잔이 보기에 여전히 감각적 세계의 실재성에 도달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자연은 어떤 견고함·지속성·영속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1886년부터 20년간 계속된 ‘생트빅투아르산’ 연작에서,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빛의 일시성과 형태의 개별성은 사라지고 색들의 결합만이 뚜렷해진다. 여기에는 어떤 역설이 놓여 있다. 감각은 가장 높은 수준에서 어떤 공존의 견고함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감각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갈 때감성은 가장 저열한 수준에서 순간적인 쾌감 그리고 그것을 제공하는 상품과 결합한다. 자본주의는 이 수준에서 소비 대중을 좀처럼 놓아주지 않겠지만, 적어도 감성을 모토로 하는 세대라면 이것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이찬웅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철학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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