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떠남이다. 작가 김훈은 길을 떠날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풍경이 흘러와 마음에 스민다’고 했다( 생각의나무 펴냄). 여행은 언제든 아름답다. 여행가 고 김찬삼은 아마존에서 배고픔에 야생쥐를 잡아 먹어야 했던 순간도 ‘희망 있는 굶주림’이라고 했다( 이지출판 펴냄). 그러나 머물러야 하는 자에게는? 우리는 과연 그 여행지에서 무엇을 남기고 왔는가. 평화운동 네트워크 ‘이매진피스’와 함께 해외여행의 ‘불편한 진실’들을 알아봤다.
리조트가 파괴한 보라카이 원주민들의 삶
한국의 제주는 ‘바람 타는 섬’이다. 필리핀의 보라카이는 ‘바람 막는 섬’이다. 원주민어로. 맞닿은 하늘과 바다가 서로를 파랗게 탐닉하는 섬. 세계 3대 해변으로 불리는 낙원이다. 섬의 원주인은 소수민족 아에타족이었다. 민족사전에서는 평균 키가 150cm에 못미치는 왜소흑인종(矮小黑人種)이라고 나와 있다. 키가 작아서일까. 필리핀의 주류인 말레이족은 그들에게 유독 차가웠다. 그래도 그들은 낙원에서 밭 갈고 물고기 잡아 먹으며 행복했다.
불행은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개발 바람이 불었다. 아에타족에게 ‘개발’의 동의어는 ‘추방’이었다. 그들이 부쳐 먹던 밭 위에 호텔이 들어섰다. 고기 잡던 해안에는 리조트가 들어섰다. 바다도 관광객들이 차지했다. 어업이 금지된 것이다. 원주민들은 수영마저 금지됐다. 아에타족들은 섬에서 먹고살 수단을 잃었다. 필리핀 정부는 내륙에 아에타족 정착촌을 만들었다. 자연 속에서 살던 수천 명의 아에타족들에게 그곳은 유배지였다. 미국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아넣은 ‘보호구역’이 보호가 아닌 멸족을 촉진시킨 공간이었듯. 수백 명의 아에타족들은 견디다 못해 보라카이로 돌아왔다. 이들은 보라카이에 남은 마지막 자유 해안에 정착했다. 2000년 이들에게 퇴거 명령이 내렸다. 대규모 해양 스포츠센터를 갖춘 호텔이 들어설 것이라고 했다. 개발업체는 아에타족들을 몰아내고 호텔 부지 주변에 150cm가 넘는 콘크리트 방벽을 세웠다. 아에타족은 어른이 까치발을 해도 넘어다볼 수 없는 높이로. 아에타족들은 현지의 지방법원에 공사 중지 행정명령을 신청했다. 신청은 기각됐다. 공사는 2002년 끝을 맺었다. 그 호텔을 세운 것은 한국인이었다. 코트라에 따르면, 2007년 필리핀의 한국인 관광객 수는 58만 명이다. 미국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이매진피스의 활동가 이혜영씨는 “필리핀 현지 활동가들에게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이야기했더니, ‘전세계의 선진국 자본들이 필리핀 곳곳에서 벌인 일들이라 특별히 한국을 미워할 이유도 없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더라”고 말했다. 필리핀뿐이랴. 동남아 리조트 개발의 역사는 원주민 공동체 파괴의 역사였다. 신의 축복을 받고 살던 동남아의 원주민들에게 관광산업은 저주가 됐다.
골프장이 써버린 발리 주민들의 식수인도네시아의 보석 발리. 해안가에는 초대형 호텔과 리조트, 그리고 놀이시설이 가득하다. 하늘도 바다도 파란 해안가에는 호텔과 리조트도 푸르다. 수영장에도, 잔디밭에도, 골프장에도 물은 가득하다.
거기서 20km만 들어가도 원주민들이 사는 촌락이 나온다. 여기는 다 누렇고 빨갛다. 개울은 오래전에 말랐다. 우물에서는 먼지만 올라 온다. 마을을 먹여살리는 밭도 건기에는 빨갛게 말라간다. 저수지의 물로는 리조트의 물 수요가 감당이 안 돼 지하수까지 끌어간 탓이다.
마을의 아낙네들과 여자아이들은 매일 3km를 걸어서 물을 길어온다. 마을에도 물은 있다. 급수차가 매일 한 번씩 와서 마을 공동급수정에 물을 채운다. 생계를 잃은 주민들은 돈이 없다. 물 살 돈이 없는 이들은 그 긴 거리를 걸어야 한다. 젊은 축들은 리조트의 룸메이드와 포터로 살아간다. 늙거나 어린 축들은 그 소득에 기대 살아간다.
리조트 한 곳이 하루에 잔디에 뿌리는 물은 대략 3천ℓ. 골프 코스 18홀에 하루 들어가는 물은 대략 300만ℓ. 수영장을 가득 채운 물은 대략 500만ℓ. 영국의 공정여행 단체 ‘투어리즘컨선’에 따르면, 동남아의 리조트와 호텔 숙박객 1명에 들어가는 물은 평균 1800ℓ라고 한다(한국민 1인당 하루 수돗물 공급량은 346ℓ. 한국수자원공사 통계). 원주민들은 한 마을이 하루 500ℓ면 씻고 마실 수 있다. 그들에게 리조트는 ‘물 먹는 악마’다.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와 타이의 곳곳에서 리조트와 호텔들은 인공 가뭄을 만든다.
히말라야 포터의 현실셰르파족, 히말라야 포터(짐꾼)의 대명사였다. 이제 그들은 산을 오르지 않는다. 그간의 노동으로 자본을 축적한 그들은 민박(로지)을 열었다. 식당 주인이 됐다. 농민이던 타망족·라이족들이 등짐을 지고 대신 산을 오르고 있다. 농사를 짓지 못하는 가을부터 봄까지 농민들은 포터가 된다. 학교 갈 돈이 없는 아이들도 포터로 나선다. 포터를 자처하는 아홉 살 아이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낡은 외투를 입고, 닳은 운동화를 신고 4천m 고지를 오간다. 포터들은 등짐을 어깨에 메지 앉는다. 이마로 등짐끈을 버텨가며 온몸으로 걸어간다. 등짐 무게는 평균 40~50kg. 히말라야 포터협회가 권장하는 적정 무게(20kg)의 두세 배다. 어깨로 메다가는 어깨가 내려앉는다. 지고 싶어서 지는 것은 아니다. 돈을 아끼려는 관광객들은 좀더 적은 이들이 좀더 많이 나르기를 원한다. 이들이 받는 일당은 하루 5달러. 식대나 숙박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평균 열흘의 일정 도중 알아서 먹고 자야 한다. 관광객들이 먹다 남은 잔반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숙소의 헛간에서 잠이 든다.
농민들은 고산병에 대한 내성이 약하다. 4천m 고지를 넘다 보면 호흡곤란과 어지럼증으로 쓰러지는 이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고산병에 걸린 포터를 위해 일정을 포기할 관광객은 없다. 쓰러지면 낙오된다. 낙오되면 혼자 내려가야 한다. 아니면 싸늘한 죽음이 기다린다.
이매진피스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히말라야 포터들의 삶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세 차례 네팔을 다녀왔다. 이혜영씨는 “자신들이 산기슭에서 마실 한 잔의 차를 위해 티테이블과 파라솔을 포터들의 등짐에 싣고 오는 유럽인들을 만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히말라야에서 닭백숙을 해먹겠다고 포터 등짐에 압력밥솥을 넣어간 한국인 관광객도 있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히말라야 정상에서 먹은 닭백숙은 정말 맛있었을까.
네팔을 찾는 한국인은 한 해 1만 명을 넘는다. 카트만두에서는 토산품을 들고 ‘천원’을 외치는 네팔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삶과 무관할까.
우리가 쓴 돈은 과연 그들에게 얼마나 갈까당신은 물을 것이다. “그래도 관광산업이 동남아 경제에 버팀목이 되지 않느냐.” “현지인들은 관광객들이 뿌린 돈으로 먹고살지 않느냐.” 맞는 말이다. 아닐 수도 있다. 한 가족이 다녀온 패키지 여행 내역을 분석해봤다.
김은비씨 부부는 2월4일부터 4박5일 패키지로 필리핀 세부를 다녀왔다. 여행사에는 180만원을 냈다. 현지에서 옵션관광과 쇼핑으로 50만원 정도를 썼다. 막탄공항에서 만난 가이드는 한국인이었다. 숙소는 ㅅ리조트. 첫날은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튿날 오전에는 스쿠버다이빙. 강사는 한국인이었다. 20분 정도 교습을 마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황홀한 물속 풍경에 넋을 잃었다. 오후에는 황제 마사지를 받았다. 편안했다. 주인은 한국인 부부였다. 셋쨋날은 호핑투어였다. 호핑투어는 배를 타고 해안가에서 떨어진 난바다에서 즐기는 바다체험이다. 식사는 배 위에서 즐기는 바비큐였다. 저녁에는 타이의 ‘알카자르쇼’(게이 의상쇼)와 비슷한 ‘어메이징 필리핀 쇼’를 봤다. 저녁식사는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타이거새우를 실컷 먹었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날은 산페드로 요새를 들러 마젤란 십자가, 성 오거스틴 성당을 들르는 순례 코스였다. 중간에 쇼핑센터 3곳을 들렀다. 2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마지막 저녁은 한국 식당에서 한식으로 먹고, ‘궁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숍 주인도 한국인이었다. 김은비씨는 “모든 곳에서 한국어로 통하고, 대부분 식단에도 김치와 한국식 반찬이 나와 편하고 즐거웠다”며 웃었다.
김씨 부부가 낸 180만원은 누가 가져갔을까? 모객 단계에서 국내 여행사 2곳을 거치면서 총액의 20%가 수수료로 나갔다. 또 다른 총액의 절반은 항공료와 숙박비다. 항공사의 국적은 한국이다. 리조트는 화교 자본이 지었다. 김씨 가족이 들른 마사지숍과 식당, 기념품 가게는 대부분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가이드도 한국인, 강사도 한국인이었다. 결국 한국인 김씨 부부가 쓴 돈은 거의 한국인들의 차지가 되고 있었다.
국제민주연대에서 공정여행을 맡고 있는 최정규씨는 “한국 업체들이 구성한 패키지의 경우 현지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며 “현지인들의 삶과는 무관한 우리끼리의 잔치가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전세계의 관광산업은 매년 10%씩 성장하지만 관광의 경제적 이익은 대부분 G7(선진7개국) 국가와 다국적 기업이 되가져가고 있다”고 고발한다.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의 경우 자국에서 발생한 관광수익의 절반 이상이 유출된다는 것이다. 리프킨은 네팔에선 그 수치가 70%, 타이에서는 60%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투어리즘컨선 역시 “70~85%의 관광수익이 외국인 소유 호텔이나 관광시설의 이익금 형태로 해외로 빠져나간다. 네팔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들의 트레킹 경비에서 네팔의 산속 공동체에 돌아가는 수익은 단지 1.2%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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