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엄마는 40여 년을 죄인으로 살았다. 언니가 남들처럼 걸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박복한 사람이 되어, 말하기 좋아하는 친척들 입에 쉬지 않고 오르내렸다. 입학에 난색을 표하는 초등학교 문을 눈물로 열고, 중학교 졸업 때까지 등하교 당번을 선 것도 모자라, 없는 살림을 쪼개 좋다는 재활원과 병원을 기웃거렸지만, 장애인이기에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어버린 언니가 마음의 문을 닫고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이후 엄마의 자책은 더욱 심해졌다.
장애인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는 있나
언니도 서러운 세상을 살았다. 언제까지 부모 그늘에서만 살 수 없다며 중학교 졸업 10년 만에 세상에 나와 직업재활원과 장애인 고용공단을 오가며 기술을 배우고 일을 익혔지만, 어렵사리 얻은 자리는 소도시 공장의 생산직뿐이었다. 이틀이 멀게 야근을 하고 비디오테이프에 라벨을 붙이다 손톱이 닳았다. 고됐지만, 그렇게 고생해 쥔 돈은 정부 보조금 딱 그만큼뿐이었지만, 제 손으로 먹고살 수 있기에 행복해했다. 사는 듯 보였다. 하지만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독립’은 중단됐고, 언니는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해서 2년 전 언니가 검정고시에 응시하고 그해 “다른 장애인들은 나와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며 대학에 입학했을 때, 가족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다. “언니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되뇜에 끝이 온 듯한 해방감에 전율했다. 하지만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가족은 다시 마음을 졸인다.
어디 우리 가족뿐이랴? 장애는 신체적·정신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라 비장애와 ‘다른 것’에 불과하건만, 철저히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되고 운영되는 사회 안에서 장애는 열등하고 모자란 것이 되고, 그 ‘형벌’ 극복은 온전히 장애 당사자와 가족의 몫이 된다. 장애인의 삶은 차별과 편견에 가로막히기 일쑤고, 속도와 효율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도가 늦은 장애인들은 불필요하거나 열외인 존재가 되기 십상이다. 해서 장애인이 독립된 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직업을 구해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건 어렵기만 한 일이다. 올 상반기 장애인 구직자 중 취업에 성공한 이는 40%. 중증장애인의 경우 20%만이 일자리를 구했다. 직장을 구했다 해도 단순 사무직이나 공장일, 청소 등의 업종에 집중돼 있고 월급도 100만원 안팎이다 보니 구인자의 대다수는 직업을 선택할, 경제적 빈곤을 탈출할 방법이 없다. 정부와 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고용보단 벌금을 선호하는 현실이다 보니 취업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시각장애인의 삶도 다르지 않다. 대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은 안마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대학에 진학한 시각장애인 중 대다수가 취업을 하지 못해 결국 안마사로 전향해야 하는 현실이니 못 배운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랴? 고려와 조선시대 시각장애인들의 생계수단이 길흉을 예측하는 점복이었던 것처럼, 일제시대부터 시각장애인들의 직업은 안마사였다. 하지만 100년 동안 그들이 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그들의 ‘안일함’ 혹은 ‘독점주의’ 때문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시각장애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안마사 교육만을 강요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기회와 직업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서 직업 선택의 기회가 없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는 자영업 외의 유일한 생계줄이다. 하지만 최근 마사지업계가 “시각장애인만이 안마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한 건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이 생계줄마저 위협받고 있다.
평등은 ‘같음’이 아니라 ‘공정함’
한 직업을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허용하는 건 분명 다른 사람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한 직업밖에 선택할 수 없도록 강요당해 살아온 사람들에게 다른 방안을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는 것 역시 정당하지 않다. 평등은 ‘같음’이 아닌 ‘공정함’을 추구하는 것이며, 자유란 이 토대 위에서 보장되고 행사될 때 진정한 ‘권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불쌍하고 딱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바로 그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기에,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유린되고 침해돼온 장애인들의 권리를 생각하며 진정한 평등과 자유의 의미를 다시금 되짚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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