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인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은 예전과 똑같은 궤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덕목이 아니게 됐다. ‘접촉 축소’라는 시대적 요구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을 줄게 해 의도치 않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안겨줬다. 화석 연료로 지탱하는 지금의 에너지 구조는 더 이상 ‘이대로’를 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작은 정부론’에 시달리던 국가는 영역을 확장해나갈 태세다. 코로나19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미국과 중국, 두 국가는 국제적인 지도력을 잃었다. 지(G)2 시대가 저물고 지(G)0 시대가 열렸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코로나 뉴노멀’이 정의와 평등의 얼굴을 갖게 하기 위해 세계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_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직접적으로 코로나19를 불러왔는지에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이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이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동물이 인간세계로 침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야생동물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 노릇을 한 것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의 정당한 비용일 수도 있다. 2011년 영화 <컨테이젼>이 대유행 감염병의 원인을 이번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박쥐로 추정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은 기후위기뿐 아니라, 코로나19 같은 세계적인 감염병에 대응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원유 수요는 이미 정점에 달했다
5월19일 국제 과학자 모임 ‘글로벌 탄소 프로젝트’가 과학저널 <네이처 기후변화>에 실은 논문을 보면, 4월 초 전세계의 하루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9년 같은 기간보다 최대 17% 줄었다. 이에 따라 올해 이산화탄소 연간 배출량은 2019년보다 4~7%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감소 폭이라고 한다. 특히 주요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분의 1, 중국은 4분의 1, 인도는 26%, 유럽은 27% 줄었다고 이 논문은 밝혔다.
코로나19는 자연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파괴적 행동이 줄어든다면 기후위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도 여실히 보여줬다. 5월2일 국회 예산정책처는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한 3월엔 전국의 하루 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21㎍/㎥로, 2019년 3월의 39㎍/㎥와 비교해 46%나 줄었다고 밝혔다. 2월엔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경제활동 위축이, 3월엔 국내 경제활동 위축이 미세먼지 개선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또 코로나19가 퍼진 전세계에서 대기질 개선과 동물들의 활발한 행동이 나타났다. 현재 ‘세계의 공장’이자 대기질이 나쁜 것으로 악명 높은 중국과 인도에서도 맑은 하늘이 나타났고, 영국의 랭커셔와 웨일스에선 양떼와 야생 염소떼가, 미국 루이지애나와 일본 기타큐슈에서 쥐떼가 도심에 나타나 사람이 없는 거리를 활보했다.
거대한 변화는 에너지전환에서 나타날 전망이다. 세계적 에너지 회사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버나드 루니 최고경영자는 5월12일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석유 수요가 늘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유 수요가 이미 정점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해, 브리티시페트롤리엄은 석유 수요가 2030년대에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 습격뿐 아니라 태양광발전과 전기자동차, 자율주행차의 급속한 도입에 따라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는 앞으로 10년 동안 수요가 더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고밀도 개발 방식 논쟁
그래서 대체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재생에너지로는 태양광과 풍력이 꼽힌다. 현재까지 가장 널리 보급된 태양광이나 24시간, 1년 내내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풍력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태양광이 낮과 밤이나 날씨, 계절의 제한을 받고 풍력이 크기나 소음으로 인해 지역주민과 마찰을 빚는 점은 풀어야 할 과제다. 정치적 반대도 만만치 않다. 홍종호 서울대 교수는 “화석연료나 핵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보수 매체나 정당에서 강력한 반발이 나온다. 정부가 구체적인 계획과 컨트롤타워를 갖추고 재생에너지 이익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추진한다면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20일 “그린뉴딜은 우리가 가야 할 길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그린뉴딜의 사례로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 노후 건축물의 단열을 개선하는 ‘그린 리모델링’ 사업을 들었다. 과거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디지털화를 심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표적 그린뉴딜 사업으로는 교통과 건축, 도시개발 사업이 거론된다. 교통 사업의 경우 보행이나 자전거, 전동킥보드 등 개인 교통수단의 확대가 예상된다.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은 “이미 유럽이나 남미의 많은 도시가 과밀한 대중교통을 피하려는 시민들을 위해 차도를 줄여서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를 확대하는 사업에 들어갔다. 보행과 자전거는 차량 이용을 줄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사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건축과 도시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감염병 확산은 인구 밀집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박용남 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선호되던 콤팩트시티(압축도시) 같은 고밀도 개발 방식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도시의 본질이 고밀도이기에 밀도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좀더 안전하고 건강한 도시에 대한 논의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국 인구의 50%(2019년 기준)를 돌파한 수도권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하려는 균형발전 정책이 힘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수도권의 밀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물’을 위하여
그린뉴딜의 또 다른 사업으로 물순환 정책이 제안된다. 구름과 비, 하천, 바다로 형태를 바꾸는 물순환을 원활히 함으로써 수질을 개선하고 생태계를 건강히 하자는 것이다. 국내에는 농업용 보가 3만4천여 개 설치됐는데, 이미 이 가운데 4천여 개가 쓸모를 잃은 상태다. 수명을 다한 보들이 물의 흐름과 생태계 연결을 막고 수질을 악화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에 무리하게 지어진 16개 대형 보(댐)의 처리도 큰 논쟁거리다. 신재은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보를 없애는 건 수질과 생태계 개선뿐 아니라, 홍수 방지나 기후위기를 완화하는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 좋은 수질과 생태계는 사람과 동물에게 좋은 삶터, 쉼터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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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_기후위기와의 전쟁
1. 기후위기와의 싸움이 전염병과의 싸움
2. 코로나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도 V자 반등?
3. 그린뉴딜, 사회적 면역력 키울 수 있는 변화
4. 코로나, 음식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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