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인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은 예전과 똑같은 궤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덕목이 아니게 됐다. ‘접촉 축소’라는 시대적 요구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을 줄게 해 의도치 않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안겨줬다. 화석 연료로 지탱하는 지금의 에너지 구조는 더 이상 ‘이대로’를 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작은 정부론’에 시달리던 국가는 영역을 확장해나갈 태세다. 코로나19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미국과 중국, 두 국가는 국제적인 지도력을 잃었다. 지(G)2 시대가 저물고 지(G)0 시대가 열렸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코로나 뉴노멀’이 정의와 평등의 얼굴을 갖게 하기 위해 세계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_편집자주
올봄 서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예전보다 몇 배 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사람이 샛강 숲길을 걷는다. 4월에는 ‘서울에 가까우면서도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강길’을 추천하려 현장을 답사했다가, 늘어난 인파에 깜짝 놀라 포기한 적도 있다. 초록빛이 고운 계절이기도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자연과 함께하는 모습이 부쩍 눈에 띈다. 코로나19 이후 집 안 생활이 길어지고, 밀폐된 공간에서 감염 위험이 강조되면서 시민들이 자연으로 쏟아져 나왔다.
자연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아직 백신도 치료제도 없어 오직 ‘사회적 거리 두기’만이 대책인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연을 찾는 건 지극히 당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곧 진정되리라는 믿음이 사라지고, 우리 일상은 방역을 염두에 두고 재편될 수밖에 없으니 새로운 적응을 시도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사회적 거리 두기’는 점차 ‘자연과 가까이’라는 뉴노멀로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일상에 대한 회고도 넘친다.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광고와 수필 공모가 등장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소비된다. 하지만 바이러스조차 자연을 훼손한 인간이 초대한 손님이고 보면, 다시 방역을 생각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후 어떤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낼지, 우리가 버리지 말고 지켜야 할 게 뭔지 곰곰이 살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떠오르는 태양과 달처럼, 아직 우리 곁에 여전히 소중한 것이 많지 않은가.
보를 허물고 하천을 잇자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그린뉴딜’은 뉴노멀을 설계할 때 큰 영감을 줄 것이다. 아직 그린뉴딜의 내용이 분명치 않으나, 배당되는 막대한 자원은 새로운 상상력과 실험을 추진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깊고 강한 충격은 지금까지의 경계를 넘어서게 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한국형 그린뉴딜이란 전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
한국형 그린뉴딜의 중심에 시민·생활·생태가 놓이길 바란다. 흔히 뉴딜이라는 개념이 오해되는 것처럼 ‘정부 주도의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전락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니 먼저 ‘시민’을 붙이고, 시민들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뉴딜을 설계해서 훨씬 구체적이고 다양한 정책으로 가보자. 정부 주도가 필연적으로 하향식일 수밖에 없고, 국가 차원의 대규모 사업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음으로 ‘생활’을 붙여서, 생산물 증대나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걸 목적으로 추진해보자. ‘생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 위기가 생태 위기에서 발현됐고, 이를 보완하지 않고서는 지속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이 단어들을 열거해두고 보면, 그린뉴딜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일상, ‘자연과 가까운 삶’이 방향이어야 한다. 우리의 삶터를 가꾸고, 자연을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며, 햇볕과 함께하는 삶. 단기간의 기술적 대응을 넘어, 우리 사회가 정신적·사회적 면역력을 증강하는 방향, 기후위기와 생태 붕괴를 막는 대안사회로 나가는 내용이어야 한다.
필자가 하는 하천 가꾸기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천은 법정 구간만도 6만5122㎞에 달해 생활권 곳곳을 실핏줄처럼 연결하고, 하천 부지 면적은 국토의 5%에 이를 만큼 넓다. 지금껏 홍수 통로로만 인식해 방치했던 하천을, 공원과 생활공간, 생태축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국토의 가치를 높이고 시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이들을 가꾸고 프로그램까지 만들 수 있다면, 지속해서 일자리로 연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천의 연속성을 단절하는 3만8천 개에 이르는 댐과 보 중 수명을 다한 것을 철거하는 일도 추진할 수 있다. 현재 법률에는 댐과 보를 건설하는 내용만 있고 관리와 철거에 대한 규정이 없는데, 전국에 버려진 보를 철거해 하천의 연속성과 생태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분야는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꼬집어 강조한 ‘노후 건축물의 단열 개선 사업’도 있고, ‘산업 공정 개선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 ‘마을 차원의 에너지 자립 프로젝트’ 등이 후보군이다. 시민들이 나서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교류하고 배분하는 과정이 활성화한다면 상당한 일자리를 만들뿐더러, 에너지에 대한 사회 인식을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생활교통을 활성화하는 방법은 사회를 윤택하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보도를 정비해 걷기 좋은 도시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한 도시로 전환한다면, 혼잡한 대중교통에서 감염 위험을 관리하는 효과는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걷기나 자전거 타기는 개인 승용차와 달리 혼잡과 대기오염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안전한 생활교통을 가능케 한다. 또 밀접 접촉을 피하면서도 이웃과 대면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질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한국판 그린뉴딜은 정부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공유 자원 관리에 시민들이 앞장서는 사업이 되기를 기대한다. 기후위기와 생태 붕괴를 막는 첫발이자, 시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진정한 자유는 지구에 대한 존중에서
4월16일 환경운동가이자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코로나19에 감염돼 타계했다. 평소 “진정한 자유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한 존중, 궁극적으로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지구 자체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던 작가를 빼앗긴 것을 코로나19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앞으로 “진정 더 두려운 것은 이러한 재난 뒤에 찾아오는 우리의 삶 자체를 저질로 만들고 파괴할 문화적 진공상태”(<한겨레> 5월15일치 김정헌 칼럼)일지도 모른다.
그 상황에 대비해 그린뉴딜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 뉴노멀은 결국 우리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자연에 가깝게 다가가고,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공존하는 일이 기후위기 시대,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뉴노멀이 되길 기대해본다.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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