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처음 채식의 세계를 알게 된 건 대학교 4학년 때다. 이란 책을 읽고 사육 환경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알게 된 나는 그날 이후 고기를 보면 그 고기를 남긴 동물이 어떻게 길러졌는지가 떠오르면서 역한 느낌이 들어 먹기도 싫어졌다. 그날부터 채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20년 가까이 고기의 기름에 길들여진 내 탐욕스러운 혀는, 결국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한 달여 만에 예전으로 돌아가 고기를 탐했다.
다시는 하게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채식. 그로부터 2년 뒤, 채식을 하면 피부가 좋아진다는 말을 들은 나는 다시금 채식의 유혹에 빠졌다. 피부가 뽀얀 채식 3년차 대선배의 말씀을 듣고 나니, 나는 피부를 좋게 만들리라는 열망에 불타올라 다시 채식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여드름 화산 폭발로 지난 10년간 고통받았기에 이번만큼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1년은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선배의 말에 나는 더욱 마음을 다졌다.
그 결과, 난 채식에 성공(?)했지만, 건강을 잃었다. 고기가 한 점이라도 들어간 음식은 모두 피하려다보니 자주 끼니를 굶거나 빵으로 때우게 되면서 건강이 안 좋아진 것이다. 비상사태였다. 피부가 좋아지기 전에 음식을 먹지 못해 되레 푸석푸석해졌다. 채식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만큼 나에게 여드름 활화산을 휴화산으로 만드는 일은 간절했다.
그 순간 든 생각이 ‘꼭 고기를 먹지 않는 것만이 채식인가’였다. 고기를 먹는 양만 줄여도 피부는 좋아질 텐데, ‘꼭 나의 채식이 과연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기준에 부합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 것이다. 결론은 당연하게도 ‘아니요’였다.
그날 이후 나는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먹기는 먹되, 그 고기가 내가 정말 맛있다고 느끼는 고기인지 생각해보고, 나를 위해 희생된 생명에 감사를 표하며,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먹기로 했다. 그렇게 내 나름대로 기준을 정하니 끼니를 거르지 않게 되면서 건강도 다시 좋아지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피부 역시 6개월째에 조금씩 나아지더니 1년 뒤에는 주변에서 놀랄 정도로 좋아졌다.
고기를 먹는 내가 채식을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한 뒤 그들 앞에서 고기를 한 점이라도 먹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무슨 채식이냐고 나를 비난한다. 하지만 나에겐 나만의 채식법이 있다. 이름하여 ‘고기 먹는 채식’이랄까. 여러분도 자신만의 이유로 자신만의 채식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물론 이기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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