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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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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컬러링북을!

등록 2015-02-07 18:29 수정 2020-05-03 04:27

안티스트레스 컬러링북이 요사이 유행이다. 하얀색 종이 위에 검은 선의 다양한 무늬 향연이 펼쳐진다. 나무, 꽃, 귀여운 동물, 한가로운 바닷가, 궁전 등등. 컬러링북이라는 단어 자체는 고상하게 느껴지지만 실상은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색칠공부와 그 방식은 같다. 마음에 드는 색의 필기구를 골라 하얀 종이를 채워가면 될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색칠공부가 너무 고상해졌다. 아니면 원래 그렇게 고상했던 것일까?

한겨레 김성광 기자

한겨레 김성광 기자

‘컬러링 테라피’라는 말도 이제 쉽게 들을 수 있다. 어떤 단어 뒤에든 ‘테라피’를 붙이면 그게 뭔지는 몰라도 마음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줄 것 같은 마법을 부린다. 그런데 마법의 특징은 하나다. 바로 속임수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흰 종이 위에 색칠하는 행위가 마음의 안정을 주지 않는데, 그런 것처럼 속인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히 말 그대로 안티스트레스의 측면이 있다. 반복되는 행위와 몰입이 주는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지면 정말 스트레스는 달아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지경이 순간 깨지면 테라피고 안티스트레스고 다 도망간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는 컬러링 테라피라며 구시렁대는 사람도 여럿이다.

자,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자. 스트레스를 떨쳐내자고 시작한 색칠놀이를 스트레스 받으면서 끝낼 이유는 없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한번 찾아보자. 일단 지나치게 복잡한 문양, 정말 복잡한 도안이 많다. 꽃 하나에 꽃잎이 수십 장이다. 한 색으로 칠해도 된다. 그런데 그렇게 칠하면 속된 말로 좀 없어 보인다. 누구한테 보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없어 보이는 게 싫어지는 거다. 여기서부터 벗어나자. 복잡다단한 문양의 컬러링북을 굳이 살 필요가 있나 싶다. 널려 있는 것은 흰 종이요, 잡히는 것은 검정색 펜일진대. 누구한테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니, 북북 직선을 여러 개 그어서 나만의 문양을 만들어보는 거다. 그것도 아주 간단한. 이름하여 나만의 컬러링북 테라피다. 물론 완성된 그림의 아름다움을 보장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지나치게 골머리를 싸매며 이 색을 쓸까 저 색을 쓸까 고민할 필요는 없어질 것이다.

아마도 세상이 더 복잡하고 답답해지는 느낌이 들어 나만의 세계와 시간을 누리고픈 사람들이 컬러링북을 많이 찾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단순한 색칠놀이가 우리에게 진정한 약이 되지 않을까? 안티스트레스 테라피라는 언뜻 고상해 보이는 이 주제가 어쩌면 우리를 더 골치 아프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홍수진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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