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6일, 매서운 한파가 하루 종일 기승을 부린 날이었다. 밤 11시12분, 아파트 초인종이 울렸다. 밤늦게 초인종을 울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놀라 대답이 늦어졌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급한 일인가보다. “누구세요?”라는 내 질문에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문 너머로 희미하게 들린다. “택배입니다.” 문을 여니 두꺼운 외투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50대 중·후반 아저씨의 하얀 입김이 집 안으로 몰려왔다. “주문하신 상품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따뜻한 우유라도 한 잔 드시고 가세요’라는 말을 건넬 틈도 주지 않고 아저씨는 물건을 내 손에 던지듯 내려놓고 “좋은 저녁 되세요”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집으로 향하나보다.
어제 오후 인터넷으로 주문한 상품이 오늘 밤, 하루 만에 도착한 것이다. 배송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어제 저녁 화물이 입고되고 밤새 입고와 출발을 반복한 뒤 오늘 아침 9시21분에 배송 출발한 것이 꼬박 14시간여 만에 내 손에 도착한 것이다. 이렇게 추운 날, 택배 기사분은 14시간 동안 고객의 집 대문을 두드리고 다닌 것이다. 며칠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극한 알바로 택배 집하장에서 물건을 트럭에 싣고 내리는 체험을 하는 것을 보았다. 단 5분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연예인은 절규하며 택배 빨리 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시청자를 향해 웃프게 애원했다.
밤늦게까지 택배 배송을 해야만 하는 삶은 너무도 비인간적이다. 아무리 택배시장이 과열되고 경쟁이 심해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해도 택배 기사분도 가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던가. 한 가정의 남편과 아버지 혹은 자녀로서의 삶을 이렇게 앗아가도 되는지 소비자로서 심각한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시중보다 더 싼 인터넷 상품 구매 유혹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상품을 받았다고 수취 확인을 하고 이번엔 상품평을 좀 다르게 남겼다. “이렇게 추운 날, 밤 11시가 넘어서까지 배송을 한다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입니다. 상품을 천천히 받아도 되니 너무 밤늦게까지 배송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배송해주신 택배 기사분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넷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상품평에 너무 빠른 배송을 위해 밤늦게까지 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를 남기면 어떨까? 나아가 인터넷으로 상품을 주문할 때부터 소비자의 구매 상황에 맞도록 배송 조건에 빠름, 보통, 늦음이라고 구분해 표시하게 하면 어떨까?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발로 뛰어다니는 밤늦은 불편함이 내가 누려야 하는 편리함은 아니지 않는가!
김영식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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