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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정신승리, 공화당의 거리두기

대법 패소 직후 ‘150일 한도’ 글로벌 관세 발동… 중간선거 앞둔 의회 ‘관세 연장’ 거부 관측
등록 2026-02-26 21:56 수정 2026-02-28 15:30
2026년 2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오른쪽) 등과 함께 대법원의 ‘관세 불법’ 판결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6년 2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오른쪽) 등과 함께 대법원의 ‘관세 불법’ 판결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약 1시간48분 동안 무려 1만510단어를 말했다. 2026년 2월24일 저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의회 의사당에서 길고도 지루한 집권 2기 첫 새해 국정연설(연두교서)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재미는 전혀 없고 비난만 난무한 연설이었다”고 평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마주한 정치적 현실이 딱 그렇다. 지지율 추락으로 ‘재미’는 없고, 할 수 있는 건 정치적 반대세력을 겨냥한 ‘비난’뿐이다.

“미국이 돌아왔다. 이전보다 더 크고, 더 좋고, 더 부유하고, 더 강력하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공화당 의원들은 환호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흑인은 유인원이 아니다”란 손팻말을 든 앨 그린 민주당 하원의원(텍사스주)은 의사당에서 쫓겨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5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의 얼굴을 유인원의 몸에 합성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바 있다. “불법체류자가 아닌 미국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침은 일한 오마 민주당 하원의원(미네소타주)의 “당신은 미국인들을 죽였다”는 구호에 묻혔다. 불법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던 세 아이의 엄마 러네이 니콜 굿과 보훈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앨릭스 제프리 프레티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각각 연방요원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미국 주간 뉴요커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 가장 길고 어처구니없는, 뉴스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연설을 했다”고 꼬집었다.

미국 기업들 ‘관세 환급’ 줄소송 불 보듯

“이 사건은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이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취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두 가지 외부 위협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첫째, 캐나다·멕시코·중국에서 유입되는 (펜타닐 등) 불법 약물 대처다. 둘째, ‘장기간 지속된 막대한’ 무역적자 대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약물 유입으로 ‘공중보건 위기’가 초래됐다고 주장했다. 또 무역적자가 ‘미국 제조업 기반을 붕괴시키고 공급망 위기를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국제비상경제권법이 규정한 ‘비정상적 위기’에 직면했다고 선언했다. 두 가지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각각 관세를 부과했다.”

2026년 1월23년 수입품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선박이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1월23년 수입품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선박이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대법원은 2월20일 ‘러닝리소스 대 트럼프 대통령’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내놨다. 일리노이주 버넌힐스에 있는 어린이 교육용 장난감 제조업체인 러닝리소스는 2025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위헌적 관세 부과로 관세 부담이 기존보다 44배나 증가했다”며 워싱턴디시(D.C.) 연방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대법관 9명 가운데 6명이 다수 의견으로 원고 쪽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미합중국 헌법 제1조 8항은 의회가 조세 부과 및 징수의 권한을 가진다고 명시했다. 관세도 세금이다. 국제비상경제권법은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4월2일 이른바 ‘해방의 날’에 100여 개국을 대상으로 부과한 상호관세는 불법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최대 치적도 공염불이 됐다.

미국소매업연맹(NRF)과 상공회의소 등 업계 단체는 대법원의 판결 직후 앞다퉈 “불법 부과된 관세를 환급해달라”고 트럼프 행정부에 촉구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물류·운송 기업 페덱스는 뉴욕에 자리한 국제통상법원(CIT)에 관세 환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의 최신 자료를 보면, 국제비상경제권법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2025년 한 해 미국 연방정부가 거둔 관세 수입은 2천억달러(약 284조1600억원)를 넘어선다. 앞서 뉴욕연방준비은행과 컬럼비아대학이 2월12일 공동으로 발표한 연구 결과,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관세 부담의 90% 이상은 미국 기업과 소비자가 부담했다. 줄소송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글로벌 관세’도 무역법 제122조 요건 위배

“(대법원 판결은) 매우 실망스럽다. 다른 나라들은 기쁨에 겨워 춤추고 있겠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지난 1년간 관세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었다. 국제비상경제권법보다 훨씬 강력한 방법과 관행, 법률과 권한이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선히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대법원 판결 당일 무역법 제122조에 근거해 기존 관세에 추가로 10%의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무역법 제122조는 미국이 “국제 결제와 관련해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 최장 150일 동안 최대 15%의 포괄적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이후 기간 연장을 위해선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번엔 불법 논란을 피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른바 ‘브레턴우즈 체제’가 들어섰다. 각국 통화의 가치가 미국 달러화에 고정됐고, 달러화는 금과 교환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미국의 지속적인 무역적자로 금 유출과 달러화 신뢰 하락 현상이 시작됐다. 결국 1971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달러화의 금 태환을 중단하면서 세계는 변동환율제 시대로 접어들었다. 무역법 제122조는 이런 시대적 배경에 맞춰 입법됐다. 달러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으로 미국의 ‘국제 결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를 대비해 만들어놓은 ‘과거의 유물’인 게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2월23일 “무역적자가 자본유입으로 상쇄되는 구조인 미국에서 국제수지 적자는 사실상 0에 가깝다”고 전했다. 무역법 제122조에 근거한 관세 부과 역시 ‘불법’이란 뜻이다.

2025년 4월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세계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히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5년 4월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세계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히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저물어가는 트럼프의 ‘화양연화’

“어떤 나라든, 특히 오랜 기간 미국을 갈취했던 나라가 대법원의 터무니없는 결정에 따라 ‘장난’을 치려 한다면, 기존에 합의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관세를 부담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23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무역법 제122조를 동원해 당장 발등의 불은 껐지만, 자초한 위기를 근본적으로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150일 뒤면 7월이다. 중간선거가 넉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벌써 백악관과 ‘거리두기’를 시작한 공화당 주도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연장 요구를 선선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집권 1년여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평가는 이미 60%를 넘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화양연화’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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