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가다 차가 막혔다. 중국인 관광객들 때문이었다. 같은 버스를 탔던 승객 중 한 명이 내뱉듯이 말했다. “에이, 떼놈들 진짜.” 나 역시 길이 막히는 것이 짜증스러웠지만, 그 승객의 말은 아주 불편했다. 지난해 마주쳤던 한 장면도 함께 떠올랐다. 서울 신촌에서 열렸던 게이 퍼레이드를 함께 보던 친구는 “역겹다”며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했다. 왜 역겨운지 묻지 않았다. 친구와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두 번의 경험만은 아니다. 종합편성채널을 트는 식당에 가면 종북세력에 대한 험한 말들이 쏟아진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종북세력이 진짜 종북세력인지도 모르겠는데, 그 방송을 듣다보면 종북세력에 대해 화를 내지 않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누군가를 저렇게 싫어하는 것도 대단한 에너지가 필요할 거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처럼 요즘 도처에 ‘혐오 발언’이 널렸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말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소수자나 약자를 향한 혐오를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은 분명히 이 사회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징후 같다. 한 사회가 언제나 급진적이고 진보적으로 변화해나갈 수는 없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빠르게 퇴보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혐오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회라면 더딘 진보라도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투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가 아니다. 혐오 발언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나 역시 불편해지고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혐오 발언은 꼭 어떤 특정 집단을 겨냥하는 것만은 아니다. 여성 일반을 대상으로 한 혐오 발언도 부지기수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괴로워하고 화가 나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 혐오 발언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내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화를 내면 불편해질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 상황을 모면만 해서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고 참아내기만 하다가는 내가 사는 한국이 더 불편해지리란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는 혐오 발언을 하는 지인에게는 정중히 내가 왜 그 말이 불편한지, 문제가 되는지를 설명해줄 참이다. 아직 해보지는 않아서 조금은 떨린다. 과연 그들은 나의 혐오 발언 ‘혐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최악의 경우 관계를 끊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큰 미련은 갖지 않으련다. 그게 내가 조금이라도 더 평화로운 나라에 살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일지 모른다. 고유정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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