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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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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을 사랑하자

등록 2015-03-05 16:56 수정 2020-05-03 04:27

즐겨 보던, 실은 한 회도 놓치지 않고 우리 가족이 즐겨 보던 드라마 가 종영했다. 그 드라마에는 디테일이 살아 있다. 서울의 오래된 골목의 풍경과 두부가게, 그리고 그 가족이 모여 살고 있는 단독주택. 비록 설정된 모습일지언정 때때로 그 설정된 배경의 정경은 주변 사람들과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살아가는 따뜻한 공간으로 부럽기까지 했다.

그 공간에 터를 이루고 사는 이들의 관계 또한 디테일이 살아 있다. 가족이라고 마냥 이상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감정으로도 치받고 또 털털하게 풀어가고 혹은 묻어두는 일이 반복돼도 그들은 관계 자체를 극단적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그것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심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문제와 살아가면서 당면하게 되는 ‘본질적 삶의 문제’에 대한 사소하고 세심한 고민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 삶은 내내 사소하고 세심한 고민, 그리고 그 뒤의 선택들로 이어진다.

사소한 선택으로 이뤄지는 삶의 그 끝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가 남는다. 바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그 두려움으로 삶 자체에 대해 경건해지고, 또 삶에 감사할 수 있는 것.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사소하지도 않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는 여전히 세심하고 사소한 고민과 선택이 이어진다.

그래서 한낱 드라마일 뿐이며 그저 연기라고 무시하며 끝맺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에서 순금씨가 순봉씨의 병명을 알게 되자 맵고 짠 김치들을 죄다 내다버리려고 할 때, 자느라고 옆에서 아버지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줄도 몰랐다고 자신의 머리를 치며 달봉이가 자학할 때의 장면을 보고 나서다. 비장하고 웅장한 죽음의 모습은 없다. 다만, 가족의 누군가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을 때 나올 수 있는 세세한 묘사를 보며 공감하고 또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현실의 우리들은 디테일해져야 한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고 그것이 우리 삶을 얼마큼 소중하게 해주는지 알아야 한다. 그로 인해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삶은 더욱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깊어진 인생은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디테일한 것을 놓치지 않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유복희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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