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들어서니 회식하러 온 무리들이 보인다. “자 술 한잔씩 받으시고, 건배~ 원샷!” 받는 족족 예의 바른 듯 쓴 소주를 단번에 넘기는 사람들을 보니 궁금해졌다. 우리의 술문화는 무엇일까? 술은 노동주로, 축하주로, 제사주로 오래전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상 위에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집집마다 가양주를 담가 마셨던 추억은 60대 이상의 세대에게만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술을 참 많이 마시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국가별 1인당 음주량으로 한국이 15위라고 한다.
그럼에도 술 종류는 너무 한정돼 있다. 왜일까? 나는 그 문제가 바로 술을 강권하는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학교 선생님께서 일본 처갓집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셨다. 한번은 장인 어른과의 술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술을 한잔 먼저 주시길래, 선생님도 장인 어른께 얼른 따라드리고자 하는 마음에 한번에 마셨다고 한다. 아니, 그런데 장인 어른께서 또 한잔을 곧바로 따라 주시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몇 잔을 들이켜고는 알딸딸한 정신을 바로잡느라 아주 혼이 났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서는 술잔을 비우는 의미가 다음 잔을 더 원한다는 거였다. 다르게 보면 처음 술을 받은 뒤 다음 잔을 원하기 전까지 잔을 비우지 않으면 자연스레 술을 거절하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술을 센스 있게 거절할 방법이 없다. 술을 못 마신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다고 당돌하게 말해야 한다. 센스 있게 거절할 수 있는 신호가 없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면, 술을 잘 마셔야만 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우리는 술을 음미하는 방법을 잊어가고 있다. 우리의 술은 주식인 쌀로 만든, 깊은 역사와 전통, 문화가 있는 하나의 음료이다. 하지만 지금은 술이 ‘그저 싼값에 취하기 위해 마시는 음료’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싼값에 술을 만들려 한다면 당연히 싼 재료를 써야만 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길러졌는지 모를 수입쌀이나,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주정 같은 재료를 쓰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막걸리의 맛은 아스파탐으로, 소주의 재료는 외국산으로 물들고, 맥주를 마시고자 할 때는 고작 서너 가지 브랜드의 이름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다양한 술 중 오늘은 어떤 술을 먹을까? 함께 먹을 음식과 어떤 술이 어울릴까? 이런 고민을 앞으로 쭉 하고 싶다면 술, 이제 천천히 음미하며 마셔보자! 두냐시내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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