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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초의 용기 내보아요

등록 2014-12-30 14:57 수정 2020-05-03 04:27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관계에도 어김없이 위기와 고비가 있다. 모두에게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그 어떤 관계의 진척도 거부한다면 모를 일이나,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관계는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어느 방향으로 흐르냐는 중요한 숙제가 남는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할 것이다. 틀어지기로 결심하거나, 아예 무관심하거나, 친해지려고 노력하거나.

지난 몇 년간 나와 척지게 된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기억은 뭉개져 있지만 관계의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던 어느 날은 비교적 쉽게 떠오른다.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도 큰소리치던 날, 눈앞에서 얄미운 언사로 눈살 찌푸리게 만든 날. 지나고 보니 그날이 우리 사이에 어떤 분기점이 된 건 아니었을까.

다시, 이번엔 최근 들어 더 가까워진 인연들을 환기해본다. 비극으로 치달은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 살가운 관계도 곳곳의 암초를 지나왔을 것이다. 돌아보면 둘도 없는 친구의 경우에도 서운함이 우정을 넘어선 날이 없지 않았다. 한때 다시는 얼굴 보고 싶지 않다며 미워한 날도 왜 없었으랴. 그럼에도 그가 아직 내 옆에 있다는 건 우리가 그때 휙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격이 소심한 편이라, 한번 쌓인 녹슨 감정을 잘 토해내지 못한다. 그렇다보니 본의 아니게 등지며 사는 인연이 몇몇 늘었다. 처음부터 부딪힌 사람도 있고, 한동안 친했던 사이가 멀어진 경우도 왕왕 있다. 원래 기쁨의 시간들은 휘발성이 강한 데 비해 서운함만 저축되지 않던가. 그런 내게도 거의 유일하게 수백 번 싸우고도 스스럼없는 인연이 하나 있다. 고집스럽고 자존심 센 것마저 나와 똑 닮은 인물이었다. 언젠가 누가 ‘둘은 참 안 어울리는데 어떻게 친해?’ 하고 묻는 말에 나도 그 비기를 찾으려 애쓴 적이 있다. 그건 그 친구의 ‘노력’ 덕분이었다. 목소리를 높인 다음날이면 의도적으로 기분 좋은 척, 밝은 척하며 말을 걸어오던 친구. 그 녀석도 속으론 꽤 큰 결심을 하고 온 거겠지.

라는 영화에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대사가 나온다. “살면서 필요한 건 딱 20초의 용기가 전부”라는 말. 지금 당신과 당신의 이웃은 어쩌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그 길엔 수없이 많은 톨게이트가 남아 있을 게다. 빠져나가면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는, 말하자면 관계의 위기랄까. 핸들을 꺾어 주행을 그만둘 자유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있지만 나는 권하고 싶다. 눈을 감고 20초만 생각해보자. 인연과 악연은 어쩌면 한 끗 차이다. 견디냐, 마느냐. 이주형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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