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연애상담을 한참 들어주던 중에 친구가 문득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있다. “이것 봐, 내가 너한테 하소연하면 너도 공감보다는 조언에 가까운 말을 해주잖아. 똑같은 조언인데 왜 남자친구가 공감보다 조언을 해주려고 하면 화가 나지?” 남자친구가 공감보다 조언을 하려고 하면 화가 난다는 친구의 말은 멀리 날아가고, 내가 공감보다 조언에 가까운 말을 자주 한다는 말만이 차 찌꺼기처럼 남았다. 흰 머그잔 바닥에 남은 커피를 꽤 오래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 구석에 걸리나 했더니, 스스로도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 힘을 많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나보다. 한밤중에 방구석에 누워 있다보면 가슴 가운데 맺힌 말들이 전구처럼 밝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때마다 휴대전화의 연락처 목록을 살펴보지만 정작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말해서 뭐해’라는 생각이 늘 발에 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차피 정답이나 해설을 줄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으면서 뭐하러 그 많은 말을 가슴에 주렁주렁 달아두고 살았나 싶다. 그렇게 생각을 죽 따라 올라가다보면 결국 남들도 내게 정답이나 해설을 바라는 게 아닐 텐데 괜히 열심히 듣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혼자 오버를 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끔 눈이나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 사람이 지금 이런 문제로 힘들구나’라고 생각했으면 될 일이었다. 그 친구라고 12시간 동안 연락 한 통 없는 남자친구 문제를 내가 해결해줄 거라고 기대했겠는가.
너무 오래도록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내색을 하는 데 많은 힘을 썼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한명 두명 친구들의 하소연을 피해왔다. 이제 그 연애상담을 한 친구 외에 내게 자신의 속 아픈 이야기를 하는 친구는 한두 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당장 휴대전화를 켜고 친구들에게 안부 문자를 돌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나중에 혹 연락이 오거든 그때는 정말 잘 들어줄 수 있을 듯한 생각이 든다. 대단한 액션이나 엄청난 정답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냥 ‘응, 그래’ 정도의 맞장구면 된다. 그 사람들은 내게 정답을 바란 것이 아니다. 내가 그때 이야기를 했건, 하지 않았건 어차피 내게 상담했던 친구는 12시간 동안 연락 한 통 없던 남자친구와 여전히 잘 사귀고 있다.
김자현 인턴기자*‘레디 액션!’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소소한 제안을 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제안하고 싶은 ‘액션’을 원고지 6~7장 분량으로 써서 han21@hani.co.kr로 보내주세요. 레디 액션!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72살 친구 셋, 요양원 대신 한집에 모여 살기…가장 좋은 점은
하나회 술자리서 ‘술잔 투척’ 남재희…노태우는 “맞아볼래” 협박
“재앙이다”…바다가 27년째 땅으로 뱉어낸 용·문어 레고의 경고
강남역서 실신한 배우 “끝까지 돌봐주신 시민 두 분께…”
홍준표 “김건희 여사 지금 나올 때 아냐…국민들 더 힘들게 할 수도”
윤, 주민 개방 ‘군 의무대대 응급실’ 방문…김용현 “대통령 지시로 의료혜택”
[영상] 화웨이 ‘3단 병풍폰’ 펼쳐보니
‘김건희·채상병 특검법’ 19일 처리되나…전운 감도는 여의도
늙는 속도 늦추기, 나이 상관없다…저속노화 식단에 빠진 2030
“김건희 여사, 추석에까지 쇼…국민 울화통 터져” 민주당 직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