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데모쟁이에게 박수를!

등록 2014-02-15 14:08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 김봉규

한겨레 김봉규

군복무 중인 남동생이 맞지 않을 권리, 미래 내 남편의 출산휴가, 미래의 내 아이가 특별하다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나 대신 누군가 싸우고 있다!

학교 후배 중에 나를 잘 따르는 굉장한 데모쟁이가 한 명 있다. 계속되는 파업에, 이 추운 날에도 날마다 피켓을 들고 나가는 그 친구를 보자니 문득 내가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라고 느껴졌다.

누나, 금요일에 촛불집회 같이 가실래요? 아니 그때 보자고 했던 영화나 보자. 누나 이번주에 대단한 집회가 하나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그날 이사하는데 도와주면 저녁에 따라가지, 크큭.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웬만한 시위 현장에는 다 나가 있다. 참고로 어디 당적이 있는 것은 아니나 그가 하는 일은 보통 대학생들이 살짝 맛만 보거나, 대충 상상하는 수준이 아니다. 나부터 이 친구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큰 틀로 ‘빨갱이’라는 단어에 묶을 수 있다면, 이 친구는 ‘상빨갱이’에 속한다. 그에게 누구나 다 아는 연예인이나 유행에 대해 이야기하면 기껏해야 “음… 들어본 것 같아요” 정도. 그래서 언젠가 내가 그를 우습게 봤을 때 ‘얘는 도대체 현실감각이란 게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경제적 압박 없는 가정의 외동아들이면서 부모님의 방목이라는 배경이 받쳐주었기에 그리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휴학했으면 돈이 안 필요해도 간단한 알바라도 해봐라. 네가 노동자의 삶을 아냐?” 하면 그 친구 왈, “학교 공부도 (사회)운동도 해야 하고 시간이 없어요. 알바하는 시간이 가성비가 더 떨어져서 용돈 아껴 쓰는 게 더 낫다”며 할 말 없게 했다. “그래, 뭐 너는 돈 걱정을 안 하니까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지만 오늘은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의’나 ‘사회문제’에 열중할 수 있는, 그가 가진 환경이 내게 주어졌다면 나는 그처럼 살 수 있을까? 지금 내 모습을 투사해보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그에게 빈정대며 했던 말들은 세상 속에서 눈치껏 살아온 나의 자기합리화였다. 그는 본인이나 주변에 걱정할 것이 없어서 날마다, 멀리까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신념과 가치관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돕는다. 가난하고, 부자라도, 조선시대에, 아랍에서 태어났더라도 그리 살 친구임을 지금에야 깨닫는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더라도 그가 가진 용기는 나에게 없다. 한때 나도 그를 후배라고 가르치기도 했는데, 이제는 촛불집회 한번 가자는 그에게 ‘이사 도와주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던 내가 참으로 부끄럽다. 데모질(?)이라는 게 멀리 돌아서 오는 것이지만 결국 나 때문에 하는 것인데 마치 나는 인심이라도 쓰는 양….

물대포 맞고, 체포되고, 땡볕 아래, 얼음장 바닥에서 밤을 새우고, 그리해서 그가 이뤄놓은 세상을 나는 공짜로 누리고 있다. 그가 시위 현장에서 물대포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놀이공원이나 술집에서 입장 순서와 ’치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모두 그 친구에게 무임승차 중. 그를 모르는 당신도, 데모꾼와 빨갱이를 혐오하는 저기 ‘그들’도.

서지영 독자*‘레디 액션!’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소소한 제안을 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제안하고 싶은 ‘액션’을 원고지 6~7장 분량으로 써서 han21@hani.co.kr로 보내주세요. 레디 액션!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