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점수로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는 제도가 없어져야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이 제도를 바꾸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점수로 한 줄로 세우는 ‘나쁜 제도’는 사실 의외로 우리 모두에게 무척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깨어 있는 부모라고 해도, 한국 사람에겐 사람을 한 줄로 세우고자 하는 ‘본능적 충동’이 마음속에 다 있다. 그런 ‘나쁜 의식’이 버젓이 살아 있는 한, 점수에 따라 한 줄로 세우는 ‘나쁜 제도’는 유지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쁜 제도를 없애는 일은 내 속의 나쁜 의식과 우리가 함께 싸우는 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1
아마 이런 경험을 한두 번씩 다 해봤을 것이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어느 날 집에 오더니 기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나 수학 100점 맞았어요.” 그러면 우리는 대견한 마음에 칭찬을 해주려 한다. 그러나 그 순간 문득 마음속엔 아이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떠오른다. 그것은 거의 본능이다. 그게 무엇일까? 그렇다. “너 말고 100점 맞은 아이 몇 명이나 있니?”, 이런 질문이다. 이는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예외가 없다. 우리 질문에 아이가 “우리 반 30명 중에서 15명이 100점 맞았어요” 이렇게 대답한다면, 칭찬하려는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무나 100점 받는데 못 받는 게 이상하지’라는 시큰둥한 심리가 생긴다. 그런데 아이가 “저 외에는 한 명도 없어요”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비로소 “어이구, 내 새끼!”라고 말하며 잠시 유보했던 칭찬을 쏟아붓게 된다.
그 본능을 죽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랫동안 한국 사람들의 핏속에 흐르는 ‘점수로 사람을 줄 세우려는 본능’을 없애는 것은 어렵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아이가 “엄마, 나 수학 100점 맞았어요!”라고 말할 때, “너 외에 너희 반에 100점 맞은 아이가 얼마나 되니?”라고 묻지 말기! 가슴속에 그렇게 묻고 싶은 충동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치고, 그 충동이 내 입 바깥으로 새나가는 것만은 막아보기! 그렇게 아이에게 ‘100점 받은 아이들 수를 묻지 않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하다보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나중에는 충동도 약해진다.
물론 나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웃들의 의식도 바꾸어야 세상이 달라진다. 캠페인 이름은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아이가 수학 100점 맞았다고 할 때, 너 외에 100점 맞은 아이가 너희 반에 몇 명이니?라고 묻지 않기 캠페인’. 줄여서 ‘100점 맞은 아이들 수 묻지 않기 캠페인’. 캠페인 이름이 거창할 필요가 뭐 있는가. 이해하기 쉬우면 그만이다. 부모들이 이런 운동에 익숙해수록 ‘점수·등수 줄 세우기 본능’은 약해질 것이다. 그러면 자기 의식 바깥 세상에서 사람을 한 줄로 세우는 나쁜 제도가 있을 때, 문득 그것이 몹시 불편해지고, 그 나쁜 제도와 법을 바꾸라는 요구에 나서게 될 것이다. 제도는 그렇게 바뀌는 것이다. 무릇 삶과 요구가 일치해야 힘이 있고, 그런 힘이 많아져야 세상이 바뀌는 법이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다리 부어서 입원한 40대 숨져…지난해 26명 사망한 이 질병

미, ‘이란 전쟁 지원 거부’ 스페인 나토 방출 검토

배현진, 또 윤리위 제소…장동혁 ‘해당 행위’ 경고 다음날

경찰, ‘이재명 조폭 연루설’ 주장 폭력배 무고 혐의 수사

“이란 외교장관, 24일 파키스탄 방문”…미와 협상 재개 주목

오세훈·배현진·주호영 “결단” 압박에도 장동혁 버티기…국힘 내홍 확산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 2심 선고 생중계 결정

‘hwp 첨부 파일’ 역사 속으로…AI가 못 읽어 공문서에서 ‘퇴출’

정청래, 유시민과 화해 뒤 처음 만나 “정원오 도와주셔야”

미 국방 “유럽·아시아 무임승차 끝났다”…동맹국에 파병 거듭 압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