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광역시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 설치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우리만 이러면 뭐 해. 어차피 결과는 같은데….”
경북 문경에 살다 대구 영남대에 진학한 정치외교학과 4학년 김지우(22)씨는 친구와 대구의 정치 지형을 놓고 대화할 때마다 이런 결말에 도달한다. 김씨는 “주변에서 대부분 그냥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 같다”며 “‘나는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이런 선택을 한다고 해서 바뀔까. 어차피 (주변 사람은) 다 보수를 지지하는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 성향이 진보인 김씨는 “대구·경북은 ‘나라도 국민의힘을 지지해줘야지’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랜 기간 특정 정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해온 구조는 “투표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다시 자연스럽게 더불어민주당을 배제하거나 불신하는 지역의 정서를 “그러려니” 이해하도록 했다.
경남 창원에서 온 박신규(20)씨는 보수 성향임에도 민주당을 향한 대구의 맹목적인 불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박씨는 “민주당은 스스로를 중도우파로 부를 만큼 스펙트럼이 넓다. 그런데 대구에서 안 뽑히는 이유는 그냥 부정적인 감정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이념 스펙트럼이 갈수록 좁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대구가 왜 이런 스펙트럼에 갇혀 있게 됐는지, 이게 과연 대구 시민의 의사이고 자체적인 판단인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2026년 6월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다시 대구가 화두가 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절윤’(윤석열과 절연)하지 못한 채 자중지란에 빠지자, 중앙 언론과 다른 지역 사람들이 오랜 기간 보수의 텃밭인 대구가 그럼에도 국민의힘에 몰표를 줄지를 놓고 여러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어쩌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앞서는 결과를 담은 여론조사가 나오면 ‘티케이(TK, 대구·경북)마저 돌아섰다’며 주목하다가도, 반대 결과가 나오면 “그래도 대구는 국민의힘”이라고 말한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대구의 선택은 이번에도 변함없을까. 오랜 기간 정체된 정치와 선거 결과를 대구 시민들, 특히 청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겨레21은 대구 청년들이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이소영 대구대 교수(사회학과)의 도움을 받아 경북대·대구대·영남대에 재학 중인 20대 213명을 대상으로 정치·사회 인식 조사를 했다. 이 가운데 나이, 성별, 고향 및 거주지, 정치 성향 등을 고려해 5명을 추린 뒤 직접 만나 ‘대구 정치’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겨레21 조사에 응한 213명의 정치 성향은 의외로 고르게 분포돼 있었다. 자신을 중도라 판단한 이가 30.5%(65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진보·매우 진보(20.2%·43명)와 보수·매우 보수(22%·47명) 간 격차는 크지 않았다. 6·3 지방선거에서 어디에 투표할지 의향을 묻는 말에도 ‘아직 결정하지 않음’이 53.5%(114명)로 절반 이상이었지만, 국민의힘(21.6%·46명)과 민주당(19.7%·42명)의 격차는 역시 크지 않았다. 이소영 교수는 “일부 극우 지지자를 제외하고, 대구 청년은 보수나 진보로 갈라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이들은 이념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뚜렷하게 구분해 투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선거 결과 예상을 묻자 동떨어진 결과가 나왔다. ‘오는 6·3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은 국민의힘이 승리한다’는 데 무려 69%(147명)가 동의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를 선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는 청년들이 바라보는 대구 정치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내 선택이 유동적이더라도, 이미 결과는 고정돼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고범진(25)씨는 “최근 뉴스를 보니 대구에서 민주당이 여론조사상 처음으로 국민의힘을 이겼다고 하던데, 그래도 결국에는 국민의힘이 이길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어르신들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 대구 유권자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배경이 뭐냐고 묻자 ‘지역문화’(51.2%·109명)와 ‘보수적 정치 지향’(27.2%·58명), ‘투표 관성’(13.6%·29명) 등이 주요하게 꼽혔다. 특이점은 ‘보수 정당의 능력’을 선택한 이가 단 6명(2.8%)뿐이었단 점이다. 이는 청년들이 대구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유를 이념이나 합리적 의사에 기반을 둔 결과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청년들이 보기에 대구의 국민의힘 지지는 정치적 입장을 넘어 공동체의 감각과 결합된 문제이고 관계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표인 셈이다. 이에 대해 대구에서 활동하는 정치공동체 ‘폴티’ 최하예 대표는 “대구에서는 특정 정당이 단순한 정치적 선택지를 넘어 지역 공동체와 결합한 형태로 인식된다”며 “특정 정당 지지가 곧 지역 소속의 표현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한겨레21이 만난 청년들은 모두가 오직 대구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보수성과 마주했던 기억을 갖고 있었다. 창원에서 자란 뒤 경북대에 진학한 박신규씨는 “동대구역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가 ‘(이재명) 대통령이 잘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항상 한다. 창원에서는 겪어본 적 없는 일”이라며 “대구의 자부심이랄까, 국민의힘만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의힘을 찍었다는 지인 중에 ‘네가 왜 국민의힘을 찍어?’라고 물어볼 만큼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도 있다”며 “대구에서 국민의힘은 그냥 문화적 풍토 같다”고 덧붙였다.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서문시장 전경.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장민수(27·가명)씨는 평생 서울에서 살다 대학 진학을 위해 4년 전 대구에 왔다. “스스로 보수적이라 생각하는데도 여기(대구)서는 튀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장씨는 “대구가 보수의 도시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다. 대구는 그냥 국민의힘의 도시”라고 규정했다. 그는 “대구·경북 출신들은 출세하려면 국민의힘을 지지해야 하고 그게 나중에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식구니까’라는 이유로 지지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도 투표장 가서는 똑딱이처럼 국민의힘을 찍고 나온다”고 강조했다. 문경이 고향인 김지우씨는 “부끄럽지만, 부모님이 ‘이 당 찍어라’라고 해서 선택한 경우”라며 “투표 관성으로 대구가 계속 같은 당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고백했다.
이는 대구 청년들의 보수정당 투표가 정책 평가나 이념 경쟁의 결과라기보다 오랜 기간 축적된 지역적 경험과 사회적 압력 속에서 형성된 선택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 인터뷰에서 “부모가 권해서” “주변이 다 그렇게 해서”라는 답변은 반복됐다.
관성이 정치적 선택을 만들어낸다면, 오랜 기간 예측 가능했던 선거 결과는 ‘뭘 해도 안 된다’는 학습된 무기력으로 축적된다. 결과적으로 대구의 정치 지형은 ‘지지가 강해서 유지되는 구조’라기보다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이 유지시키는 구조’다. 청년이 이해하기에 대구의 정치는 너무나 견고한 화석이다. 이는 정치적 효능감에 강한 부정성을 유발한다.
‘선거를 통해 대구 정치가 바뀔 수 있다’는 데 긍정적으로 답변한 청년은 21.2%(45명)로 부정적으로 답변한 청년(34.7%·74명)보다 적었다. 특히 강한 긍정(매우 그렇다·5.2%)보다 강한 부정(전혀 그렇지 않다·10.3%)을 택한 응답자가 2배가량 많았다. ‘정치나 정치인이 대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는 부정 답변(23.5%)이 긍정 답변(38%)보다 적었지만, 강한 부정(8.9%)은 강한 긍정 응답(5.6%)보다 많았다. 최하예 대표는 “조사에서 정치 효능감이 전반적으로 낮게 나타났다”며 “청년들이 정치적 의견 표현을 회피하는 경향이 확인됐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선택이 숙고나 판단이 아닌 관성적 행태로 이어지는 구조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신규씨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내리 3선(제20~22대)을 한 창원 마산회원구에서 자랐다. 그런데도 선거로 정치가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옆 동네”에서 정의당, 민주당 소속 기초의원과 국회의원이 당선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박씨는 “대구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지만, 수업에서 교수님이 ‘사는 곳 지역구 의원이 누구인지 아는가’를 물으면 대부분 모른다. 정치적 효능감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내 삶이 달라지는 것도 없고 상관도 없으니 정치에 무심한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대구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지만, 나고 자란 서울에서 늘 다른 정치적 선택이 이뤄지는 현상을 봤던 장민수씨는 “서울은 국회의원을 바꾸거나 대통령이 바뀌면 자연스레 삶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하는데, 여기는 그런 정서가 아예 없다. 대구에서 정치가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며 “대구 출신들은 부모나 친척 등을 만날 때 서로 생각이 다른 모습을 보면서도 ‘저들 역시 최종 선택은 다 결국 똑같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대구시장 차출설’에 대해 “대구는 국민의힘이 아니면 누가 나가도 당선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김지우씨는 “선거를 통해 대구 정치가 바뀔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면서도 “다만 정치가 대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고 했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이 2026년 2월12일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대구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듯 대구 청년의 정치적 냉소와 무력감은 단순한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변화가 차단된 정치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결과에 가깝다. 고범진씨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싸잡아 비판했다. “우리 정치는 상대를 깎아내리면서 표를 얻는 혐오 정치를 하잖아요. 길거리 펼침막만 봐도 상대를 비난하는 내용이 많아요.” 그는 이어 “대구에서 정치인 칭찬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라고 반문한 뒤 “없다. 욕하면 했지, 칭찬해도 ‘쟤보단 얘가 낫지’ 정도다. 그래서 친구들이 정치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며 언성을 높였다.

고씨는 ‘대구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양질의 일자리’(44.35%)가 꼽힌 결과를 두고 ‘정치가 해결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던진 추가 질문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정치는 일자리를 해결해줄 수 없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어떤 정치인이 와도 대구의 일자리는 늘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올해를 끝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고씨는 “일자리를 늘려주는 정치인이 있다면 뽑겠지만, 그건 정치로 해결 불가능하니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소영 교수는 “정치적 변화를 향한 희망이 없어 선거를 통한 선택이나 결정이 무의미한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며 “진보를 싫어하기보단 정치를 향한 어떠한 기대나 지지를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겨레21의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함께 살펴본 천용길 시사평론가는 낮아진 정치적 효능감을 끌어올릴 방안 중 하나로 ‘선거제도 개편’을 꼽았다. 국회의원·대통령·대구시장 선거에서 대구의 선택은 바뀌지 않았지만, 중대선거구제(1개의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의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인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20~30%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는 민주당 의원이 있기 때문이다. 천 평론가는 “광역의원에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전체 대구광역시의원 33명 중 7명 정도를 다른 정당이 차지할 수 있다. 그러면 대구 시민들이 최소한의 정치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고, 20대도 영향을 받는다”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최소한 광역의원에 대한 중대선거구제 또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는 게 일차적으로 정치적 효능감을 끌어올리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시장 입구.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보수 진영 내부에서는 ‘보수의 심장’으로 추앙받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2찍’(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을 찍은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를 담아 만든 신조어)으로 조롱받는 도시. 고향이자 거주지인 대구를 바라보는 청년의 시선은 복잡했고, 대체로 대구를 떠나려 했다. 그런 경향은 특히 여성들에게 더 강했다. 교육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윤여진(23)씨는 “대구에서 취직하고 싶지 않다. 친구들도 남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구의 정치 성향이 더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문제의식이 있더라도 대부분 ‘대구의 변화에 기여하겠다’는 생각보단 ‘그냥 피해야지’라고 체념한다”고 말했다. 장민수씨는 “20대 여성들이 특히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 같다. 여자인 친구가 ‘본인도 부모님 설득이 안 되는데 어떻게 정치인이 지역을 설득해서 바꿀 수 있겠나. 졸업하면 떠날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대구는 이미 많이 쪼그라들었다. 1980년대까지 섬유·자동차부품·기계산업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떠나고 싶은” 도시가 됐다. 2024년 기준 대구시 20대 순이동 인구는 6300명으로, 특별·광역시(서울·부산·인천·광주·대전·울산·세종) 중 가장 많다. 제조업과 양질의 일자리 대신 자영업·서비스업 중심 경제가 되며 청년의 ‘탈대구’는 가속화하고 있다. 청년들이 민감한 생활임금 역시 2026년 1월 기준 시급 1만2011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16위(꼴찌는 인천)다. 최저임금법 위반 신고율(인구 10만 명당 4.49건)은 4년 연속 전국 1위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고범진씨는 “대구가 최저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는 유튜브 영상의 댓글을 보니 ‘국힘 뽑아서 저렇게 됐다’는데 기분이 좋지는 않다”며 “그런데 뭐 어쩌겠나”라고 한숨을 쉬었다.
정치가 멈춰서면서 도시가 정체되고 경제가 붕괴하더라도 정치적 선택이 변하지 않는 도시. 대구 유권자는 이번 선거에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지키지 못한 정당과 정치인을 심판할까. 체념에도 여전히 유동적인 상태인 청년들의 정치 인식이 대구에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번 지방선거는 ‘어차피 안 바뀐다’는 체념을 넘어 대구의 변화 가능성 그 자체를 묻는 선거가 될 수 있을까.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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