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11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대림역 부근에서 극우 세력이 혐중 집회를 연 가운데, 대림동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맞불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림동에서 열린 사상 첫 혐중 집회였다. 이틀 만에 69개 단체가 연대했다. 이들은 “민주주의 파괴하고 혐오선동 일삼는 극우세력 물러가라!”고 외쳤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제공
2026년 1월4일이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탄핵으로 파면된 지 9개월이 된다. 이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고,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 특검) 등을 통해 내란 청산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을 비롯한 극우 성향 정치인들이 씨앗을 뿌리고,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방치한 혐오는 청산되지 않고 되레 더욱 노골적인 표현 수위로 한국 사회, 특히 소수자를 갉아먹고 있다.
윤석열은 집권 2년7개월 동안 특정 집단을 타깃 삼아 혐오를 부추기는 행태로 정치적 기반을 쌓아갔다. 대표적인 게 노동조합을 ‘건폭’(건설노조 폭력배)이라 칭한 일, 중국인을 겨냥해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언해 ‘혐중’을 부추긴 일, ‘여성가족부 폐지’를 앞세워 성평등 정책을 크게 후퇴시킨 일 등이다. 이는 최근 들어 롯데백화점 보안요원이 노동조합원의 조끼를 벗으라고 요구한 사건, 서울 중구 명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광진구 자양동 등의 거리에서 노골적으로 표출된 혐중 시위, 여성 교사들을 대상으로 혐오표현을 쏟아내는 초등학생들의 발언 같은 사태로 악화하고 있다.

2025년 12월12일 롯데의 노조 조끼 탈의 요구를 비판하는 활동가들이 몸자보를 입고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백화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신다은 기자
“그날 배도 고팠고 친한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밥 먹는다는 생각에 들떴거든요. 그러면서 백화점에 들어갔는데, 입구부터 몸자보랑 모자를 벗게 하더니 나중엔 노조 조끼까지 벗으라고 한 거예요. ‘또 시작이다’ 싶으면서도 기분이 축 가라앉고 착잡했죠. 원래 백화점 푸드코트를 좋아했는데, 이런 기분으로는 다시 못 갈 것 같았어요.”
2025년 12월10일 롯데백화점 서울 잠실점 지하 매장에서 식사하려다 보안요원으로부터 ‘노조 조끼를 벗으라’라는 요구를 받은 채소(활동명)는 경남 거제의 조선소 하청 노조(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소속이다. “배를 만들지는 않아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은 함께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노조에 가입했다. 채소에게 노조는 세상을 향해 권리를 외치는 발언대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더 강화된 편견과 차별로 노조를 대하고 있다.
채소는 내란 규탄 집회가 한창이던 2025년 3월 ‘2차 남태령 집회’에도 ‘노조 조끼’를 입고 참석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맞불 집회를 연 극우 유튜버들이 노조 조끼를 입은 채소를 공격 소재로 삼아 영상을 찍으며 혐오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백화점이라는 일상적인 장소에서조차 노조 조끼가 퇴출 대상이 됐다. 논란이 확산하자 롯데백화점이 사과했지만, 채소의 상처는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집회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던 기대가 순식간에 분노와 수치심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런 일은 왜 생겼을까. 자본주의 경쟁의 피로감을 ‘싸우는 약자’의 권리투쟁 탓으로 몰아 입막음을 시도하는 건 혐오 세력의 전형적인 공격 행태다. “혐오는 대부분 자기 삶의 문제를 사회구조가 아닌 약자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약자가 차별받고 배제되는 상황을 바꾸려고 권리투쟁에 나설 때 그걸 못하게 해야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하죠. 그래서 여성이 권익을 위해 싸울 때, 노동자가 노조로 뭉쳐서 투쟁할 때, 장애인이 지하철에서 이동권 시위를 할 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죠.” 인권학자인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사회학)가 말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혐오가 더욱 전염력을 확산한다는 점이다. “‘저 사람은 이등 시민’이라고 선언하는 효과를 갖거든요. 그러면 혐오가 더 거세지겠죠. 예전엔 겉으로 표출하지 않던 생각도 이젠 드러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홍 교수가 덧붙였다.

고 양회동씨 부인 김선희씨가 2025년 12월16일 강원도 속초시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속초=이종근 선임기자
한국 사회에 만연한 노조 혐오가 일상화하고 폭력화한 계기를 추적해보면, 2022~2023년 윤석열의 ‘건폭 몰이’를 빼놓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건폭 몰이’를 통해 ‘노조=범죄자 집단’이라는 편견을 대중에 부각했다.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에 1계급 특진을 내걸어 전국 각지에서 열띤 수사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정 집단을 열등한 집단이나 범죄자나 병리적 집단 등으로 몰아 일반 대중이 차별과 혐오를 당연시하도록 만드는”(이주영, ‘혐오표현에 대한 국제인권법적 고찰: 증오 선동을 중심으로’, 2015) 행태였다. 김종서 배재대 명예교수도 2024년 11월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논문집인 ‘민주법학’에 게재한 논문 ‘정치인의 노동조합 혐오표현’에서 당시 정부·여당 등 정치인들의 원색적인 노조 혐오 발언이 “증오 선동 판단 기준인 ‘라바트 임계치 시험’ 6개 부분에서 거의 모든 혐오표현 기준을 충족했다”고 분석했다.
정치인들이 나서니 보수 언론도 원색적인 표현으로 맞불을 놨다. 중앙일보는 2023년 3월7일치 ‘“얼굴 뽀얀 타투쟁이 한둘인가”… 공사판 ‘노조 조끼’ 그들 정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건설노조에서 활동하던 조직폭력배 사례를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양회동씨가 대표적인 ‘혐오 경쟁’의 희생양이 됐다. 양씨가 정치권과 언론의 ‘건폭 몰이’가 안긴 모멸감을 참지 못하고 2023년 5월1일 분신해 다음날 숨졌는데,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이 왜곡 보도를 하며 양씨 사건을 혐오의 땔감으로 썼다.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양씨가 △건설사로부터 8천만원을 받았고 △노조 동료가 그의 분신을 방조했으며 △누군가 유서까지 대필했다는 기사를 잇달아 내보냈다. 하지만 8천만원은 노조 간부가 노조 전임 활동 보장(타임오프)을 목적으로 받은 급여 총액이었고, 노조 동료의 분신 방관과 방조 혐의는 모두 무혐의·불송치로 결론 났으며, 유서 역시 양씨 본인의 필적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윤석열 정부가 ‘뿌리를 뽑아야 한다’던 사람은 사실 하루 벌이를 걱정하는 이들이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던 건설노동자 시절 양씨는 혼자서 3~5곳을 돌아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고용 불안정에 임금체불은 다반사였다. 법이 정하는 휴식과 안전은 가볍게 무시당했다. 그런데 궁여지책으로 들어간 노조에서 그는 권익을 되찾는 기쁨을 누렸다. “남편이 ‘나한테 딱 맞아, 내가 일한 만큼 대가를 정당하게 받잖아’라고 하더라고요. (노조 활동을) 좋아했어요. 아이들한테도 ‘학교생활 뭐 힘든 거 없어? 아빠한테 말만 해. 아빠가 머리띠 매고 조끼 입고 단결! 투쟁! 외쳐줄게’라고 했어요.” 양씨의 부인 김선희씨가 말했다.
이런 양씨의 삶이 정치인들에 의해 통째로 부정당했다. “유서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라고 쓰여 있거든요. 인간다워지고 싶고, 같이 일하는 조합원들 일자리 마련하려고 애쓰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래서 사 쪽이 부당한 취급을 해도 참고 어떻게든 교섭해서 몇 명이라도 써달라고 했던 거죠. 그 모든 걸 돈 때문에 그랬다는 이미지로 만들었잖아요. 삶이 완전히 부정당한 느낌이죠.”(김현웅 조합원)
혐오의 또 다른 자리에 중국인 이주노동자와 중국동포가 서 있다. 문민 서울국제학원 원장은 2025년 7월11일 대림동에서 첫 혐중 집회가 열린 날을 잊지 못한다. “한마디로 공포였어요. 굉장히 떨렸고, 누구한테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문 원장은 한-중 수교 3년 뒤인 1995년 한국에 온 중국동포 출신 한국 국적자다. “막연하게 광화문에서 정부의 대중국 정책을 문제 삼나보다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중국인·중국동포라는 특정 집단에 싸움을 거는 집회가 열린다는 걸 믿을 수 없었어요. ‘지난 30년 한국인이 되려고 했던 노력이 다 헛수고구나’ 굉장히 마음이 복잡했어요.”
문제는 혐오가 무엇이고 혐오표현은 무엇인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기준이 되는 법·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이주민을 대상으로 ‘무법천지’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세 차례 열린 대림동 혐중 시위 때 경찰이 ‘합법 시위’라는 이유로 중국인·중국동포 집단 전체를 매도하는 혐오 발언을 되레 보호한 게 대표적이다. 9월17일 열린 두 번째 혐중 집회를 모니터링한 한채민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혐중 시위대가 ‘중국 공산당 물러가라’ ‘중국 개입 부정선거 척결하자’ ‘수능 6등급 중국인 학생의 서울대 의대 입학 특혜 반대’와 같이 혐오에 기반한 가짜뉴스를 아무렇지 않게 발언했어요. 그런데도 경찰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라고 반박하는 시민들의 항의만 막았어요.”
시위대 인근에 ‘중국 유학생은 100% 간첩’ ‘중국인 몰려온다! 범죄 증가!’ ‘유괴·납치·장기적출, 엄마들은 무섭다’ 같은 막말 펼침막이 내걸렸는데도, 공권력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문민 원장이 혐중 시위 장소가 이주 배경 학생이 90% 이상인 대동초등학교에서 불과 50m 떨어진 점 등을 지적하며 경찰에 전화하자 담당 경찰관은 “한국은 표현이 자유롭고 집회의 자유가 있는 곳”이라며 되레 면박을 줬다. 9월25일 더 큰 규모의 혐중 집회가 대림동에서 열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혐오표현을 모호하게 받아들여서 ‘표현의 자유’에 포함된 일부 부정적인 이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모욕이 ‘표현’이 아닌 범죄인 것처럼,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에 포함 안 되는 범죄입니다. 특히 극우집단의 공격 대상이 되는 소수자에게 혐오는 최소한의 자유,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예요.” 신정아 백석예술대 초빙교수(공연예술학)가 말했다.
실제 12월23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발표한 ‘반중 정서 실태 설문조사’ 결과(512명 대상 온라인 조사)를 보면, 한국 거주 중국인 대다수(75.8%)가 최근 한국 내 반중 정서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한국인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리면 중국 관련 부정적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59.8%)하게 됐고, ‘대중교통 등에서 말소리를 되도록 줄이게 됐다’(55.9%)고 했다. 가장 크게 걱정하는 문제로 ‘신변 위협’(188명, 15.7%)이 꼽혔다. 또 ‘당사자 및 자녀의 정체성 혼란과 그로 인한 피해’라는 답변(179명, 14.9%)도 높게 나타났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발표회에서 “혐오가 단순한 추상적 인식이 아니라, 실제 생존권과 일상에 구체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방치된 혐오는 현실 세계에서의 세력화와 폭력·린치로 이어지고 있다. 2025년 2월 활동을 시작한 극우단체 ‘자유대학’이 4월17일 자양동 건국대 주변 중국 출신 상인 밀집 지역에서 혐중 시위를 벌인 ‘건대 난동’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짱× 빨갱이는 빨리 꺼져라” “짱× 죽어” 등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일부 시위대는 욕설과 함께 손팻말과 손태극기를 휘두르며 상인들을 밀치고 행패를 부렸다. 급기야 한 상점의 중국인 직원이 가슴 통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특정 집단의 생활공간에 찾아와 싸움을 거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정부 정책 비판을 명분으로 삼았던 기존 극우 집회와 성격이 다르다. 중국동포 당사자이기도 한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소장은 “증오범죄 연구에서 혐오는 단계별로 양상이 다르다. 선입견 방치가 표현으로, 이어 폭력 행위로 나아간다. 건대 난동은 고삐 풀린 혐오가 폭력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이라며 “어떤 사람이 법·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삶과 존엄이 여전히 짓밟히고 있다면 그게 계엄 상황과 다름없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신정아 교수는 “역사적으로 우익이 폭력과 제노사이드로 가는 과정을 보면 비이성적 광기가 섞여 있다. 혐오는 굉장한 우월감을 가진 주체가 어떤 집단을 삶의 자리에서 추방하는 것”이라며 “67만 명(2024년 기준)에 달하는 중국동포는 불법체류 이슈가 있기 때문에 공격하기 만만한 상대이자 한국말을 하면 상처받고 움츠러드는 대상이며, 고용관계에서 을이나 정의 위치에 있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중국동포 혐오 문제는 이렇게 얽힌 구조 문제에 대해 더욱 정치하고 날카롭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혐오 정서가 정치세력화·주류화되는 과정도 이전과는 양상이 다르다. 2025년 4월2일 서울 구로구청장 재보궐선거에서 “구로에서 불법체류자 완전 추방” 등 공약을 내건 자유통일당 후보자가 32.3% 득표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박동찬 소장은 “극우와 개신교가 밀착해 혐오가 주류화돼가고 있다. 정치 경험이나 인지도가 없는 인물이 전광훈 목사와의 사진을 전면에 내세워 32.3%를 득표했고, 극우 대형교회가 있는 수궁동에선 근소한 차이로 당선자를 이기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한채민 교사는 “건강보험료 외국인 먹튀, 부동산 쇼핑 등 이른바 ‘중국인 특혜 리스트’는 언론 팩트체크 등으로 전부 가짜뉴스로 확인됐지만, 여전히 정치인들은 ‘중국인 3대 특혜를 막겠다’(2025년 10월10일 국정감사에서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 등의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며 “세금이나 입시, 부동산 등 이른바 ‘한국 사회 분노 유발 버튼’을 이용해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챙기려는 어떤 기획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혐오가 일상화하면서 이제는 초등학교에서도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교실은 어른들이 만든 사회의 거울이나 마찬가지다”(이유진, ‘젠더 수업 리포트’, 2023)라는 말처럼, 사회에서 용인되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학교에 배어들고 있다.
“제육이나 볶아.” 2025년 11월 초 쉬는 시간에 초등학교 교사 박민아(27·가명)씨의 귀에 꽂힌 말이다. 어디서 나온 말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낄낄거리며 모여 있는 남학생들 사이로 한 학생이 박씨 눈에 들어왔다.
2020년 유명 남성 유튜버 ‘랄로’가 ‘자는 중에도 남편이 원하면 새벽에도 일어나 제육볶음을 만들어줄 수 있는 아내를 원한다’는 내용의 여성 혐오 발언을 했는데, 이것이 ‘제육 볶아온나’(‘볶아 오라’는 뜻) 같은 일종의 밈(인터넷,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콘텐츠 또는 신조어)이 되어 10대 남성이 즐겨 쓰는 말이 됐다. 가볍게 넘길 말이 아니었다. 박씨는 “혹시 그 말이 요즘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 아니? ‘여성들은 사회에 진출하지 말고 집에나 있어라, 가정일만 하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고 있어. 방금 그런 뜻으로 한 말이니?”라고 학생에게 다가가 설명했다. 학생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해당 혐오표현을 배웠다고 말했다. 여성 혐오 콘텐츠가 생산·유통되고 있음에도 누구나, 초등학생이더라도 합법적으로 디시인사이드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는 초등학생을 포함한 청소년이 혐오표현을 접하는 주요 매개다. 한국다양성연구소가 2025년 11월5일 발표한 ‘청소년 혐오표현 대응의 인식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들이 차별·혐오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교사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30%). ‘친구 및 주변 사람들’ 영향(27%)보다 더 높은 비중이었다. 이 보고서 연구에 특히 초중고 교사 200명(초등교사 55%)이 설문에 참여했는데, 교사들은 대부분(95%) 혐오표현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항상 적절히 대응한다’고 답한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교사의 인식 수준에 견줘 제도적·문화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데 따른 결과다.
응답한 교사들을 인터뷰한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혐오표현을 하는 학생 개개인이 나빠서라기보다 어른들이 방송에서, 남초 사이트에서, 유튜브에서 내뱉는 표현을 보고 은연중에 해도 된다는 사인을 받는 것”이라며 “심지어 대통령 후보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혐오표현을 쓴다. 학생들이 왜 하면 안 되는 표현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2025년 5월 이준석 당시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의 ‘젓가락’ 발언(2025년 5월)과 2022년 2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공약집에 ‘오또케’라는 여성 경찰 비하 표현을 사용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보호자로서도 우려되는 일이다. 최서연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어릴 때 특정 집단, 특히 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언어를 반복해서 사용한다면 성인이 됐을 때 상대방을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공격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겨 싸우고 갈등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입시와 경쟁 위주의 교육 시스템이 교실을 차별에 익숙해지는 곳으로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보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나보다 낮은 대우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기대하게 하고, 능력주의에 기반해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하는 곳이 학교가 아닌가 해요. 이런 교실에서 혐오가 싹트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고민입니다.” 한채민 교사가 말했다.

점점 더 일상화하는 혐오에 대처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 시작점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꼽는다. “차별금지법이 생긴다고 당장 차별을 획기적으로 근절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건 일종의 기싸움이거든요. 우리 사회에 혐오 문제가 대두한 게 10년이 넘었는데 정치와 법이 대응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밀리기만 했잖아요. 최소한 공동체가 이런 행동은 용인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줄 필요가 있어요. 그 상징적인 조치가 차별금지법 제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성수 교수가 말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함께 일상에서의 연대 활동, 그리고 차별 금지와 혐오 반대가 소수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결국엔 ‘나의 일’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지학 소장은 “차별과 혐오가 없어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법과 제도가 바뀌면서 문화가 바뀌는 것과, 우리의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문화가 바뀌는 것”이라며 “공동체와 연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삶의 방식이 바뀌고 있지만 법이 너무 느리게 혹은 안 바뀌는 게 일차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계속해서 정치권의 외면을 받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김 소장은 이어 “희망과 연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계속 얘기하고, 혐오에 대해 구조적 관점의 분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나도 언젠가는 늙고 지치고, 약해지고, 비정규직이 되고, 질병이 생기면 장애인이 되기에 ‘나의 취약성'으로 다른 사람과 연결된다는, 그래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건 결국엔 ‘나의 일'이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채민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2025년 9월 대림동 혐중 집회에 대항하면서 마냥 당하고만 있지 말자며 대림동에 살아가는 중국동포들, 교사들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가 모여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공존에 대해 이야기해보니 그게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더라고요. 구조적인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는 것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이웃뿐 아니라 우리 자신까지 구해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026년, 혐오가 지금처럼 방치됐을 때 세상의 미래는 어떨까. 2025년 9월25일 대림동 혐중 집회에 맞선, 100여 개 단체가 연대한 맞불 기자회견에서 박동찬 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대림동이 그 표적이었다면 내일은 또 다른 집단과 동네가 표지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혐오의 사슬을 지금 여기서 끊어내지 않는다면 피해는 계속 재생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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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17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부근에서 혐중 집회에 반대하는 대림동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반중혐오 세력 해산하라”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외쳤다. “이 거리는 환대와 공존의 거리입니다” “혐오는 아이들의 미래를 망칩니다” 등의 손팻말도 높이 들었다. 한채민 교사 제공

2025년 9월17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부근에서 혐중 집회에 반대하는 대림동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반중혐오 세력 해산하라”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외쳤다. “이 거리는 환대와 공존의 거리입니다” “혐오는 아이들의 미래를 망칩니다” 등의 손팻말도 높이 들었다. 한채민 교사 제공

2025년 9월17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부근에서 혐중 집회에 반대하는 대림동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반중혐오 세력 해산하라”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외쳤다. “이 거리는 환대와 공존의 거리입니다” “혐오는 아이들의 미래를 망칩니다” 등의 손팻말도 높이 들었다. 한채민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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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17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부근에서 혐중 집회에 반대하는 대림동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반중혐오 세력 해산하라”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외쳤다. “이 거리는 환대와 공존의 거리입니다” “혐오는 아이들의 미래를 망칩니다” 등의 손팻말도 높이 들었다. 한채민 교사 제공

2025년 9월17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부근에서 혐중 집회에 반대하는 대림동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반중혐오 세력 해산하라”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외쳤다. “이 거리는 환대와 공존의 거리입니다” “혐오는 아이들의 미래를 망칩니다” 등의 손팻말도 높이 들었다. 한채민 교사 제공

2025년 7월11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대림역 부근에서 극우 세력이 혐중 집회를 연 가운데, 대림동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맞불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림동에서 열린 사상 첫 혐중 집회였다. 이틀 만에 69개 단체가 연대했다. 이들은 “민주주의 파괴하고 혐오선동 일삼는 극우세력 물러가라!”고 외쳤다. 한채민 교사 제공

2025년 7월11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대림역 부근에서 극우 세력이 혐중 집회를 연 가운데, 대림동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맞불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림동에서 열린 사상 첫 혐중 집회였다. 이틀 만에 69개 단체가 연대했다. 이들은 “민주주의 파괴하고 혐오선동 일삼는 극우세력 물러가라!”고 외쳤다. 한채민 교사 제공

2025년 12월23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주최한 ‘한국 반중 정서 실태조사를 통해 본 언론·미디어의 역할’ 토론회가 열렸다. 김양진 기자

유튜버 ‘리버튜브’를 비롯한 보수 성향 시민들이 2025년 7월11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인근에서 중국 출신 이주민 추방, 윤석열 대통령 복권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한겨레 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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