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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폭력이지 갈등이 아닙니다[혐오의 민낯]

여성혐오 범죄 아니다? 젠더폭력을 성별 대치로 이해하는 여성가족부 장관의 기이한 논리
등록 2022-10-05 09:55 수정 2022-10-06 09:49
2022년 9월16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서울지하철 신당역 화장실에 마련된 스토킹 살해 피해자 추모공간을 방문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2022년 9월16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서울지하철 신당역 화장실에 마련된 스토킹 살해 피해자 추모공간을 방문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남성은 주로 구체적인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 및 갈등을 혐오라고 규정하고, 여성은 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차별과 폭력을 혐오로 규정한다.”(홍찬숙, <한국 사회의 압축적 개인화와 문화변동>)
‘혐오가 문제’라고 모두 말하지만, 각자가 인식하는 혐오는 다르다. 무엇을 어디까지 혐오로 인식할지, 어떻게 접근하고 어떤 해결책을 모색할지를 두고 또 다른 충돌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혐오의 원인과 맥락에 접근할 길을 찾는 대신, 겉으로 드러난 갈등 자체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한겨레21>은 이같은 혐오 현상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분석해보려 했다. 1부에서는 지식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와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 뉴스 댓글 등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한국의 혐오가 온라인 공간에서 어떤 맥락 안에 축적돼왔는지를 살폈다. 온라인 공간은 오프라인 공간보다 혐오를 둘러싸고 가장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곳이며, 언론과 정치인의 목소리를 통해 혐오가 확대재생산될 가능성이 큰 곳이기도 하다. 여성혐오 표현에 거울을 비추는 방식(미러링)으로 혐오를 되돌려주려 한, 온라인 커뮤니티 ‘메르스갤러리’의 성장 전후로 일간베스트저장소, 에펨코리아 등 남초 커뮤니티에서 어떤 흐름이 나타났는지, 퀴어문화축제 개최 전후로 포털 뉴스 이용자의 혐오 댓글 작성 행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등을 분석했다. 분석 방법으로는 혐오표현을 학습한 인공지능(AI) 알고리즘(헤이트스코어 알고리즘)을 이용했다. 1부에 이어 제1434호에 연재되는 2부에서는 혐오표현과 혐오범죄 등에 대응하는 외국의 사례를 전할 예정이다. _편집자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인하대학교 성폭력 살인 현장에서 “성별 갈등을 일으키지 말라”고 말했다. 서울지하철 신당역 여성노동자 스토킹 살해 현장에서도 “여성혐오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젠더불평등이나 젠더폭력에 대응해야 할 현장에서 그것을 ‘젠더갈등’으로 바꿔 말했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국제협약과 국내법, 예산과 제도로 형성된 성평등 추진 체계를 ‘무’로 만들려 한다. 성평등 전담 부처인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는 것이 대표적이다. ‘왜 여성가족부라는 성평등 추진 체계를 없애려 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정부 관계자들의 입에서 ‘갈등’이 등장한다. 김현숙 장관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남성도 피해자다” “남성들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과 남성 집단을 나열하고 비교하고 대치시키고 있다.

‘희생자’에서 ‘소외된 남성’으로 바뀐 서사

남성이 희생자라는 서사는 주로 남성 집단이 국가나 자본, 산업에 징발되거나 희생되거나 맞설 때 형성되곤 했다. 참전 상이용사, 외화벌이 건설노동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실직한 가장, 민주화운동 투사…. 희생서사는 영웅서사로 보상되기도 했다. 그 이면에는 ‘그림자 재생산 노동’을 담당하는 여성, 성별 위계 구조 내에서 소외와 배제를 겪는 비남성 소수자가 존재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새로운 담론이 구성됐다. 여성이 사회적 우위를 점한 권력층이고, 남성이 소외됐다는 것이다. 여성을 ‘된장녀’ ‘김치녀’ 등으로 멸칭하고 혐오하던 인터넷 문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런 언설을 언젠가부터 ‘안티 페미니즘’ 부류로 일컬었다. 페미니즘이 있고, 그에 대한 반감으로 형성된 세력을 뜻하는 안티페미니즘은 어떤 분노 혹은 소외의 상징처럼 해석됐다. 안티페미니즘 세력의 표를 가져와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매개자가 각 정당에 나타났다. 급기야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성폭력 무고죄 강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단문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그 세력의 표를 결집하겠다고 나섰다.

만약 ‘20대 남성’이라는 특정 국민층이 소외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제도적·법적·문화적 차별이 누적된 결과인지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때 20대 청년 공약으로 ‘성폭력 무고죄 강화’를 내세운 것은 20대 남성의 ‘소외감’이 ‘성폭력 가해자로 고소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서사를 만들어낸다. 정말 20대 남성이 성폭력 가해자가 될까봐 걱정하는가. 그것이 대통령이 공표할 만큼 정확한 현실인가. 20대 남성을 대표하는 집단의 요구인가.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는 여성가족부가 울타리가 돼주기를 바랐을 텐데… 여가부의 대책이 적극적이지 않다.” 2020년 10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 발언이다. 당시 발언을 보면, 의원들은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해자의 울타리, 성폭력 대책 마련, 피해 사실 규명, 상처 입은 여성을 사회가 보듬도록 끝까지 역할을 할 것, 제대로 된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 운영, 성폭력 사안에서 목소리 내기 등등. 틀린 말이 없다.

성폭력 문제 해결에 동참했던 국민의힘

정치권은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의 성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법 제정이나 개정에 나섰다. 2018년 ‘미투 운동’ 직후 제20대 국회에서는 성폭력 관련 법안 150여 개가 제출됐다. 불법촬영에 분노하는 ‘혜화역 시위’, 불법촬영물이 디지털 자본이 되는 ‘웹하드 카르텔’ 공론화를 거쳐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디지털성폭력 관련법이 대거 개정됐다. 불법촬영물을 구입, 저장, 소지, 시청하는 것도 처벌 대상이 됐다. 2021년 3월에는 스토킹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스토킹 행위를 좁게 규정하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피해자보호법이 미비한 등의 한계가 많았음에도 이미 입법이 늦었고 더 미룰 수 없음을 국회가 깨달은 결과다.

2020년 국민의힘 의원들이 여성가족부에 ‘제대로 된 역할’을 요구했던 배경에는 한국 사회의 각계각층이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 경험한 여러 사건이 존재한다. 피해자 보호, 대책 마련, 진상 규명, 2차 피해 예방 등도 대중적인 상식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의힘 의원들도 피해자를 옹호하라고, 제대로 목소리와 입장을 내라고 여성가족부를 성토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불과 2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다. ‘제대로 역할을 하라’고 했다가 이제는 ‘시대적 효용이 다했다’고 한다. 변한 것은 시대인가, 국민인가, 여성가족부인가, 국민의힘인가.

여성가족부 장관이 해야 할 역할은 젠더불평등과 젠더폭력을 ‘젠더갈등’으로 바꿔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젠더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Gender-based Violence against Women)은 2017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구조적 젠더불평등에 의한 폭력을 설명하기 위해 내놓은 개념이다. 스토킹,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와 성착취, 이주여성·장애여성·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범죄, 온라인 성착취 등이 ‘젠더’에 기반해 발생한다는 것은 그 원인과 대책을 도출하기 위한 전제다. 남성과 여성을 대립항으로 놓고 ‘갈등 구도’로 보라는 것이 아니다.

변한 것은 시대인가 정부·여당인가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의 대안 중 하나가 ‘범죄 척결’인 줄 알지만 스토킹, 여성폭력 범죄를 법무부가 관할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디지털성폭력 등은 ‘처벌법’과 ‘피해자보호법’이라는 다층 구조로 돼 있다. 계획 수립, 통계 생성, 홍보와 예방, 피해자 지원이 있어야 범죄 인정과 처벌도 가능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 통계에서 스토킹 피해 상담이 차지하는 비중은 5% 미만이다. 스토킹처벌법은 (1999년 최초 발의된 이래) 22년 만에 생겨났고, 피해자보호법은 아직 없다. 피해자는 사회적 자원보다 가해자의 협박과 일상적인 감시에 더 가까이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가족부 역할을 강화하기보다 앞장서 이 체계를 폐지하겠다는 것인가. 2년 만에 정부와 여당은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다시 묻는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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