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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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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자영업 소멸 보고서] 코로나 빚 1억9천, 폐업도 못한다

전국 자영업자 8명 심층 인터뷰 ④ 호남 편,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시련
등록 2025-05-23 16:18 수정 2025-05-27 12:31
2025년 5월19일 저녁 공실 즐비한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로에 인적이 드물다. 오른쪽엔 건물 임대를 알리는 손팻말이 붙어 있다. 청주=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5년 5월19일 저녁 공실 즐비한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로에 인적이 드물다. 오른쪽엔 건물 임대를 알리는 손팻말이 붙어 있다. 청주=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광장의 힘으로 윤석열을 탄핵시켜서 대선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광장에 함께했던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목소리는 정책화되지 못하고, 표를 달라고 장밋빛 언사를 날리지만 유력 후보들에게는 실천 의지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대선 후보들은 오늘 여기 모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길 바랍니다.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실천 의지를 입증하기 바랍니다.”

2025년 5월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중소상인·자영업자 민생위기 성토대회’에 나선 김남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장이 목소리를 높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수많은 경제위기를 극복해왔지만 지금은 역대 최악의 상황”이라며 “자영업자들은 최후의 전선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극심한 경제 침체와 자영업 붕괴의 심각성을 후보들이 모르지는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10대 공약 중 3번 공약,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7번 공약이 ‘소상공인 살리기’ 정책이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도 5월13일 경기 김포에서 폐업 위기 자영업자를 만나 부채 탕감 등의 정책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자영업자들의 절망은 깊다. 소상공인 10명 중 7명이 “우리 상황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소상공인연합회, 2025년 4월)고 본다.

한겨레21 기자들이 영남과 호남, 강원과 충청 지역에 흩어져 지역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경기침체기에 산업부문의 퇴출 인력을 흡수하고 호황에는 노동력을 공급하는 경기변동의 완충지대 역할(이종현, ‘1970~2000년 한국경제의 성장기 자영업 소상공인에 대한 연구, 2022)을 해왔던 한국의 자영업, 그중에서도 지역 자영업자들은 이대로 소멸할 것인가? 정치는 신음하는 자영업자들의 절망에 대책을 갖고 있는가?_편집자

 

[지역 자영업 소멸 보고서] ③ 영남 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7380.html

 

④ 호남 편: 코로나 빚 1억9천, 폐업도 못한다

“폐업해야 하는 상황인데 못하고 있어요. 일단 대출받은 게 너무 많아서 (폐업하면 대출을 상환해야 해서) 집까지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에요. 제 주변 대부분이 이렇게 폐업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전북 전주시 덕진구에서 6년째 샤부샤부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김철규(가명)씨가 말했다. 김씨는 전주에서 마트 운영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소상공인으로 살아왔다. 2000년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마트를 폐업한 뒤, 식당과 호프집, 커피숍 등 작은 가게들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2022년 4월 ‘사회적 거리 두기 전면 해제’ 때까지 코로나19 사태 2년3개월은 김씨가 지금껏 겪지 못한 차원의 시련이었다.

2019년 12월 김씨 가계부에 찍혔던 ‘매출액 4500만원’은 이후 1천만원대로 팍 주저앉았다. ‘일시적 사태’일 뿐이라는 정부의 설명을 믿고 “버티기 위해” 팬데믹 기간에만 7천만원 두 번, 5천만원 한 번 해서 모두 1억9천만원의 빚을 냈다. 각종 재료비가 올라가도 지난 5년간 가격 한 번 올리지 않았지만, 떠난 손님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비 유형이 바뀐 거 같아요. 이제는 회식도 잘 하지 않고, 가정에서는 배달하는 분도 훨씬 많아졌고요.”


 

한 달에 갚아야 할 은행 빚만 100만원(일부 원금 상환 포함), 임대료 부담도 200만원이다. 자신의 인건비를 빼면 10여 개월째 매달 300만원가량 손해를 보고 있다. “국가적으로 팬데믹을 이겨내기 위해 저와 같은 소상공인들이 몇 년간 견뎌왔고, 버티기 위해 소상공인 대출을 받아왔잖아요. 최소한 (손해를 본) 근거가 명확한 부분은 정부가 책임져야 하지 않나요. 우리 가게의 경우 정부가 손실을 보상해준 건 700여만원이 전부입니다. 전체 손해액의 5%도 안 됩니다.” 김씨가 말했다.

갖가지로 수탈하는 배달 플랫폼

“전북 등 비수도권 지역은 (수도권보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보니 자영업자 비중은 높고,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고령화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임규철 전북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장의 설명이다. 2022년 말 기준 전국 자영업자 비중은 20.1%(563만2천 명)인데 전남(31.2%)·경북(28.3%)·전북(26.6%)·충남(25.0%) 등 비수도권은 수도권(서울 16.3%·경기 16.9%)보다 훨씬 높다.

한때 충청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불리던 청주 성안길의 2025년 5월19일 저녁 풍경. 이 지역 공실률은 31.1%에 달한다. 청주=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한때 충청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불리던 청주 성안길의 2025년 5월19일 저녁 풍경. 이 지역 공실률은 31.1%에 달한다. 청주=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윤석열 정부가 3년간 떠받들어온 ‘자율 규제’ 기조는 소상공인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었다. 광주 남구에서 11년째 햄버거가게를 운영하는 성동준(40·가명)씨가 매달 배달 플랫폼 대기업들에 내는 돈은 550만원이다. 2025년 3월 총매출이 2200만원이니, 25%가량이다. 재료비, 임대료 등을 빼고 성씨의 한 달 수익(440만원)보다도 많다. 빚 때문에 은행에 매달 350만원도 내야 한다.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하루 17시간 일하는 성씨는 “수십 번도 더 폐업을 생각했다”고 말한다.

“2023년 8월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 간에 경쟁이 심해지면서 할인이나 무료 배달 프로모션 부담을 대부분 가게에 전가했어요. 최소 주문 금액을 올려서 수익을 맞춰보려고 하면 ‘경쟁사랑 맞춰달라’고 전화가 옵니다.(최혜대우 요구 행위) ‘앱 인터페이스’나 배달 정책을 수시로 바꾸는 것도 정말 힘들어요. 공정거래위원회 광주사무소에 불공정행위라고 얘기하니 번번이 ‘(윤석열) 정부 기조가 기업 자율 규제라 제재하기 어렵다’고만 하더라고요. 사실 코로나19 때 너무 힘들어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을 뽑았어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해도 너무합니다.”

“부자·대기업·빅테크 위한 정책뿐”

2024년 9월11일 국회 대정부질문은 윤 정부의 친기업 기조를 잘 보여준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쿠팡과 배달의민족은 배달수수료를 9.8%나 받고 있다. 이러다 자영업자들 다 죽는다. 자율 규제는 무책임하다”고 말하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죽지 않는다. 정부가 수수료를 내리라고 하는 건 안 맞다. 의원님 말씀대로 하는 건 (자영업자를) 희망고문 하자는 거다”라고 답했다.

외식업체의 2024년 기준 평균 영업이익률은 8.9%다. 5년 전인 2019년(15.0%)보다 크게 줄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배달 플랫폼 비용은 수익 감소의 핵심 요인이다. “대기업 계열사 구내식당이나 배달 플랫폼의 독점이 더 강해지면 그 수익의 대부분은 서울이나 소수 부자에게로 가지만, 일주일에 한두 끼라도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그 돈은 지역이 살아나는 데 쓰인다. 소상공인이 살아나야 지역이 살아날 수 있다.” 임규철 회장의 말이다.

위평량 위평량경제사회연구소장은 “현재 늘어나는 자영업자 폐업의 배경은 순리라기보다는 코로나19 시기 금융지원(부채 부담) 정책의 실패와 불공정·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심해지는데 일부 당에서는 오히려 부자집단과 대기업과 빅테크를 위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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