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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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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의 기쁨, 식탁에서 누리는 소박한 성찬

열매가 쏟아지는 계절에 누리는 작은 혁명… 한아름 따온 채소는 피클, 샐러드, 수프로
등록 2026-07-30 21:02 수정 2026-08-02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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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편

쿠카멜론은 오이 맛이 나고 아삭거리는 식감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된다.

쿠카멜론은 오이 맛이 나고 아삭거리는 식감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된다.


텃밭에서 뭔가를 부지런히 하고 있을 때였다. 이맘때면 마주치게 되는 옆 밭 주인 할머니께서 올해는 뭘 심었느냐 물으셨다. 몇십 가지의 식물을 열심히 나르고 심었지만, “토마토랑 감자랑 허브 같은 걸 이것저것 심었는데 잘 자랄지 모르겠어요”라고 썩 자신 없는 투로 이야기했다. “그래도 올해는 2학년잉께 지난해보단 낫긋지”라는 칭찬과 격려를 버무린 대답이 돌아왔다. 2학년. 두 번째지만 영 자신 없는 모습은 모든 것이 막막했던 1학년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사실 농사를 자신감으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같이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농부는 매 학년이 배움의 연속이고 요즘의 변화무쌍한 날씨와 기후위기는 한 해 농사를 더욱 예측 불가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2학년이라 올해는 지난해보다 성적이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우선 심은 것은 대부분 잘 자라고 있다. 반듯하게 무럭무럭 자라나며 알이 굵은 결실은 아니지만 저마다 애쓰고 있는 게 느껴진다. 올망졸망 자리 잡고 뿌리 내려 자라난 식물들을 보니 자신감 같은 감정이 아닌 안도감과 감사함이 든다. 잡초의 기세에 눌린 작물도 몇몇 보이지만 올해는 제초 작업을 부지런히 해줘서인지 초여름에 나온 이른 수박을 사먹고 모종을 내어 심은 수박도 두 덩이가 자라고 있다. 덩실덩실 춤추고 싶지만 너무 호들갑을 떨면 수박이 커지지 않을 듯해 간신히 참고 있다.

본격적으로 모든 작물이 열심히 자라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는 7월 무렵엔 폭염이 무섭지만 밭에 나가는 일이 즐겁기도 하다. 호미나 낫 대신 소쿠리와 가위를 들고 수확에 나선다. 밭으로 들어서자마자 땀범벅이 되지만 제철 채소를 바구니 한가득 따오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과 밭 수확 작물을 감상하는 시간도 잊지 않는다. 사진도 열심히 찍어둔다. 그야말로 눈으로 입으로 먹는다. 몇 달간의 노력과 정성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생활 전반에 잔잔하게 스며든다.

지난해 마당 작은 화분에 스낵오이 두 개를 심었는데 올해는 오이 세 종류와 페루비아나 골든베리(금땅꽈리), 쿠카멜론을 추가했다. 열매가 쏟아져 나오니 아이들의 좋은 간식거리가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가공음식을 대체할 만한 혁명 같은 일이었다. 이 정도면 조기졸업을 기대해도 되나요?

여름엔 식비가 줄어든다. 먹는 속도보다 수확하는 속도가 더 빠르니 채소 귀한 줄 모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부지런히 피클을 담그고 샐러드를 만들고 데쳐먹고 구워먹고 삶아먹어도 남아도는 채소는 시들기 전 모두 깍둑썰기해 채소수프를 만든다. 주키니호박, 가지, 양파, 토마토, 양배추 등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모두 넣고 토마토소스를 부어 약한 불에 한 시간 넘게 끓이면 완성된다. 어떤 채소를 넣어도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래도 남게 되면 다시 근사한 채소를 부탁하는 마음을 담아 거름통으로 보낸다.

심고 가꾸고 수확하고 이제는 어떻게 저장해서 오래 두고 먹을지 고민이 확장된다. 어엿한 농장처럼 백점짜리 수확은 아니지만 우리 네 식구가 먹기에 충분하니 내년엔 조금의 부지런함을 더 동반해보기로 한다.

 

글·사진 이지은 패브릭·그래픽 스튜디오 달리오로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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