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곰 ‘꼬마’가 돌아왔다. 지난 칼럼에선 한겨울의 ‘꼬마’ 눈사람에 대해 썼다. 이번엔 꼬마 중에서도 ‘상꼬마’들이 잠시 머무는 인큐베이터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다. 인큐베이터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사물이 또 있을까. ‘건들면 다친다’는 말은 사람에게만 쓰이는 건 아니다. 가장 연약하고 작은 존재의 밝은 미래를 이 하얀 사물에 건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사물의 상태를 살핀다. 미숙아에게 인큐베이터는 외부 세계와 차단된 이상향이다. 오직 아기에게 맞춰진 온도·습도·산소로 움직이는 지구상의 유일한 영토다.
“세상이 정말 노랬어.” 꼬마 때 응급실에 실려가던 나를 기억하면서 엄마가 하는 말이다. 그들도 정말 눈앞이 노랬을 것이다. 국제구호단체로부터 선물받은 최고가의 인큐베이터가 높은 온도와 습도에 망가져 작동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들은 2004년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도시 물라보의 한 병원 관계자들이었다. 놀란 그들 가슴에 솥뚜껑을 덮어준 이들은 ‘디자인 댓 매터스’(DTM)라는 미국의 디자인 그룹이었다. ‘문제해결자’를 자처하는 이 젊은 디자이너들은 행동파다. 연약하고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데 ‘꽂힌’ DTM은 생뚱맞아 보이는 인큐베이터 디자인을 제안했다. 최첨단 기술과 수천만원대의 라벨 대신 자동차 폐품을 인큐베이터에 끌어들였다. 1인용 비행기 등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이 뽑은 ‘2010년 멋진 발명품’에 이름을 올린 인큐베이터 ‘네오너처’(Neonurture)다.
디자인의 출발은 관찰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자동차 부품과 차의 망가진 폐품들이 인큐베이터의 몸통이 됐다. 자동차의 빨간 헤드라이트가 인큐베이터의 온도를 유지하는 발열기가 됐다. 자동차 덮개를 개조해 인큐베이터의 유리벽을 만들었고, 자동차 배터리와 바퀴도 인큐베이터의 움직임을 돕는다. 보통 병원 인큐베이터에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멸균된 느낌이 앞선다. 네오너처에선 사람의 땀과 노동과 시간의 냄새가 난다.
인큐베이터 네오너처는 행동하는 디자인이다. ‘멈춤’ 버튼을 누른 것처럼 어떤 디자인은 ‘불변’을 미덕으로 삼는다. “허름해지면 버리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인큐베이터는 계속 움직인다. 자동차 부품을 활용한 것도 단순히 재활용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동차 엔지니어들이 도시에 많기도 하거니와 간단한 자동차 정비 기술이 있는 사람이면 인큐베이터를 직접 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자동차 부품으로 만들어진 인큐베이터는 당연히 가격도 내렸다.
DTM의 인큐베이터는 흔해빠진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고 확신하며 먼 길을 내달리는 돈키호테를 닮았다. ‘남다른’ 관찰과 마음이 어디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하지만 정말 필요한 새 사물을 만들어냈다. 종종 거리에서 할머니들이 버려진 유모차를 보행기 삼아 밀며 산책하는 모습을 본다. 한 손으로 짚는 지팡이가 아니라 두 팔을 평행하게 뻗고 지탱할 수 있는 유모차가 할머니들의 움직임을 좀더 자유롭게 한다.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디자인은 참 많은 곳에서 필요하다.
현시원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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