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세상을 둘로 쪼개는 수사학

비포 앤드 애프터 광고 디자인
등록 2011-09-08 17:47 수정 2020-05-03 04:26
현시원 제공

현시원 제공

‘비포 앤드 애프터’(Before & After) 사진. 다이어트나 성형수술 뒤 외모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비교 사진을 뜻한다. 이젠 이런 방식의 사진 배치가 생일 때 먹는 미역국 식단처럼 익숙해졌다. 서울 거리는 ‘비포 앤드 애프터’의 세계다. 인터넷 메인 화면과 지하철 전광판, 휙휙 이동하는 버스 광고에도 한 인물의 변화한 두 가지 얼굴 사진이 배경막처럼 등장한다. 어깨도 스치지 못한 인연이지만, 나는 성형수술 전후의 여인 초상을 올해 참으로 많이 보았다. 그것뿐이 아니다. 애프터의 상태가 웃음거리가 되는 코미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스타들의 안부도 요즘은 안면 윤곽으로 파악한다.

사진 왼쪽이 변화하기 전 미흡함의 세계라면 오른쪽은 시간의 바다를 거쳐 개선된 세계다. 개선된 세계의 키워드는 ‘다른 사람’이다. 의학기술이든 헬스 트레이너의 도움이든 자신의 노력이든 달라지는 것이 중요하다. 성형수술을 한 뒤 나타난 개그맨의 동정 기사 제목이 “다른 사람이 됐다”였을 만큼 달라지는 것은 동시대 관심을 끄는 뼈아픈 선택이다. 더 나은 상태(오른쪽)와 지금보다 못한 상태(왼쪽)를 보여주는 방식은 2011년 광고의 가장 흔한 수사학이기도 하다. 언어학자 월터 J. 옹이 “연설가는 적대자가 눈앞에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말한다. 그래서 수사학은 본질적으로 대립적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비포 앤드 애프터’ 사진의 수사학은 세상을 둘로 쪼갠다. 변한 곳과 변하지 않는 곳, 변한 당신과 변하지 않는 우리, 동그란 눈과 째진 눈.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비포와 애프터로 두 개 이상의 얼굴을 갖게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샤랄라 하는 분홍빛 음악과 함께 한 바퀴 빙 돌면 공주가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칼과 피가 난무하는 고충은 물론이고 함부로 논할 수 없는 각자의 사정도 무궁무진할 테다. 하지만 ‘비포 앤드 애프터’ 사진의 목표는 간단하다. 양옆에 나란히 붙은 너무도 다른 두 사진이 동일 인물이라는 데 타인들이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과거의 사진은 더 어두침침하게 못난이 상태의 표정으로 내놓는다. 사진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신비로운 의학기술과 노고의 세계에 누구나 ‘동참’할 수 있도록 믿게 하려는 것이다.

‘비포 앤드 애프터’가 난무하는 이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포즈의 얼굴 사진도 있다. 파출소 앞에 붙은 지명수배자들의 얼굴 사진이다. 이 무시무시한 전단지에 격자무늬로 놓인 초상 사진은 이들이 악당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파출소 앞에 서서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은 언제나 이런 표정으로 팔도강산을 떠돌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지명수배자들은 아마 ‘비포 앤드 애프터’ 사진만큼이나 현란하고 놀라운 변장술을 사용하며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을 것이다. 안면 윤곽의 사회사. 누군가는 얼굴을 마음대로 변주할 수 있고, 새로운 사람들의 세계로 건너간다. 변화는 즐겁지만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안 변하면 좋겠다. 눈·코·입이 아니라 표정!

독립큐레이터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